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까지만 해도 시카고는 중간중간 늦여름 같은 날씨가 있었어요. 아이들이 학교 갈 때 어느 날은 패딩에 모자도 쓰고 갔지만, 또 어느 날은 반팔에 반바지로 학교를 가기도 했죠. 정말 이상기온 때문에 그런가, 아무튼 시카고는 제가 처음에 왔던 8년 전의 윈디시티 시카고와는 조금 다른 날씨가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드디어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시카고에도 연말이 찾아왔어요.
브런치에 글을 마지막으로 올리고 벌써 계절이 3번이나 바뀌었네요. 올해는 참 마음이 혼란했던 한 해였어요. 감사하게도 이제 다시 마음의 여유를 찾았으니 제 아지트, 브런치로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어떤 글로 다시 시작을 해볼까 고민을 하면서 제 사진첩을 둘러보다가, 시카고 소식으로 해봐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시카고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을 꼽으라면, 그건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예요. 시카고 미술관이죠. 여기는 제가 처음 시카고에 왔을 때부터 연간 회원권을 만들어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들러야지 다짐했던 곳인데요, 사실 생각만큼 자주 가지는 못했어요. (어떤 해는 1년에 딱 한 번!) 회사 끝나면 부랴부랴 달려가서 아이들 픽업을 해야 되고, 또 주말이면 아이들 액티비티를 따라다녀야 되니 주차도 어려운 시카고 미술관에 여유롭게 자유롭게 오기란 불가능했죠. 그러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회사랑 미술관이랑 멀지 않으니, 빠른 걸음으로 가면 15분, 내가 점심을 빨리 먹고 운동 삼아서 미술관에 가서 한 번에 그림 한두 점만 보고 와도 좋겠다고 말이죠. 그렇게 제 점심 미술관 산책이 시작됐습니다.
이번에 미술관에 갔을 때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어요. 드디어 시카고 미술관에도 한국관이 생긴 거지요. 신문기사에서 보니 최근에 시카고 미술관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하셨던 한국 큐레이터분이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결과 이렇게 멋진 한국관이 생긴 것 같아요. 사실 지금까지 시카고 미술관에서도 한국 작가 작품들을 간간히 볼 수 있었어요. 몇 년 전에는 단색화 전을 해서 박서보, 하종현 작가들의 작품도 볼 수 있었고, 깨진 백자 도자기를 킨츠키로 다시 재해석한 이수경 작가의 작품도 있었고, 동아시아 관에 가면 중국, 일본관 옆에 한국의 도자기 작품들을 몇 점 볼 수 있었죠. 그런데 이번에 이런 우리 한국 작품들에게 진짜 '우리 집'이 생긴 거예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0574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예전에 아시아관 한 구석에 다른 나라 작품들이랑 뒤섞여 전시가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관'이란 문패를 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괜히 그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어 졌습니다. 한국관이 생기면서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여해 온 한국의 보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요, 가장 눈에 띄는 2개는 화려한 신라의 서봉총 금관과 금 허리띠였어요. 그리고 조선시대 책가도 병풍, 분청사기, 백자뿐만 아니라 한지를 접어서 작품을 만드는 전광영 작가의 보름달 표면 같은 현대 작품도 한국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죠. 마치, 1,000년의 시간차를 두고 있지만, 신라시대 서봉총 금관도, 전광영 작가의 뽕나무 한지로 만든 둥그런 작품도, 그리고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저도, 우리 모두 한국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여기 모여있구나, 이것도 특별한 인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올해 어쩌면 시카고를 갑자기 떠날 뻔했던 사건이 제게 있었답니다. 결과적으로는 시카고에 계속 살게 되었지만요, 이번 경험을 통해서 제가 처음 이곳 시카고에 왔을 때보다 이 도시를 더 사랑하고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제가 살고 있는 이 도시, 이젠 너무 익숙해져서 특별히 할 얘기가 없을 것 같았던 이 도시를 이제 제가 스스로 좀 더 알리고 많이 기록해 둬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제 두 번째 고향, 시카고의 이야기, 종종 남겨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