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사겠지
시댁에서 귀여움을 담당하고 있는 막둥이 시조카가 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콩알만 해서 ‘이거 언제 사람 되나’하는 부모의 걱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영글어간다. 제법 오래 얼굴을 보지 못했던 친구들의 아이들 중에서도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며 책가방을 고르러 간 사진이 sns에 하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랜선 조카들이 가방을 메고 있는 모습도 제법 야무졌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마음이 어떤지 알기에 하트를 꾸욱 눌러준다.
첫 아이가 입학할 즈음, 첫 조카 입학 선물이라고 동생님께서 무려 백화점에 데려가 맘에 들어하는 가방을 사 주고 둘째 조카에게도 작은 가방을 하나 선물해 줬다. 시어머님은 본인이 첫 손주의 가방을 사주지 못함이 못내 서운한 눈치였지만 가방 하나에 1,2만 원 하는 것도 아니라 어머님 주머니 사정을 빤히 아는 며느리로서는 그 아쉬움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첫째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이고, 둘째는 중학년에 들어간다. 둘째 입학을 준비하던 시기에 초등학교 저학년용 가방 한 개에 2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라벨을 보며 덜덜 떨었었다. 새삼 동생의 지출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라벨을 보며 덜덜 떠는 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가장으로서 더 심하게 떨었을 수도 있겠다. 다가올 설날에도 큰 지출이 있을 것이고, 장인어른 생신에 시어머니 생신까지 줄줄이 돈 나갈 구멍만 있었기에 가장으로서 한숨이 나왔을 것이다. 굳이 이렇게 비싼 가방을 사야 되나 하면서 당시 4학년 올라가는 첫 째의 작아진 가방은 저학년용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저출산시대라 어떤지 모르겠지만, 결혼을 준비하던 당시만 해도 웨딩이나 베이비 관련 업종은 마르지 않는 화수분과 같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비싼 값을 지불하더라도 외면할 수 없다고 여겨졌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금액의 가치를 모르는 아이에게 한 개에 몇십만 원 하는 가방을 선뜻 사주기에 우리의 그릇은 작았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몇 달 후면 질릴 것 같은 스팽글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가방이라든가, 엄청 지저분해질 게 눈에 빤히 보이는 밝은 색 가방만 골라 대는 둘째의 손목을 꽉 잡아 저지하고 싶었지만 늘 첫째에 치여 서러운 둘째의 삶을 잘 아는 둘째였던 엄마는 그 손목을 차마 잡아채지 못했다.
가방 1개에 24만 원이라고 가정을 했을 때 저학년용 가방은 평균 2,3년 정도 사용하니 2년이라 치면 1년에 12만 원. 그럼 한 달에 만원 어치를 메고 다니는 셈이구나. '내가 우리 둘째에게 한 달에 만원도 못 쓰겠어?'라는 이상한 계산으로 정신승리를 하며 결제를 했다. (24개월 할부로 결제한 건 아니지만)
이미 초등학교 입학을 지나간 선배 엄마들로부터 ‘가방, 비싼 걸 사줄 필요가 없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고 첫째가 가방을 얼마나 험하게 쓰는지도 지켜봤다. 학부모 참관 수업 날이나 아이를 돌봄 교실에 픽업 가던 날 바닥에 뒹구는 가방들도 수없이 봤다. 심지어 그 속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아 기겁할 수준의 더러움을 품고 있다. 알고 있다.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냥 모른 척하고 싶었다. 늘 첫째의 옷이나 주변에서 물려받은 옷만 입고 첫째의 취향에만 맞춰 외출계획을 세우고 따라다니기만 하는 내 심장의 반쪽 둘째에게 이거 하나 못해주나 싶었다. '내가 이럴 때 쓰려고 돈 버는 거잖아!' 계속 주절주절 멘털을 부여잡았던 걸 보니 아깝긴 했던 것 같다.
첫째와 아빠는 온 매장을 투어 하며 신중하게 고르는 둘째에 지쳐 같은 층에 있던 레고 매장에 머물다 닌텐도 매장에 자리 잡고 사지도 않을 게임을 체험하며 버텼다. 그래도 아이는 행복했다. 매장의 밝은 조명을 받으며 아빠 키보다 훨씬 높이 뻗어있는 거울에 비친 반짝이는 가방을 멘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모습에 슬슬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엄마 아빠의 것도 아니고 첫째의 것도 아닌 자기 것을 고르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래, 네가 행복하니 그거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