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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Dec 23. 2015

백일 아기와 하와이 여행기

하와이 오하우 코올리나

사실 백일이 갓 지난 아기를 데리고 어디 여행을 갈 때는, 뭘 보고 먹고 느끼고자 간다기 보다는, 그냥 아기를 데리고 갔다는 그 사실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게 맞다. 그 이상을 기대하고 떠난다면 돈도, 시간도, 에너지도 낭비하고 올 것이다.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우린 하와이로 떠났다.


하와이는 나에게 익숙한 곳이다. 매년 여름가족들이 그 곳에서 휴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는 남자친구를 가족 여행에 처음으로 초대했고, 작년에는 쿨쿨이를  뱃속에 넣어서 같이 놀러 왔고, 드디어 올해는 백일 갓 지난 아기를 데리고 친정 식구들이 다함께 떠났다. 어찌 보면 매우 이상적인, 하와이에서 콘도를 파는 세일즈맨들이 딱 좋아할 그림이다. (물론, 스틸 사진이 아닌 동영상으로 보면 실상은 다르지만)


아기와 떠나는 여행은 우선 비행기 베시넷 예약이 가장 중요하다. 비행기 티켓을  오래전에 구매했더라도, 출발 3개월 전 밤 12시부터 배시넷 예약을 선착순 오픈한다. 각 비행기마다 베시넷을 놓을 수 있는 좌석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날짜를 잘 기억해야 한다. 올 때, 갈 때 모두 예약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비즈니스 좌석이라면  문제없지만, 이코노미 좌석이라면 문제가 상당히 크다. 그냥 베시넷 없는 비행을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10시간 넘는 비행에서 베시넷은 필수다. 아기가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네이버 검색 안 해봐도 된다. 당연히 아기는 비행기를 탈 수 있고 나이에 맞게 몸부림치고 운다(크면 클수록 더 심하게). 백일 된 아기를 데리고, 10시간 비행 하와이도 가보고, 15시간 걸리는 시카고도 데려가보고 얻은 결과치이니, 꽤 믿을 만하다. 아기는 당연히 베시넷에서 꺼내 달라고 난리 치고 힘들게 재워서 조심스레 베시넷에 내려놓는 순간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서 엄마 아빠를 경악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도 반나절만 고생하면 된다. 미국이건, 프랑스건, 아프리카건, 아기와 어디든 갈 수 있다.

아기와 하와이 여행을 갈 때는 호놀룰루의 일반 호텔보다는 콘도나 에어비앤비가 정답이다. 하와이 호텔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기도 하거니와 아기와 지내기에는 웬만한 큰 스위트룸 아니고서는 비좁다. 우리 가족이 매년 가는 곳은 하와이의 신도시라고 볼 수 있는 남서쪽의 코올리나 지역에 있는 메리어트 리조트이다. 그 동네는 최근 너무 북적이는 호놀룰루를 피해서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곳인데 호놀룰루에서 차로 50분 정도 떨어져 있다. 인공 라군 5개 정도가 조성이 되어있는데 메리어트, 디즈니 리조트 등이 들어와있다. 메리어트 Vacation Club이라는 건데, 우리나라의 대명 콘도와 비슷한 개념이다. 초기에 회원권을 구매하고, 연회비를 내면 1년에 방 크기에 따라 1주~2주를 보낼 수 있다. 오하우 뿐만 아니라 하와이의 다른 섬들에도 리조트가 있어서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이 곳의 인테리어는 전형적인 작은 미국집 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마스터룸과 손님방 그리고 가운데 거실과 주방이 있어서 집 안에서 모든 게 해결이 된다. 코올리나 주변에는 코스트코, 타깃, 유기농 식료품점 등 대부분의 유통 브랜드들이 들어와있다. 우리 같은 대가족이나 아기가 있는 집은 밖에 나가서 매끼  사 먹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이렇게 집 안에 주방이 있는 것이 매우 편리하다. 가족 중심의 리조트이기 때문에 유아 풀장부터 떠들면 혼나는 할아버지 풀장까지(Meditation Pool) 나이별로 사용할 수 있는 수영장이 잘 형성되어있다. 또 아이들이 수영을 한 다음에는 몸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자꾸지도 함께 있다. 해 뜰때부터 해 질 때까지 리조트 곳곳에서는 다양한 액티비티가 진행된다. 바닷가에서 일출을 보면서 하는 요가와 헬스 교실, 하와이 요리 교실, 훌라댄스, 우쿨렐레 등 한 주일의 스케줄표가 월요일 아침이면 각 방에 배달이 된다. 수영을 좋아하지 않는 가족들도 혼자서 바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윤서의  첫 여름 휴가지로 하와이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물을 좋아하는 아기이기 때문이다. 생후 50일  즈음되었을 때부터 집에서 미니 풀장에 물을 받아놓고 수영을 시켜서 그런지 겁내지 않고 발을 굴러가며 물장구를 쳤다. 아기와 물놀이를 갈 때 꼭 챙겨야 할 것은 아기 튜브와 전신 수영복이다. 아기 피부는 자외선에 약하기 때문에 너무 강한 남국의 태양은 뜨겁다. 그래서 챙이 넓은 모자, 선크림, 뚜껑 달린 아기 튜브는 한국에서 사가는 게 좋다. 하와이 아이들은 워낙 어려서부터 햇볕 아래에서 자라기 때문에 생각보다 현지에는 이런 아이템들이 부족하다. 워낙 햇빛과 안 친한 일본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아이템들이 다양할 줄 알았는데, 챙겨가길 잘한 것 같다.

코올리나는 LPGA 골프 코스로도 유명하다. 미쉘위의 홈그라운드 이기도 해서, 골프클럽 앞에 미쉘위 동상이 있다. 워낙 이 세상에 좋은 골프장들이 많아져서 더 이상 특별할 것은 없지만, 하와이에서 깨끗하고 좋은 골프장 손가락 다섯 안에 드는 곳이다. 만약 코올리나 지역에 묵는다면, 하루 이틀 정도는 아침 일찍 이 곳을 예약하는 것도 좋다. 조금만 늦게 티오프를 해도 18홀을 다 돌 즈음이면 해가 중천에 떠서 하와이의 뜨거운 맛을 봐야 한다. 그래서 한낮에 시작하는 그린피는 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해주기도 한다. 거의 17홀 즈음을 돌 적에 있는 흑조가 사는 호수가 이 골프코스의 백미이다. 항상 두 마리가 사이좋게 같이 다닌다. 하와이에서는 대한민국의 수준의 서비스 마인드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냥 본인이 몸을 움직이는 만큼, 움직일 수 있을 만큼만 여유롭게 즐기면 된다.

모든 트렁크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터지기 일보 직전으로 돌아갔던 예전과는 달리, 백일 아기와 함께 돌아가는 길에 트렁크는 아기  빨랫감뿐, 텅텅 비어있다. 뭔가를 쇼핑하러 간다는 건, 엄두가 안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기 밥시간이 지나서, 이제 막 잠이 들어서 깨우면 안되니까, 저녁 날씨가 쌀쌀해서, 수 백 가지 넘는 이유로  쇼핑몰은커녕, 집 앞에 타겟도 필요한 것만 후다닥 사러 갔다오게 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마음먹은 그대로, 끝까지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냥 스팸 맛 마카다미아 넛을 우연히 보게 된다면 그 정도 기념품에 만족해야 한다. 훌라 공연을 제대로 못 봤다고 하더라도 귀국 편 비행기가 있는 공항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훌라 댄스 공연이 정기적으로 열리기 때문에 거기서 구경하면 된다.

이제 하와이 여행을 정리하고 집으로 갈 시간 즈음이 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하와이를 와서 뭘 하고 가는 거지?'. 출발할 때 그 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뭔가를 경험하거나(혹은 아기에게 경험하게 하거나), 느끼거나, 맛보거나, 사려고 하지 않기. 대신 갓난쟁이 아가와 같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멋진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는가. 아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자식이 대학교 입학할 때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아기 있어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백일 아기를 데리고서도 세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그게 내가 이번 여행에서 얻은 한 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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