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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Dec 30. 2015

우리 집 드론 보이

Travel with Drone

남편은 경상도 남자다. 여기저기 타지 생활을 오래한 탓에 실제로  그곳에 산 적은 한  두해밖에 안되지만, 뼈 속까지 경상도 남자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고, 옆에서 보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이 긴 인생을 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그런 심심한 경상도 남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남자였다. 결혼 전, 흥이 넘치는 나와 3년이 넘는 시간을 연애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취미도 생기고, 좋아하는 취향도 생겼다. 내가 목표했던 바다.


지난 5월 어린이날, 남편은 본인에게 주는 어린이날 선물로 DJI 팬텀 3을 샀다. 그 유명한 드론이다. 사실 내가 뉴스 검색을 하다가 되게 신통방통한 물건인 것 같아 링크를 보내줬다. 마음에 쏙 드는지 국내 출시하기도 전에 제일 먼저 사전 계약했다. 이젠 어디 갈 때마다 드론을 가장 먼저 챙긴다. 작은 트렁크를 드론 전용 가방으로 개조해 도르르도르르 끌고 다닌다.

마침 출산 휴가 동안 나랑 여행 다닐 일도 많아 아예 인스타그램에 @Droneboy_Choi란 이름으로 계정도 만들었다. 'Travel with Drone'이란 주제로 연재도 시작했다. 남편 같은 사람들이 많은지,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팔로워 수가 늘었다. 드론 보이, 내가 지어준 이름인데 꽤나 마음에 드나 보다.

가끔씩은 드론이 나보다 우선순위라 섭섭할 때도 있다. 내가 뭐 도와달라고 해도, 드론 촬영 동영상 편집한 후에 해준다고 한다. 여행 가서 아침에 같이 산책 나가고 싶은데, 잠에서 깨 보면 이미 일출 촬영한다고 나가버린 어이없는 경우도 있다. 내 눈에는 모두 비슷비슷한, 드론 촬영 사진을 한 100장을 보여주면서 어떤 걸 인스타그램에 올릴까 결정을 해달란다. 그럼 나는 대충 끝에서 몇 번째 것을 골라준다.


그래도 난 드론이 고맙다. 와이프, 딸 다 두고 떠난 시카고 유학 생활에 동반자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가끔씩 혼자 나가서 촬영한 사진을 보내주는데, 대부분 오래된 이발소에 걸려있을 법한 달력 사진이다. 그래도 잘 찍었다고 칭찬해주면, 또 신이 나서 나가서 찍는다. 뭐가 저리 좋나 싶다. 아무리 봐도 '드론 보이'란 이름은 너무 잘 지어준 것 같다.


이 세상에 별로 즐거운 것이 없었던 경상도 남자가, 점점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으로 변해가는 게 난 좋다. 앞으로도 인스타그램에 더 많은 이발소 사진이 올라왔으면 좋겠다. 더 열심히 하트를 눌러줘야겠다.


이태리 꼬모 호수에서도
이태리 벨라지오에서도,
친퀘떼레에서도,
투스카니의 와이너리에서도, 가장 먼저 하는 건 드론 촬영
내 눈엔 다 똑같아 보이는 100장의 촬영 사진 중에 가장 좋은 작품을 골라줘야 내 임무는 끝이 난다
별다른 규제가 없었던 호시절의 한강 반포 지구 촬영
해운대 마린시티의 석양
그 유명한 밀라노 두오모 드론 사건이 일어나기 전, 피렌체 전경
MBA 입학 전 모르는 친구들과 서먹서먹한 관계를 한 번에 풀어준 고마운 드론
드론이 하늘에 뜨면 다들 알아서 포즈를 잡는다
포토 컨테스트에 올릴 Chicago Booth Random Walk 그룹 포토
벨리즈 스노클링하러 가는 길
아름다운 꼬모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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