인간실격

by 따끄

미루고 싶은 책이 있다.


어떤 맛인지 알겠기에 망설였던 가루약 같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그런 책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에서야 읽고 만 것이다. 지인 추천으로 가게 된 북카페 매장 한편에 비치된 인간실격과 조우한 것이다. 늦여름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뭉근한 조명이 아름드리 감도는 분위기의 카페에서라면 기꺼이 독서에 시간을 할애해야 할 터.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이면 더없이 좋겠다만 하필이면 눈 앞에 보이는 책이 그 책이다. 이 오묘한 조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책을 구매하는 나에게 카페 주인은 내용이 너무 우울하다며 경고 아닌 경고를 하는데 좀 전까지 밝던 표정이 아득해지는 것이었다. 엊그제 다 읽었는지 강렬한 여운이 그의 얼굴과 말투에 그대로 묻어 나왔다. 그 정서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기에 두려우면서도 진진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명성대로 음울한 기세는 대단했고, 읽는 내내 마음을 헤집더니 감정의 찌꺼기들은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몰랐다. 동류의 처참한 현실, 감정 이입되지만 결코 위로할 수 없는 독자와 소설의 간극에서 극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요조는 위화감 없이 주류 속에 존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은 '익살'의 형태로 연기되었고, '익살'을 통해 관계 맺기에 쉽게 성공한들, 연기가 탄로 나는 순간이면 여지없이 발가벗긴 인간이 되고 만다. 수치심은 그가 감춰온 정체였고 그건 본인이 남과 다르다는 자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남들과 어딘가 다른 나, 그래서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때면 본인을 폄훼하며 수치스럽게 여기는 내면의 불협화음이 그가 내린 실격 선고의 사유다. 차원 높은 '익살'의 경지에서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때마다 요조는 아찔한 수직낙하를 경험한다. 이것은 실격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형벌이다. 정작 요조는 벌을 받길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른 존재가 특별취급받는 이유가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라면 요조는 극한의 심연으로 침잠하는 쪽을 택했다. 이로써 '실격' 선고는 존재의 허무면서 동시에 그의 실존을 증명하는 아이러니가 돼버렸다. 그는 더 이상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몰락한다.


인간실격은 독자를 한순간 부정적인 상태로 고립시킨다. 그래서 더더욱 권하고 싶다. 소설은 인생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경험들을 서사의 형태로 밀도 높게 전달하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정제되고 고조된 감정적 체험을 하도록 돕는다. 또 어떤 소설은 서사보다 정서 그 자체만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가 있다. 인간실격이 그렇다. 이 소설이 지닌 압도적 우울감은 우리가 몰랐거나 잊고 있던 밑바닥 정서의 역치를 끌어올린다. 어떤 이에게는 풍부한 감수성을 선사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공감과 위로가 되는 지점이기도 한 것이다. 진한 여운이 지나가면 어느새 마음은 차분해지고 시야가 트이는 기분이 든다. 마치 실컷 울고 난 뒤 같다.


참으로 멋졌던 카페에서 한참을 보내고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조도가 낮은 곳에서 오래 있었던 탓인지 흐린 날씨에도 눈이 부셨다. 조금 지나자 청량한 강변의 풍경이 들어왔다. 아직 어둡지 않은 저녁을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기척도 없는 혹독한 겨울을 걱정했다.


2017 . 8. 15.



작가의 이전글가지 치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