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투스카니 와이너리 여행
이번 여름은 남편과 함께 멀리 여행을 떠나기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출산휴가+육아휴직 덕분에 6개월이라는 긴 자유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가을학기부터 시작하는 미국 대학원 입학을 기다리는 남편은 회사를 조금 일찍 정리하고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딱 아기 백일잔치만 끝내고 둘이 어디론가 여행을 가자고 약속을 하고 우리가 정한 곳은 바로 이태리, 자동차 여행이었다. 이태리가 처음인 남편과 여행에 출장으로 이미 웬만한 주요 도시는 여러 번 다녀온 나는 둘 다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루트를 짰다. 꼬모-베니스-베로나-피렌체-투스카니-밀라노. 2주 동안 우리는 구글맵을 찍으면서 이태리의 북부부터 중부까지 여행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대가 컸고, 또 그 기대 이상으로 만족했던 곳이 투스카니 와이너리다. 어렸을 적, 키아누 리브스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구름 속의 산책'이란 영화에서 배경으로 나왔던 와이너리 포도밭의 새벽 풍경에 대한 느낌을 잊을 수 없어,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태리를 여러 번 와 봤으면서도 인연이 잘 닿지 않았던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이태리 자동차 여행에서 우리는 투스카니를 가장 큰 비중을 잡고 컨셉이 다른 두 숙소를 예약했다. 하나는 골프 리조트와 와이너리가 함께 있는 일종의 대기업이 운영하는 호텔이고, 하나는 Castello di Fonterutoli라는 곳이었는데, 이 곳은 Mazzei가문이 1435년부터 약 600년 동안 지켜온 와이너리다. 이 와이너리 안에 있는 진짜 농가를 여행자들의 숙소로 만든 것이다.
피렌체를 떠나 한 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투스카니의 상징, 사이프러스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어렸을 적 '캔디캔디'의 안소니가 사는 집처럼, 어떤 저택이나 와이너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거의 대부분 저런 멋진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양 쪽으로 길게 뻗어있다. 그런 사이프러스 나무 터널 사이로는 멋진 클래식카가 정말 잘 어울릴 테지만, 우린 재고 부족으로 렌터카 회사에 예약해두었던 폭스바겐 골프 대신 무료 업그레이드받은 하얀색 BMW 1 시리즈 해치도 이 풍경에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 농가 호텔은 가족이 운영하기 때문에 수용할 수 있는 손님이 많지 않은 듯했다. 숙소에 도착하면, 리셉션으로 쓰이는 작은 건물 입구에서 화이트 와인을 한 잔씩 나눠주는데 그 맛이 정말 끝내준다. 와인 테이스팅을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이 곳으로 오면 된다는 아마도 주인의 사촌뻘일 카운터 직원의 친절한 안내와 함께. 여기서 우린 며칠 동안 지내면서 알아야 될 정보들을 얻었는데, 이를 테면, 아침 식사와 저녁 식사는 길 건너 작은 레스토랑에서 몇 시부터 문을 연다는 등, 와이너리 투어 예약 방법, 자동차를 타고 포도밭으로 15분 정도 깊숙이 들어가면 인생 최고의 수영장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등 말이다.
우리의 숙소는 다행히 찾기 쉬운 리셉션 건물 바로 앞이었는데, 보는 순간 난 너무나 만족했다. 이게 바로 내가 그린 이태리 와이너리의 숙소지! 진짜 와인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지낼 것처럼 생긴 투박하고 소박한 농가는 주차를 할 수 있는 앞마당도 있고, 테라스도 있고, 초록색 작은 담장 안 독채가 모두 우리 것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더 만족스러운 풍경. 요리도 해먹을 수 있는 주방과, 다양한 종류의 책들, 황토색의 벽과 올리브 색의 패브릭 소파가 아, 이게 바로 진짜 투스카니 스타일 인테리어임을 보여주었다.
이 곳의 압권은 바로 수영장인데,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서 다시 차를 타고 포도밭으로 15분 정도 흙길을 따라 내려가면 있다. 가는 길에 길을 몇 번 잃어서 그냥 가지 말까 투덜거리기도 했는데, 도착한 순간, 왜 그 입구에서 직원이 이 곳의 수영장을 꼭 가봐야 한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건 정말 어떻게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과 너무나 잘 어우러진 그런 수영장이었다. 넓고 한적한 그 어떤 사람의 발길도 보이지 않는 향기로운 포도밭에 그리 크지는 않지만 깨끗하게 잘 관리된 인피니트 풀장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손님은 우리뿐. 남편은 기회는 이때다하며 신나게 하늘 위로 드론을 날리고, 나는 와이너리에서 사 온 와인을 따고 노래를 들으며 망중한을 즐겼다.
이 곳에 가면 빼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와이너리 투어다. 보통 와이너리에서는 두세 가지 프로그램이 있는데, 하나는 포도밭을 직접 가는 투어이고, 하나는 와인 생산 공정을 볼 수 있는 팩토리 투어다. 우린 이 곳에서는 이미 수영장에서 포도밭 구경을 다 했기 때문에 팩토리 투어만 하기로 했다. 와이너리 투어 하면 처음에 딱 포도밭 가는 것만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포도밭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공정 과정이라고 한다. 이 곳의 경우에는 공정화가 매우 잘 되어있어, 마치 챨리와 초콜릿 공장 같은 느낌을 받았다. 포도를 실은 큰 트럭들이 모이는 광장 같은 곳에는 바닥에 지하로 연결되는 파이프가 뚫려있어서 트럭들이 포도를 한가득 배달하고 떠나면 그때부터 포도의 여행은 시작된다.
와인투어의 백미는 바로 마지막에 있는 와인 테이스팅. 그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맛본다는 것은 마치 단순한 깍두기, 오징어무침 조합의 충무김밥을 충무에서 직접 사 먹을 때 더 맛있는 것과 같은 심리적 효과를 배가시켜준다. 물론, 실제로도 이태리 와인을 한국으로 수입해오는 과정에서 병들이 부딪히고 흔들리고 하면서 맛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다고는 한다. 와인 테이스팅을 할 때 와인을 사면 좋은 것이 20% 정도 할인을 해주고, 또 (국가에 따라 제한은 있지만) 집으로 배달도 해준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로는 배송이 안된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는 몇 병을 사 와서 이태리에서 남은 시간 동안 하루에 한 병씩 맛있게 먹었다.
이태리 와이너리 여행을 직접 해보기 전에는, 정보도 많이 없고, 또 다녀온 사람들도 거의 없는 곳이라 우리가 예약한 곳이 제대로 된 곳일지, 그 시골에서 와인 마시면 운전도 못할 텐데 며칠 갇혀 지내는 거 아닌가 괜한 걱정도 한 게 사실이다. 마치 수녀원으로 피정 가는 마음같이 말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하고 나서, 누군가 이태리를 간다면 정말 한 번쯤은 쇼핑과 맛집의 이태리 대도시를 떠나, 투스카니를 여행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유행처럼 번진 시험공부하듯 배우는 와인이 아니라, 다시 돌아온 평범한 일상의 나날 중 언뜻 내 마음을 다시 떠나고 싶게 설레게 만드는 이태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 진짜 이태리의 떼루아가 있었다.
Castello di Fonterutoli: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이자, 숙소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와이너리 투어를 알아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 투스카니 지역에는 정말 많은 와이너리 숙소들이 있는데 물론 아주 고급 리조트도 있지만, 이런 소박한 농가 와이너리의 경우에는 150~200유로 사이로도 정말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는 많은 곳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 곳에 머물기보다는 분위기가 다른 두 군데 정도로 나누어 숙소를 정하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