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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후 Feb 27. 2017

9. 대학의 시작, 알바의 시작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부모님이 어떤 옷을 입고 오실까, 혹시 추리닝을 입고 오시는 건 아닐까?”    


이런 걱정으로 맘 졸였던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서울에서 시작한 대학 생활은 곧 알바의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닌 곳은 서울에 비하면 한참 시골이었지만 개중에는 미국으로 유학 간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영어를 좋아했던 저는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세상이었고 제 세상은 주유소 알바와 기숙사 식당 설거지였습니다. 


기숙사 식당 설거지는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일을 해야 했기에 맘이 좀 불편했지만 돈도 벌고 밥도 먹는 1석 2조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고등학교 기숙 창고에 비하면 대학 기숙사 식당 밥은 진수성찬이었습니다. 대학 기숙사 식당에서 알바를 하면서 밥을 먹던 첫날, 고등학교 기숙 창고의 식당에서 데모를 모의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반찬을 좋게 해 달라며 피켓에다가 이렇게 적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토끼가 아니다.”    


우리 친구들은 참 순진했습니다. 그 후에 기존의 풀만 가득했던 반찬에 더해서 떡볶이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만족했습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우리 친구들은 참 순진했습니다.   

   

대학 기숙사 식당에서 알바를 할 무렵, 마침 저희 어머니도 식당에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파출부 일을 그만두시고 분식집에서 김밥을 마시면서 설거지를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노가다를 하시다가 택시 운전으로 바꾸셨습니다. 기숙사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아버지의 삶은 잘 모르지만 어머니의 삶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히 터무니없는 저만의 착각이었습니다.


알바로 점철될 듯한 대학 생활이었지만 체대 친구들을 알게 되면서 덕택에 장비를 공짜로 얻어서 제주도에서 스쿠바다이빙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하와이의 자매학교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고 거기서 스킨다이빙을 하며 놀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라도 공짜로 외국물을 먹어볼 수 있었다는 게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해외여행 이야기를 하면 저도 한 마디 끼어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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