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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 Nov 29. 2021

엘리베이터 안에서

장애가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은 꼬리표처럼 따라붙곤 한다. 서른이 넘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시선이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건 아니다.


특히 나를 곤란하게 하는 건 아이들의 시선이다.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본 것보다 봐야 할 것들이 많은 어린아이들은 순수한 호기심과 낯선 것에 대한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딱히 악의도 없으며 동정도 아닌 그 맑은 눈빛을 대할 때가 가장 어렵다.


나는 그저 웃으며 아이들이 관심을 돌리길 바라지만 가끔 근성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쫓아오면서 눈을 떼지 못하거나 스트레이트로 끈덕지게 물어보는 아이들.


아마도 휠체어와 자신의 신체와는 다른 내 장애가 그들에겐 미스터리한 부분이 아닐까 짐작만 할 뿐이다. 또한 ‘아이’이기 때문에 난처할지라도 금방 잊혀진다. 가끔은 정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저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의 기분을 묘하게 만드는 상황도 있다.

특히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에서 그런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좁은 공간. 짧은 순간.

엘리베이터는 낯선 사람과 가장 가까이 있는 공간이 아닐까 싶다.


짧은 시간이라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만, 여러 이유로 타인이 의식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상대를 의식하기도 하지만 상대가 나를 의식하는 일도 꽤 자주 일어난다.

특히 엄마와의 외출에서.


아파트에 사는 나에게 엘리베이터는 필수코스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기다림 없이 타거나 다른 사람 없이 엘리베이터를 차지하면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같은 아파트 주민과 함께타면 이웃이니만큼 인사라도 하면 좋겠지만, 아는 이웃보다 모르는 이웃이 많으니 자연히 침묵을 지키며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길 바라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날 역시 엄마와 외출했던 날이다. 어떤 아주머니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휠체어에 탄 나를 한번 보시더니 한마디를 하신다.


"힘드시겠다."

그 한마디는 아주머니의 안타까움이거나 그냥 지나가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불편하다.

아주머니가 내리신 후 엄마는 어이가 없어한다.


엄마와 나는 영화를 보러 가는 길. 개봉하길 기다리던 영화를 보러가는 길은 즐겁다.

그 기분 좋은 외출이 간혹 낯선 사람들의 한마디에 김이 빠지듯 기분을 망치곤 한다.

그 아주머니 말고도 비슷한 일은 종종 생긴다.


병원에서 진료를 마치는 날, 어떤 할머니가 내 휠체어를 미는 엄마를 덥석 붙잡는다. 우리 둘은 모두 깜짝 놀라 할머니를 쳐다본다. 아는 사람인가 싶어 얼굴을 기억하려 하지만 할머니 입에선 엉뚱한 말이 나온다.


“어쩌다가 그런 거예요?”


황당한 순간이다. 일일이 모르는 사람에게 내 장애를 설명해줄 만큼 엄마와 나는 친절하지 않다. 이렇게 황당한 순간이 아니어도 내가 듣는 말들은 비슷한 특징을 가졌다.


특히 어르신들은 ‘에구, 어쩌다.’, ‘얼굴은 예쁜데 하이구.’ 같은 말들을 하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보신다. 문득 내 얼굴이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상인가 싶다가도, 이 안타까워하는 마음들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두가 다 나를 보고 하는 걱정의 말, 안쓰러워하는 말이란 것도 안다. 그러나 그 한마디가 참 불편하다. 오직 내가 지고 가야 할 내 삶의 무게가, 그저 보이는 대로 판단해서 하는 말 한마디가 내 기분을 묘하게 한다.


장애가 있는 것은 힘들고 아픈 부분이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으며 또 그만큼 즐겁게 살고 있으니까.


걱정의 한마디는 짧지만 강하게 내 삶을 부정당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내 행복도, 노력도, 즐거움도 마치 모든 것이 힘겨움 위에 있어야 할 것 같다.


아주 자잘하게 기스가 나듯 마음에 자잘한 상처들이 훑고 지나간다. 물론 내 삶이 그다지 평탄하지 않은 것도 알고 있으며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높은 벽을, 좁은 길을 가는 것도 맞다.


아직 우리나라는 장애인이 살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메마른 사회라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말로 동정을 해야 할 대상도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듯 나 역시 그 짐을 지고 살아갈 뿐이다. 분명 힘겹지만 그것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다.


내겐 졸업후에도 꾸준히 연락하는 선생님이 계시다. 항상 내가 하는 일들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격려해주시는 분이다. 지금은 각자 다른 곳에 살지만, 선생님이 이사가시기 전에는 가끔씩 만나 동네의 식당을 탐방하곤 했다.


그날도 새로운 곳에 맛을 보러 가기 위해 선생님이 집까지 데리러 오신 날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 4층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타셨다. 그 아주머니 역시 나를 보시더니 자주 듣던 그 말들을 내뱉으신다.


나보다 내공이 높으신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맞받아치신다.

‘공부해서 대학도 가고 지금은 좋은 데서 일도 하는걸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말은 생략한 듯 인사를 하고 나와 선생님은 엘리베이터를 유유히 빠져나온다.


나는 아직도 선생님께 배울 게 많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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