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를 두고 집을 나왔다.

by 은빛영글

쿵, 무겁게 닫히는 현관문 소리와 반대로 스르륵 조용히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은 내 몸에 연결된 전원을 뽑아내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구석에 주르륵 몸을 기대고 보니 거울에 비친 머릿속에 흰머리 한가닥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흰머리를 봤을 때는 놀라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덤덤하기만 하다. 놀랄 기력도 없어 그저 두터운 겉옷 속으로 녹아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엄마, 나 머리가 아프고 몸이 덜덜 떨려. 배도 조금 아픈 것 같아.”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이었다. 잠든 엄마의 몸을 흔들어 깨우는 아이의 목소리는 다른 식구들이 혹시라도 깰까 조심스럽기만 했다. 한없이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추켜올리지 못한 채 더듬더듬 아이의 이마를 짚어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겨우 말을 이었다. 수면과 기상의 중간 즈음을 넘나들고 있을 때 아이가 품을 파고들었다. 얼핏 눈높이가 비슷해졌지만 여전히 아기 같은 아이를 토닥이며 옅은 잠에 빠져들었다.




사장님은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고 전화가 오면 애들이 먼저라고 퇴근시켜 주셨고, 방학인 지금은 재택근무와 출근을 병행하며 아이들을 돌봐주라고 먼저 말씀해주셨다. 개교기념일이나 학부모 참관 수업 때도 시간 사용에 있어 다른 워킹맘들에 비하면 편하게 대해 주셨다. 집에서 사무실 거리까지 가까워 아이들 전화를 받고 뛰어가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급여가 적은 아쉬움은 있지만 절대로 지켜야 할 괜찮은 조건이다.


옅은 잠에 빠져든 눈꺼풀은 작은 아이의 발바닥에 정수리를 맞고 셔터를 올려야만 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노트북을 켜고 루틴대로 움직였다. 따뜻한 커피도 한잔 준비 하고 썰렁한 공기에 얇은 겉옷을 하나 걸쳐 입었다. 이른 새벽의 지나가는 에피소드였는지 생생한 꿈이었는지 눈동자는 현실에 적응하느라 분주했다.


끼익. 아직 열리면 안 될 문이 열려 시선이 그쪽으로 옮겨졌다. 비실비실 거리며 나온 아이는 물을 한잔 마시고 코를 풀더니 서 있는 상태에서 몸 안의 것들을 밖으로 뱉어내고 말았다. 어제 저녁에 먹었던 것들이 밤 새 소화가 안 됐는지 급한 대로 싱크대에 게워냈다. 마치 수류탄이 터지듯 비릿한 내음과 함께 사방으로 튀어댔다. 바로 앞이 화장실이었는데 싶어 터져 나온 한숨에 아차 싶었다. 눈치를 보며 건넨 “미안해”라는 말에 괜찮냐는 물음이 닿기도 전에 2차 수류탄이 쏟아져 내렸다. 대략 143cm 정도 높이에서 쏟아졌으니 어디까지 퍼졌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과 괴로운 몸 상태에 얼굴이 잔뜩 찌푸러진 아이는 화장실에 가 대충 닦아내고 침대에 누워 열린 문 틈 사이로 뒷정리를 하는 엄마를 바라봤다. 침대 위에서 토하지 않았으니 괜찮다며 키친타월과 물티슈를 잔뜩 뽑아 바닥과 싱크대를 닦아내는 분홍 고무장갑을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다 꿈뻑꿈뻑 잠이 들었다. 소리 죽여 쓰다듬은 이마에서 뜨거움은 느껴지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아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주방은 따뜻하게 데워졌다. 참기름에 살짝 볶은 야채와 찬밥에 물을 부어 뭉근하게 불리고 눌리지 않게 계속 저었다. 따듯한 온기가 아이의 빈 속을 달래주길 바라며 세지 않게 간을 맞추었다.

아이의 입술은 비가 오지 않는 사막의 그것과 같았다.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묻히는 아이에게 따뜻한 물을 건넸다. 한참을 누워 바라보기만 하다 곁에 다가와 앉은 아이에게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죽을 조금 떠 건넸다.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으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 숟가락 입에 넣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머리가 울리니 등도 두들기지 말라는 아이의 손사래에 한걸음 물러서 지켜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리 배려 좋은 조건의 회사라도 대체 인력이 없어진 상태라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잠시라도 가야 했다. 병원에서 지어준 약을 먹고 누워있던 아이는 혼자 있을 수 있다고 끄덕였다. 급한 일만 얼른 끝내놓고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서둘러 신발에 발을 구겨 넣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쿵 내리찍는 다급한 현관문 소리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우릴 위해 열심히 사는 건데,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네
(드라마 '미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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