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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직 애가 없는 이유

세상 모든 가설

by 스페이스댕


어떤 나라에서는 결혼과 출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도 출산을 계속 미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산을 미루는 우리, 그리고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


"결혼한 지 3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아이 생각이 없어?"
한국의 많은 젊은 여성들은 친척들의 이런 질문을 애써 웃으며 넘긴다. 하지만 속으로는 생각이 많아진다.
"맞벌이에 대출도 갚아야 하고, 집도 아직 전세인데, 지금 아이를 낳아도 되는 걸까?"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왜 우리는 이렇게 고민하는데, 어떤 나라에서는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갖는 것이 자연스러울까? 경제 때문인가?


사회 분위기? 아니면 단순한 문화 차이일까?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 우리가 쉽게 바꿀 수 없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면?






빠르게, 또는 신중하게


미국, 캐나다, 호주와 같은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결혼과 동시에 빠르게 아이를 갖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 일본,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결혼 후에도 신중하게 출산을 미루는 것이 흔하다.


통상적으로, 이 차이를 설명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경제적 안정이 중요하니까!"

집값이 비싸고 맞벌이가 필수인 사회에서는 당연히 출산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주택이 넉넉하고 사회보장제도가 탄탄한 나라에서는 출산을 더 쉽게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 설명대로라면 경제적 준비가 되면 출산을 바로 해야 할 텐데,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내 집 마련을 마치고도 몇 년씩 출산을 미루는 사람들이 있고,
미국에서는 대학생 커플이 계획 없이도 아이를 낳아 키운다.


그러니까, 단순히 경제적 이유만으로는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결혼과 출산의 차이를 만드는 걸까?
혹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건 아닐까?




언제 독립하는가, 그리고 아이를 가지는 시기


결혼을 했다고 바로 아이를 낳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출산의 시기는 언제 결정될까? 단순히 돈이 준비되었을 때?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사실, 한 세대가 독립하는 시점 자체가 나라별로 다르다. 그리고 이것은 그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생존해왔느냐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 패턴은 단순히 현대의 일이 아니라, 고대에도 동양과 서양을 구분 지었던 흐름과 연결된다.

고대 유럽과 한반도를 비교해 보면, 이미 출산 시점의 차이가 존재했다.


유럽 여성들은 생애의 절반이 지나기 전에 출산하는 경우가 많았고, 한반도 여성들은 조금 더 늦게 아이를 낳았다.
이 차이를 만든 것은 단순한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그들이 살던 땅이 요구하는 생존 방식의 차이였다.


벼농사 사회를 생각해 보자.
논에 물을 대는 시기, 날씨에 맞춰 농사짓는 법, 토양을 관리하는 기술까지, 농업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세대 간의 지식 축적이 필요하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농사지었던 방식이 중요하고, 이걸 배우지 못하면 독립할 수 없다.

즉, 부모 세대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이 많을수록, 한 세대가 독립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결국, 독립이 늦어지고, 출산도 미뤄진다.


반면,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독립이 간단하다.
사냥을 나가서 사슴을 잡을 수 있는 힘과 속도가 생기면, 어른이 되는 것이다.
물론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벼농사처럼 오랜 세월 동안 부모의 지식을 물려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신체 능력이 완성되면 독립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런 사회에서는 세대 간 간격이 짧고, 출산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 차이는 단순히 가족 문화의 차이가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생존해 왔느냐가 가족 구조를 만들고, 가족 구조가 한 세대의 독립 시기를 결정하고, 독립 시기가 출산의 타이밍을 결정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같은 나라에서 부모 세대가 자녀를 오래 지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부모가 가진 자원을 물려받아야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독립이 늦어지고 출산도 신중해진다.

반면, 미국, 캐나다, 호주 같은 나라에서는 부모의 자원이 필수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그들 부모가 자녀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부모나 할 수 있다면 자녀를 지원하고 싶어 한다. 다만 가장 효율적으로 여러 세대가 동시에 잘 살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독립이 빠르니 결혼과 출산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렇게 보면, 단순히 "돈이 많으면 출산을 빨리 한다"는 말은 틀렸다.
더 근본적인 차이는 한 세대가 독립하는 시기가 언제인가에 있다.



결국, 결혼과 출산을 결정짓는 것은 바꿀 수 없는 ‘환경’


결혼과 출산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 나라의 지리적 환경에 따른 독립의 시점이다.

단순한 문화나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그 땅이 사람들에게 어떤 생존 전략을 요구했는가에 따라 독립, 결혼과 출산의 패턴이 결정된다.


땅이 넓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에서는 개인이 쉽게 자원을 확보할 수 있고, 독립이 빠르다.
결혼과 출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아직 젊은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반면, 땅이 좁고 자원이 제한된 나라에서는 부모의 지원이 필수적이고, 독립이 늦어진다.
부모가 충분한 자원을 마련해 줘야 자녀 세대가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출산을 미루게 된다.


이것은 현대에 와서도 다를 바 없다. 중세, 근대 유럽인들은 넓은 대륙안에서 서로 경쟁하며 항상 먼저 옆 동네의 자원을 쟁취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게 북미대륙으로 건너온 미국 최초 이민자들은 미대륙 원주민으로 부터 뺏은 땅에 있는 금광을 손에 넣기 위해 동부에서 서부로 빠르게 독립해서 이주 해야했다.


이들은 부모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독립하여 멀리 있는 곳에 먼저 도착하여 얻을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은 사람들이었다.


거대한 산맥으로 국토가 둘러 쌓여있고 거대한 하천으로 정착생활이 유리했던 아시아인들은 선제공격의 전략보다 방어와 장기간의 안정된 통치를 위한 도덕, 종교, 지식 등 정신적 장기 전략이 중요했다. 이들은 사회적 규범, 도덕적 가치가 일종의 생존의 자원이었으며 그것을 가지고 있는 부모와 씨족 집단안에서 보다 오랫동안 보호받으며 지식을 전수 받을 수 있었다.


이들은 혈연관계가 없는 산맥넘어의 새로운 곳에 나가서 얻을 수 있는 것 보다 내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이었다.


이 모든 것이 모여, 어떤 나라에서는 결혼과 출산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어떤 나라에서는 출산을 계속 미루게 되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기대수명이 짧던 고대의 경우 평균수명이 35세 정도이고 그래서 생애 절반 정도 나이에서 출산을 했다. 그때에도 유럽 인류는 아시아 인류보다 더 짧은 생애를 가졌기 때문에 동양의 인류에 비해 훨씬 빠른 시점에 첫 출산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평균수명이 90세로 늘어난 현대에는 생애 전반 1/3 지점에서 출산을 한다. 사실, 고대보다 출산 시점이 빨라진 것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본 두 방식, 그리고 현대 사회의 생존 전략


이제 궁금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독립이 빠른 사회와 늦은 사회 중 어느 쪽이 더 유리할까?


진화론적으로 보면, 출산을 빨리 하고 세대 간 간격이 짧은 사회는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
생태계가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빠르게 다음 세대를 배출하고, 변화에 맞춰 세대가 교체되는 것이 유리하다.


미국과 같은 나라들이 기술 혁신과 경제 구조 변화를 빠르게 따라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젊은 세대가 일찍 독립하고,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신속하게 적응한다.


반면, 출산이 늦고 세대 간 간격이 긴 사회는 오랜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
벼농사나 반도체 사회처럼 고도화된 지식을 세대간에 전수하는 것이 중요한 환경에서는 서두르기보다는 부모 세대가 충분히 지식을 고도화한 후에 태어난 자녀 세대가 그 지식을 충분한 시간동안 배운 후 독립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다.

한국과 일본이 고도의 산업 기술을 유지하고, 지식을 내려받는 교육과 장인 정신을 중시하는 문화가 발달한 이유도 이런 생존 전략에서 기인한다.


이 차이는 현대 국가들의 생존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미국은 새로운 지식과 아이디어에 기반한 스타트업이 활발하고 빠르게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반면,
한국과 일본은 높은 수준의 숙련도를 요구하는 산업(반도체, 자동차 등)에서 강점을 가진다.

각 나라의 경제구조와 경쟁력은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그 나라가 오랜 세월 동안 어떤 방식으로 생존해왔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결국, 결혼과 출산의 시점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만들어낸 아주 오래된 패턴인 것이다.






"언제 아이를 낳아야 할까요?" 그 답은...


많은 사람들이 결혼 후 출산을 고민할 때,
"돈이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 커리어는 어떻게 하지?", "지금 맞벌이인데 감당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 모든 질문의 배경에는 우리가 쉽게 바꿀 수 없는 더 큰 요인이 있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이 땅이,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결정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결혼 후 출산을 고민하는 것은 단순한 현대적 문제가 아니다.


이 고민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조상들이 선택해 온 생존 방식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니, 다음번에 "아직 아이 안 낳냐?"는 말을 들으면 이렇게 대답해도 좋을 것이다.


"이건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 조상들이 좁은 땅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안정적으로 살아온 오랜 역사 때문이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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