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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May 11. 2016

한 살 아기와 홍콩 여행

홍콩 아트 바젤 2016 여행기

작년 봄에 태어난 우리 아기는 이제 아침에 일어나서 저를 보면 너무 귀여운 목소리로 "엄마? 엄마?" 부른답니다. 네, 이젠 저도 '엄마'란 단어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엄마 인생 만 일 년 차입니다. 윤서가 태어난 이후 제 인생에 꽤 많은 변화들이 생겼지요. 회사가 끝나고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은 되도록 안 잡고 웬만하면 다 점심에 만나요. 아기 돌봐주시는 아주머니가 집에 가시는 주말이 되면 남편도 없이 말 그대로 독박 육아이기 때문에 주말 이틀 동안은 온전히 아기 스케줄에 맞춰서 생활을 한답니다. 문화센터 수업도 가고, 아기와 동물원도 가구요. 또 어디 구경 나갈 계획을 세우고 모든 준비를 마친 상황이라도 아기가 예상을 깨고 낮잠을 스르르 자버리기라도 하면 발동동 구르지 않고, 그냥 저도 다시 외출 준비물 무장해제하고 아기 옆에서 잠이 들어버립니다. 주말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참을 수 없던 저에게 큰 변화이지요.


그렇게 엄마가 된 후 생활의 많은 부분이 바뀐 저에게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어요. 바로 '여행'이랍니다. 물론 아기와 함께 가는 여행이지요. 지난 일 년 동안 윤서는 꽤 많은 곳들을 여행했답니다. 생애 첫 해외여행으로 하와이를 다녀왔고, 아빠를 만나러 시카고도 다녀왔고, 얼마 전에는 아트 바젤을 보러 홍콩에도 다녀왔어요. 그 사이에 제주도도 한 번 다녀왔고요. 과연 기억도 못할 아기를 데리고 가는 것이 의미가 있겠느냐, 갈 만하냐라는 질문을 종종받는데, 예전만큼 제가 하고 싶은 모든 것 100프로는 못하겠지만, 20프로 정도만 다 같이 즐길 수 있어도 그게 더 가치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전 아기와 여행하는 것을 즐긴답니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홍콩은 오랜만에 한국에 나온 남편과 갑자기 주말을 끼고 떠나게 된 여행이었답니다. 나중에 한꺼번에 모아서 시카고를 다녀오려고 아껴둔 휴가였는데 어린 시절을 홍콩에서 살았던 남편과 언젠가 그곳을 한 번 꼭 다녀와야지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과감히 손에 딱 쥐고 있던 비장의 휴가 카드 한 장을 써버렸죠. 워낙 그 전에 장거리 여행을 해서 그런지, 세 시간 정도 걸리는 홍콩 비행은 어렵지 않았어요. 다만 예전에는 비행기를 타면 베시넷에 딱 누워있던 돌 전과는 달리, 이젠 베시넷은 누워있는 공간이 아니라 딱 앉아서 간식을 먹는 공간으로 바뀌었죠. 대한항공 비행기 안에서 거버 아기 유아식을 주긴 하는데, 평소에 안 먹던 음식들이라 잘 입에 안 댔어요. 장거리 비행을 갈 때는 바나나 같은 간식도 함께 주는데 짧은 구간이라 그런지 과일은 안 나오더라고요.


비행기에서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되는 아기들에게 수시로 바꿔주는 간식은 필수품. 싱싱한 제철 과일이 좋아요!


사실 이번 여행을 갑자기 가게 된 이유는 바로 홍콩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바젤 때문이었답니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항상 타이밍이 안 맞아서 못 갔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된 것이지요. 아기들에게도 어려서부터 그림을 많이 보여주면 창의력 발달에 좋다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이런 큰 전시회를 휙휙 보는 것은 크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대신 쉬운 그림이라도 여러 번 반복해서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또 아기가 그곳에서 혼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그림을 마주해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뭐든지 주입식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홍콩 여행은 2박 3일로 워낙 짧긴 했지만, 다행인 것은 예전처럼 홍콩이 쇼핑 천국이 아니기 때문에 쇼핑으로 괜히 이리저리 허비하는 시간이 없어서 하고 싶었던 것들, 보고 싶었던 것들을 다 할 수 있었어요. 제 기준으로 가장 좋았던 것을 꼽자면 다른 것을 얘기하겠지만, 아기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바로 2,30년 전 홍콩 단체 여행의 필수 코스, 점보 레스토랑이었답니다. 점보 레스토랑은 물 위에 떠있는 거대한 수상 레스토랑이에요. 대형 중국집이죠. 분위기는 마치 베이징 어딘가에 있을 법한 큰 관광객 대상 식당인데 번쩍번쩍 화려한 금색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서 저 멀리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금덩어리 같답니다. 초등학교 때 마지막으로 가보고 제 기억에서 잊혔던, 그 당시에도 꽤나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그 점보 레스토랑은 남편이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곳이라고 꼭 가야 된다고 고집해서 가게 되었는데, 이게 웬걸, 이번 여행에서 윤서가 가장 감동을 하고 신나 했던 곳이었어요. 여기 안 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였답니다. 이 곳에서 하이라이트는 바로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기념사진 액자를 만드는 거예요. 한국돈으로 만원 정도를 내면 온 가족이 중국식 경복궁 근정전 어좌 같은 번쩍번쩍한 곳에 앉아서 사진을 찍어줘요. 저런 거 도대체 누가 하나 싶었는데, 바로 저 같은 사람이 합니다.



홍콩에서 아기는 생애 첫 딤섬을 먹었답니다. 요즘 홍콩에서 가장 잘 나가는 딤섬집 중 하나라는 모뜨 32(Mott 32)는 분위기도 예전 1920년대 상하이 분위기가 나고 음식들도 모두 고르게 맛있었어요. 24시간 전에 주문하면 베이징 덕도 맛볼 수 있고요, 아기에게는 새우 볶음밥과 돼지고기 딤섬을 줬는데 짭짤해서 그런지 아주 잘 먹었어요. 전 이번에 한국에서 이틀 동안 먹일 아기 이유식을 꽁꽁 얼려서 아이스팩에 넣어서 가져갔어요. 다른 맛있는 음식들을 맛본 아기는 간이 싱거운 아이 이유식 대신에 어른 밥을 함께 먹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럴 땐 전 그냥 아기 밥을 치우고 간이 짜든, 맵든 식당에서 준 음식을 함께 먹었어요. 아기도 여행을 하는 중이고,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여행의 큰 즐거움이니까요!



아기와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 작가 Norman Rockwell의 작품 Going and Coming과 정말 많이 닮아있답니다. 엄마 표정, 아빠 표정, 그리고 아이의 표정 모두 다요! 그래도 그만큼 즐거운 추억이 또 하나 쌓이는 거겠지요. 항상 어딘가로 떠나고 즐거울 수 만은 없겠지만, 하루하루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크고 작은 행복을 일상에서 발견해나갈 수 있기를, 엄마는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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