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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Dec 31. 2016

20161231-20170101

100번 째 브런치 - 하루 같던 1년, 음악의 옷을 입다.




바람의 피치와 빛의 코드가 잘 맞지 않는 봄. 

파스텔 번짐처럼 다투며 핀 작은 꽃들에서 미세한 현기증을 느낍니다. 

목련 등 꺼지고 어린 연두의 살빛에 하얀 찔레와 조팝의 팔에 성장한 부인 같은 보랏빛 라일락, 

아기 손 은행 잎, 

그렇게 음악 같은 봄이 착한 실타래처럼 풀려 나갑니다. 

모양을 만들며 날고 있는 바람에게 생각의 씨를 뿌리고, 

새싹 같은 새벽이 오면 이보 포고렐리치의 모차르트 K.331을 듣습니다. 

4월의 손가락이 만져지네요. 



아침이면 雀舌茶 한 잔 만들어 마음의 비상구로 나가지요. 

하이든의 현악 4중주 No.76-5 2악장의 아름다운 공간은 이내 휴가입니다. 

삶은 미지의 공명판이 울리는 것, 

사람과 사람이 낑김과 겪음의 한낮이 되면 정직한 달력과 착한 시계 속에서 음악을 짜 보세요. 

바흐의 시칠리아노는 어떨까요?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 major 2악장은요?   

포자처럼 떠도는 흡음성과 햇빛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면 자신의 몸을 간신히 떼어 낸 바람 조각은 자칫 소심해 보이는 여름입니다. 



8월,

분명 같은 배경으로 떠 있는 태양과 구름이지만 명징하게 다르게 보이는 오후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이 어떨까요. 

아름다운 소리 바이러스가 반점처럼 고이겠지요. 

꽃이 만들던 음정이 들리지 않아 섭섭했던 지난겨울의 심심했던 초록 장미나무가 아기 손길처럼 꽃망울을 들고 오면 하차투리안의 가면무도회 왈츠를 들어도 좋아요.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중 왈츠나 베버의 무도회의 권유가 겹겹의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춥니다.

저녁이 어울리는 가을이네요. 

흔들리는 루트 기호처럼, 

혹은 젖은 달처럼, 

화려한 해의 붓질처럼, 

바다에 뜬 쌍무지개의 당첨처럼, 

조건과 이유 없이 마음의 창에 따뜻한 빛 그림을 만드는 그 저녁 말입니다. 

하나 둘, 빛이 목숨을 버리면 삶의 질감이 누글누글해져요. 


풍경이 사륵 사륵 고이는 소리 들리세요? 

베르너 토마스의 첼로로 “하늘 아래 두 영혼”을 들으면 마음이 다림질한 셔츠처럼 펴집니다. 

피콜로 피치처럼 높이 솟은 메타세쿼이아 나무 사이로 반항하지 않는 석양이 지나가면 포스터처럼 펄럭이는 노을을 걷어다 개키세요. 



콰르텟 같은 하루의 마지막 악장은 아다지오로 만들어야죠. 

그 시간은 마이너라도 괜찮답니다.  

생각을 풀어낼 요량이면 가끔씩 게으른 산보를 해요. 

마음의 땅 두어 마지기 투자하면서요. 

시간의 마디가 길게 느껴지면 쇤베르크의 백야를 들어도 좋겠죠. 

표면장력처럼 안타깝고 아찔한 시간이지만 깨진 물빛으론 가지 말아야 합니다. 

낭떠러지엔 나침반이 소용없으니까요. 

몰래 가는 세월을 훔치려고, 어둠을 헤치는 캐미처럼 깨어 앉아 정적의 화랑에 취해있던 새벽이었는데,

또 그 하루를 다 마셔가는 겨울밤입니다.

다시 음악을 걸어요. 



말러의 뤼케르트 시에 붙인 가곡 “나는 세상에 잊히고”,

시계처럼 왔다가 날짜처럼 가는 그런 음악 말입니다. 

마음을 깎고, 

가슴엔 수놓고, 

생각은 적시어 하늘에 널고, 

둥글고 흰 날을 또 한 번 접는 그런 날이 열리리라 믿습니다. 


본디 바람은 소리가 없습니다.

바람은 스스로 울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나뭇잎과 물, 그리고 사람이 흔들릴 때 바람이 그 옆에 있을 뿐입니다.

아니 그 곁을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지요.

가끔은 흔들려야 편합니다.

바람이 없으면 흔들림도 없습니다.

바람이 없으면 나무도 자라지 않고 꽃도 필 수 없습니다.

그러니 흔들림은 즐거운 일입니다.



한 해가 또 다시 농담처럼 지나갑니다.


다시 얻은 365일의 선물,

그윽하고 다정하길 바래봅니다. 

브런치 가족 여러분 라온 혜윰 많이 지으세요.


* 라온은 순 우리 말로 '즐거운' 이라는 뜻, 혜윰 역시 '생각' 이라는 뜻의 순 우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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