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수상하다

by 은빛영글

살랑살랑 불던 선선한 바람이 매섭게 차가워지고 거리가 어둑어둑해질 때면 밝게 불 켜진 상점마다 초록색 나무에 알록달록한 장신구와 반짝이는 전구들로 서로 질세라 화려하게 트리를 장식한다. 자동차 경적 소리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 사이로 캐럴이 울려 퍼지면 마음이 몽글몽글 설레기 시작하는 것은 비단 어린아이들 뿐만은 아닐 것이다. 동거인 중에 어린이가 있는 부모들은 하나씩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에 빠져든다. 제법 머리가 굵어진 아이들은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동심을 지켜주려는 부모들의 고군분투가 때로 눈물겹기도 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전 세계에 2억 명의 어린이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산타클로스의 썰매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결과가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기계 및 항공우주학과의 래리 실버버그 교수는 2억 명의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는 약 7500만 가구를 방문해야 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 집들이 평균 2.62㎞씩 떨어져 있다고 했을 때 산타는 총 1억 9633㎞를 이동해야 한다.
이 만큼의 거리를 24시간 안에 다니려면? 산타의 썰매는 시속 818만㎞로 달려야 한다. 실버버그 교수에 따르면, 산타의 썰매는 1초에 30만㎞를 이동하는 빛의 속도보다 130배 정도 느린 속도로 달려야 선물을 성공적으로 배달할 수 있다. 실버버그는 산타가 ‘특수 상대성 이론’의 대가일 것으로 보고 있다. 썰매가 빛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면 지상에 있는 우리의 시간과 산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것. 우리에겐 단 몇 분이 산타에겐 한 달과도 같은 시간이기 때문에 모든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할 수 있다.

출처 : 어린이 동아 기사 201-12-23
https://kids.donga.com/?ptype=article&no=20181223141512380284


이런 논리적인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산타를 설명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속도감에 한 번쯤 의심해볼 법도 한데 해맑은 12세 어린이는 산타에게 전동 조랑말을 받고 싶다며 여전히 두 손 모아 기도를 한다. 눈높이가 제법 엄마와 가까워진 덩치지만 마음만은 4세 못지않다.




“산타가 코로나 걸려서 우리 집에는 못 오신대.”

“동생이랑 사이좋게 지내야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실텐데?.”

훈육을 산타에게 떠넘기는 것은 우리 집에만 있는 일을 아닐 것이다. 떼쓰는 장난꾸러기들을 산타로 협박하는 12월의 흔한 풍경을 보며 크리스마스를 느낀다.

“예수님 생일인데 왜 네가 선물을 받아? 이상하지 않아? 심지어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 명절도 아니야. 다른 나라 문화까지 챙겨야 해?” 따위의 말로 설득 될 리가 없었다. 누가 봐도 허접하게 합성된 산타의 사진을 보며 내가 진짜 봤다고(언제?), 우리 집에 선물 놓고 갔다고, 우리 엄마가 산타는 믿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죄책감이 느껴진다. 이제는 산타의 정체를 밝힐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과 유리알 같은 순수한 마음을 깨뜨리고 싶지 않은 욕심은 창과 방패처럼 매년 속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혹여 놀림거리가 되고 상처를 받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이의 친구들이 고맙게도 “그래, 너는 산타 많이 믿어라”하고 뒷 말을 아낀다.

고맙다. 아직 어린 동생이 있어 커밍아웃을 못했지만, 내가 잊지 않고 너희 군대 가면 초코파이 보내줄게


약속도 안 지키고 동생이랑 싸우는 12세 어린이에게 “엄마 아빠 말 잘 들어야 산타가 선물 줄텐데?”라며 으름장을 놓자 “작년에도 말 안 들었는데 주던데?”라는 녀석.


뭔가 알고 있는 것 같다. 수상하다.





이미지출처 : 언스플래쉬,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