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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아직은 따라올 수 없는 것

디자인 에세이

by 스페이스댕

나는 매 순간 시간을 통해서만 실제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시간의 연속이라 느끼는 것도 순간 받아들인 국소정보 하나씩을 이전에 경험하여 기억 속에 담긴 것들 위에 씌워서 만들어진 각 장면의 인과관계를 인식하는 것뿐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세상과 일체였다. 환경과 자신을 분리하여 인식하지 못했다. 또한 각 순간에 인지한 장면은 인과 관계가 없었고 따라서 시간이란 흐름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몸속 어떤 신호의 결과가 나의 손과 몸을 무작위로 움직이게 하고 그 결과 세상과 시각적, 물리적 접촉이 일어나며 그 접촉이 일어나는 지점의 센세이션이 나 자신과 세상을 나누는 경제 지점으로 인식하면서 비로소 환경과 자신이 분리된 세상의 모델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순간의 장면이 기억과 합쳐지면서 앞뒤 장면의 관련을 알게 되고 그래서 그 인과의 관계를 시간의 흐름이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물리적인 세상과 상호 작용하면서 점진적으로 만든 머릿속의 세상 모델을 활용하면서 자아와 환경을 구분하고 시간을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방의 왼쪽 구석을 정하고 그곳만 바라보자.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한 곳만 바라보기 쉽지 않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여러 시점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눈을 빠르게 움직이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그러면, 방의 오른쪽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방의 왼쪽 편 주변시선 어딘가에 있는 것들도 자세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시선을 천천히 돌려 방의 오른쪽 구석의 한 점을 바라보자. 이번엔 방의 왼쪽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한순간에 매우 작은 한 영역만 바라볼 수 있음에도 이제 당신의 방 구조를 완전히 인식하게 되었다.
잠시일지라도, 당신은 눈을 감고 그 공간을 어느 정도 탐색하는데 크게 지장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몇 초간 수집한 정보를 통해 머릿속에서 공간에 대한 모델을 이미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선을 방 오른쪽 구석으로 돌렸을 때 마치 방전체의 구조를 보고 있는 듯 착각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 바라보는 장면은 기억 속에 있는 장면과 함께 인지되면서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시간이 흘렀음도 인식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당신은 어떻게 우리가 순간의 세상을 경험하는지 실험해 보았다. 우리는 한 번에 한 순간, 한 지점밖에 볼 수 없음에도 마치 공간을 다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에 불편함이 없다.




우리는 수십 년을 이렇게 살아오면서 계속해서 세상의 모델을 머릿속에 만들어 저장해 왔다. 그리고 단지 시각적인 모델뿐 아니라, 공간 속의 움직임, 촉감, 맛, 향기, 단단함, 힘, 소리의 질감 그리고 그것들 각각의 변화가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내가 하는 말과 움직임이 그것들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를 통해 세상을 모델링해왔다. 그러한 순간순간은 분절된 경험이 아니라 그 순간 전까지의 모델링 되어온 세상의 일부로서 경험이다.


그런 경험은 오로지 물리적 세상과 물리적 시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이런 경험을 누군가 특정 언어로 묘사하더라도 그런 언어적 표현은 그 경험을 0.001 퍼센트도 실제 묘사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입력한 언어적 정보와 수학적 예측을 기반으로 사고한다. 다시 말하면 현재 인공지능의 한계는 사람들이 언어와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까지이다.




인공지능이 실제 물리적 경험의 99.99 퍼센트에 가까운 수준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기까지의 센서 기술적 발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런 수준의 데이터 수집도 순차적 흐름이라는 시간적 제약 속에서 이루어져야 인간의 경험과 가까워진다.

실제 그러한 로봇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동일한 장소에 동시에 활동 가능한 로봇의 수에 한계가 있고 그러한 데이터 수집은 단지 몇 초라도 시간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방대한 데이터를 쌓으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한다. 영원히 사람의 수준을 따라오지 못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 수준의 촉감과 후각, 통감을 가진 로봇이 집집마다 있어야 하고 그것들이 몇십 년을 걸쳐 이제까지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겪은 다양한 유니크한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개별 사람들의 뇌에 저장된 시냅스 수준의 구조를 인공지능으로 카피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근시일에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으로 희망한다.

그래서 여전히 사람만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시간을 통해 얻은 개개인의 독특한 경험과 그러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만들어온 통찰 -'지혜'라고 부르는 -이 아닐까 한다. 또한 사람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종의 물리적 영속성 추구라는 본능이 있다. 그것으로 인해 발생한 고차원의 감정, 도덕, 동기가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여전히 그것은 사람만이 경험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람의 목표가 인공지능으로 사람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우리의 희망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고, 실제 경험이건 인공지능을 통한 가상의 경험이건 사람은 각자의 정체성을 이루는 기억(세상의 모델)을 예전과 같은 해상도로 경험에 사용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의 쓸모를 만드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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