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남자는 하얀 거품이 반 정도 찬 검은 빛깔의 기네스잔을 건네주면서 마주편에 앉았다. 남자의 이름은 마크로, 키가 190cm 정도로 크고, 눈썹이 짙고, 프랑스 브랜드의 정돈된 가죽 재킷과 후디를 입고 있었다.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가 이마로 흘러내리자 그는 바로 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어 넘겼고, 그 과정에 눈이 마주치자 눈을 크라우상 모양으로 만들며 조금 웃어 보였다. 그러고 나서는 내가 기네스잔을 입 안으로 기울여 조심스럽게 한 모금을 마시는 모습을 담백하면서도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아주 짧게만 눈을 마주치고 자연스럽게 피하며 오늘 밤 우리는 어떻게 헤어지게 될까를 생각했다. 우리는 아스널 팬들이 모이는 런던의 유명한 펍 안, 높고 동그란 나무 테이블에 한 다리를 길게 걸친 채 앉아서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이제 막 알아가는 중이었다. 서로의 작은 눈빛과 제스처와 잠깐의 표정들에 근거해 서로의 성향이나 성격 같은 무성적인 것들을 유추해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과 보내는 시간은 주로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낸 장소의 분위기가 혼합돼서 기억으로 남게 되기 마련인데, 그 장소는 어쩐지 그와 어울리지 않는 곳으로 생각이 되었다.
주로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서로 소리를 지르면서 소통을 해야 할 정도로 붐비는 곳이지만 경기가 없는 금요일 오후 5시 43분의 펍은 조용했다. 이따금 들어와 기타 케이스를 내려놓고 드럼을 조립하는 인디 밴드의 멤버들 외에는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다. 여름이 오기 전이었고 해가 지기 전, 비어있는 펍은 유행과 열기가 한 번 쓸고 지나간 흔적처럼 유난히 낡고 건조하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가까운 작은 무대 위에서는 어린 락밴드 3인조가 사운드 체크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 자주 와?”
나는 “잭 다니엘스 테네시 허니”라는 단어와 귀여운 범블비 그림이 그려진 유리컵을 들고 살펴보면서 물었다. 금이 간 유리잔 안에 녹은 초들 이 겹쳐있었다. 마크는 끄덕이며 사는 곳과 가깝기 때문에 경기가 있을 때마다 자주 들른다고, 자신 또한 아스널의 팬이라고 말했다.
“다른 팬들은 거의 오지 않아?”
“올 수도 있겠지만,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왔다가는…”
“싸움이 나? “
“맞아 죽을 수도 있어.”
그 말에 내가 웃지 않고 애매하게 미간을 찌푸리자, 마크도 농담이라는 듯 크게 미소를 지어 웃다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진짜 그런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One two two, two three four, one two two, two three four. 밴드의 리드 보컬이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이상한 리듬으로 마이크를 테스트했다. 누군가를 웃기려고 하는 것도, 분위기를 띄워 올리기 위함도 아닌, 그러나 몇 안 되는 관객들을 잔뜩 의식한 듯한 어색한 마이크 테스트였다. 잭 다니엘스 테네시. 나는 유리잔에 쓰인 단어를 곱씹어보았다. 달콤하고 끈적이는 향이 입 안에 맴도는 것 같았고, 생각 없이 삼킨 기네스는 평소보다 가벼우면서도 쓰게 느껴졌다. 허니 잭 레모네이드를 시켰어야 했는지 후회를 하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요세미티에 가본 적이 있어?”
마크는 내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챘는지 화제를 돌렸다. 올려다봤을 때 그는 나의 가방에 달린, 흑곰이 그려진 요세미티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는 관심사가 넓고 다양해서, 누구와도 공통의 화제를 찾아 몇 시간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성격의 사람인 것 같았다.
“몇 년 전에 갔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하이킹을 하지는 못하고 잠시 산책만 했어.”
“나도 지난여름에 요세미티를 다녀왔는데, 정말 운 좋게도 그곳에서 높은 절벽에 클라이밍 하는 남자를 봤어. 프리 솔로라는 다큐 혹시 알아?”
“응, 봤어.”
“정말 재밌지 않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다큐거든. 왜 그렇게 그 다큐를 보면서 클라이밍이라는 행위에 열광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절대 직접 오르지는 않을 텐데. 그곳에 나오는 벽을 직접 만지고 싶어서 간 거였어. 그런데 마침 누군가가 진짜 클라이밍을 하고 있는 거야, 굉장히 높은 절벽을. 사람들이 다 절벽 아래에서 피크닉 매트나 캠핑 의자에 앉아서 와인을 마시면서 망원경으로 올려다보고 있더라고.”
그는 눈을 반짝이고 흥분하며 얘기를 이어갔다.
“어떤 사람들한테는 뇌의 공포를 자각하는 부분이 없대. 그 부위를 아미그달라라고 부르는데,”
“들은 것 같아. 그런 사람들은 더 스릴 있고 위험한 상황을 즐기면서도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던데. 알렉스라는 청년도 그런 거였던 거지?”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니었어. 검사 결과 알렉스한테는 아미그달라가 있었대. 놀랍게도. 고감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 도파민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 평균의 사람보다 더 많은 자극을 필요로 한대.”
마크가 암벽등반가의 뇌에 대해서 더 얘기를 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드러머가 시끄럽게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반복적으로, 귀가 터질 만큼 큰 소리로, 마치 시위를 하듯이. 하나의 심벌만을 반복해서 쳤다. 마크는 잠깐 말을 멈췄고 우리 둘은 멋쩍은 미소를 나눴다. 창문가에는 작은 크리스마스 전구들이 먼지가 낀 채 테두리에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천장에는 아스널의 팬들이 오랜 시간 동안 남겼을 빨간색과 검은색 마커의 그라피티와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찢어지는 소음에 무대를 쳐다보다가 흘끔 눈치를 보는 드러머와 눈이 마주쳤다. 드러머는 보란 듯이 과장되고 우쭐한 제스처를 사운드 엔지니어에게 보였다. 어쩔 수 없어, 뮤지션이니까, 와 같은 말투로 말하는 듯했다. 계산대에 서 있는 엔지니어는 심드렁하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이번에 드러머는 스네어 드럼을 똑같이 반복적으로 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소리 대신 무겁고 둔탁한 스네어의 소리가 펍 전체를, 그리고 그 안의 있는 머릿속까지 뒤흔들어놓았다. 마크는 드럼소리가 멈출 때마다 간간히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우리를 향해있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들이 지나치게 컸기 때문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졌다. 그의 소리가 멀어지면서 기타리스트의 모습이 더 선명히 보였다. 완벽한 물결처럼 세팅된 금발의 머리와 구겨진 체크무늬 남방이 잭과 매우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잭 다니엘스 허니 테네시.
잭이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던 것은 두 달 전, 장례 예식장에서였다.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