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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후 Sep 15. 2016

7. 집안의 자랑이었던 이종사촌 형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친척 중에 좋아하는 형이 있었는데, 저와는 이종사촌 간이었습니다. 형은 형편 상 어릴 적에 우리 집에서 얼마간 같이 살았었는데, 공부도 잘했고 그림도 잘 그렸고 노래도 잘 불렀습니다. 그 옛날에 뒤로도 가고, 점프도 하고, 공중에서 회전도 할 정도로 롤러스케이트 잘 탔습니다. 집안에서는 못하는 게 없다며 칭찬이 자자했고 저는 그 형을 본받으라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특히 문학을 좋아했던 형은 대학 때 시집도 냈습니다. 형은 서정윤의 <홀로 서기>를 넘어서고 싶다 종종 말했습니다. 

    

제겐 형이 중학교 때 쓴 <지우개>라는 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시에서 형은 지우개가 자기의 잘못한 것을 지워주고 허물도 덮어 줘서 고마운데, 그 보답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맘이 아프다고 하였습니다.  지우개가 책상 아래로 굴러 떨어지면 어서 빨리 줍는 거밖에 없다며. 그러다가 고민 끝에 지우개를 꽉 쥐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아프다고 말해. 그럼 내가 도와줄게.’       


형은 군대를 마치고 복학생이 되기 전에 친척이 사는 울산으로 내려와서 동네 중학생들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쳤습니다. 마침 대학 입시를 끝낸 저는 겨울에 그 친척 집에 놀러 갔다가 수업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한 2주 정도 머무르면서, 새벽에는 형과 함께 아파트에 신문을 돌리고 오후나 저녁에 그 수업에 참석했었습니다. 그때 읽은 책이 <독일인의 사랑>이었습니다.     


문학 수업은 종종 ‘티코의 별’이라는 동네 찻집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나폴레옹이 즐겼다는 ‘카페 로열’을 주문하면  멋 퍼포먼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종업원스푼에 각설탕을 얻고 그 위에 위스키를 부은 후 알코올램프로 불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그 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스푼을 커피에 넣으면서 설탕을 녹였습니다. 그런 걸 눈으로 보고 입으로 즐기면서 학생들은 문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당시에 형은 <독일인의 사랑>의 한 구절을 언급하면서 ‘네 것’과 ‘내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 반지를 나한테 주고 싶다면 그냥 네가 간직하는 게 좋겠어. 네 것이 곧 내 것이니까.’    


그 수업에는 귀여운 여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눈송이가 눈썹에 쌓이는 아이였습니다. 훗날 그 학생은 학벌 좋고 예쁘기로 유명한 여배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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