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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an 07. 2017

세 식구의 첫 번째 강원도, 겨울

강원도 속초, 설악

강원도에 있는 기숙학교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한 남편에게 강원도는 특별한 추억의 공간입니다. 오히려 진짜 고향인 대구보다 더 애착을 갖는 곳이지요. 덕분에 저도 남편을 만난 이후로 강원도를 새롭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용평 스키장이나 동해안 맛집 정도가 제 머릿속의 강원도였다면, 이제는 강원도의 조용한 시골마을 골목길, 인적이 드문 양구의 박수근 미술관 등 저희만의 아지트가 생기게 되었죠.


특히 강원도가 가장 좋을 때는 눈이 펑펑 올 때입니다. '이거 폭설 왔다는데 강원도 가도 되나'라고 걱정을 하면서 떠났을 때, 사실 가장 아름다운 강원도의 겨울을 만날 수 있지요. 이번에 한국에 다녀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윤서에게 꼭 강원도의 겨울을 보여주고 싶다고 졸라대는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강원도의 폭설이 내렸다는 뉴스를 보면서 시동을 걸었습니다.



강원도는 뉴스에 나온 대로 윈터 원더랜드였습니다. 고속도로의 눈을 치워져 있었지만, 국도로 빠지니 간혹 미끄러운 빙판길이 있기도 했죠. 살금살금 조심조심, 눈 쌓인 강원도 드라이빙의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휙휙 지나치지 않고 나무에 하얗게 쌓인 눈도 구경하고, 또 잠깐 차를 세우고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강원도의 절경을 찍을 수도 있지요.


저희는 강원도 겨울을 두 가지 방법으로 즐기기로 했어요. 겨울 바다에서 하루, 그리고 눈 쌓인 깊은 설악산에서 하루, 이렇게 말이죠. 저희가 첫날 묵었던 솔비치는 룸 베란다 바로 앞에 바다가 펼쳐져서 마치 크루즈 선을 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특히 이 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은 호텔 안에 있는 워터파크(사실 워터파크라기보다는 사우나 정도의 시설)인데요, 겨울 바다 바람을 맞으면서 뜨끈한 노천탕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어요. 이 날이 정말 추운 날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더 극적인 온도 차이로 야외 온천을 즐길 수 있었지요.


(Photo credit: 남편 aka @droneboy_choi) 


두 번째 숙소는 설악산 입구에 있는 켄싱턴 플로라 호텔이었어요. 이랜드 그룹에서 운영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킴스클럽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죠. 하하. 런던을 테마로 만든 호텔이었는데, 왜 강원도에서 생뚱맞게 런던 테마 호텔을 만들었을까, 가기 전에는 궁금하기도 하고, 좀 아쉽기도 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가보니 예상외로 아이와 함께 가기 정말 괜찮았어요. 공간 스토리텔링도 재밌게 잘 되어있었고, 또 저희가 묵었던 뜨듯한 온돌방은 창문을 열면 눈 쌓인 설악산을 정면에 두고 있었지요. 요를 깔고 누우니 제 양 옆으로 남편과 아기가 양 쪽에서 코를 골며 낮잠을 자는데, 그 모습이 하도 이뻐서 저도 누워서 귤 까먹으며 그 모습을 한참 봤답니다. 올 겨울 제가 가장 사랑한, 잊지 못할 순간이었어요, 그때가.


(Photo credit: @droneboy_choi)


설악산에서 맞은 아침, 저희는 어른 무릎 높이까지 쌓인,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있는 정원으로 나갔어요. 에스키모 가족처럼 무장한 저와 남편 아기는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또 눈 위를 뒹굴뒹굴 거리며 강원도의 눈을 맛보기도 했어요. 워낙 아이스크림과 얼음 먹는 걸 좋아하는 윤서는 눈을 한 움큼 주워 재밌고 신기한지 계속 먹었어요.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강원도의 맛, 맛, 맛. 강원도 길이 미끄러워 멀리는 못 가고 속초 중앙 시장 안의 한 조용한 식당에서 먹은 감자 옹심이와 오징어순대는 아마도 강원도를 고향으로 둔 사람들이 그리워할 딱 그런 맛이었어요. 관광객들이 몰리는 식당에서처럼 입맛을 확 끄는 맛은 아니었지만, 심심하면서도 구수한 진짜 강원도의 맛, 그것이었죠. 쫄깃쫄깃한 감자 옹심이와 겉은 바삭, 안은 촉촉한 오징어순대의 궁합은 정말 최고였어요. 이 외에도 오며 가며 사 먹은 진짜 강원도 옥수수 구이와 달콤한 감자떡도 잊지 못할 겨울 간식거리였죠.



강원도 겨울로의 짧은 주말여행을 마치고 다시 구불구불 산을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윤서는 나중에 엄마 아빠와 함께 왔던 이 강원도 겨울의 느낌을 기억하게 될까요? 아무리 외국에 멋지고 이국적인 겨울 풍경이 많더라도,  한국 사람만이 진정 느낄 수 있는 이 강원도 겨울의 아름다움을 말입니다.


(Photo credit: @droneboy_choi)
전영근, 눈내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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