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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an 31. 2017

낯선 곳에서의 특별한 아침

스리랑카 콜롬보, D Pavilion inn




똑똑...

희미하게 노크 소리가 들린 듯했다.

그러나 현실감이 없었다.

똑똑똑...

breakfast, Madam!


블랙퍼스트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아~, 내가 어제 스리랑카에 왔지.

눈을 뜨니 하얀 망사 캐노피가 맨 먼저 보였다.

무겁게 내려앉은 우드 블라인드 곁으로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급히 대답을 하고 시계를 보니 10시 10분 전,

새벽 1시가 넘어서 가까스로 호텔에 들어왔고 4시쯤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높은 천장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실링팬이 낯선 듯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겨우 옷을 바꿔 입은 후 문을 열고 나갔다.

눈부신 빛의 파장이 풀장을 가득 채운 물속을 파고 들어가 반듯한 타일을 비뚤비뚤 흩트리고 있었다.



- 굿모닝 마담!


그는 해맑은 미소로 다가와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며 테이블 쪽을 가리켰다.

원한다면 방 문 옆에 놓인 테이블로 가져다주겠다는 말을 하는 동안에도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풀 사이드의 선 베드에 중년 나이의 유럽 여자가 반쯤 누워 책을 읽고 있다.

라오스의 국화인 참파 꽃 몇 송이가 드문드문 피어있는 나무 아래로 벤치 하나가 그림처럼 한가하게 놓여 있다.

거기서 열 개쯤 되는 돌계단 위로 세 개의 테이블이 보였다.

그곳이 식사하는 곳이다.

한 개의 스위트 룸을 포함한 7개의 객실을 보유한 부티크 호텔,

그곳의 게스트들은 저녁마다 다음 날 아침 식사에서 무엇을 먹을지 체크리스트를 작성해야 한다.

음식물을 쓸데없이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일 테니 아주 합리적인 운영 방식이다.

소박한 식사지만 레스토랑처럼 정성 어린 서빙이 차례로 이어졌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키 작은 남자가 차근차근해나갔다.

머리칼은 하얗지만 얼굴엔 주름은 없고 언제나 아기 웃음이 떠나질 않는 그의 이름은 Bodi,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52세에 7살짜리 딸이 하나 있다고 했다.

- 늦게 결혼했거든요.

그는 내가 방에서 나가면 언제나 지체 없이 다가와 

- 커피 드릴까요?, 뭐 필요한 게 없으세요?

하며 방글거리며 묻곤 했다.

낯선 곳에서의 늦은 아침 식사가 특별했다.

챙겨주고 거들어주는 보디 덕에 나는 오래된 저택의 부인처럼 편하고 느긋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리셉션 옆으로 넉넉한 응접실이 있다.

반질반질하게 길든 고풍스러운 진 브라운 가죽 소파, 라탄 테이블 위에 놓인 화병이며 그림과 소품들이 마음에 쏙 들었다.

어찌 보면 중국 도자기로 보이는 청화병이 여럿 놓여 있고 등받이가 아주 긴 나무 의자 역시 중국 느낌이 들었다.

응접실은 서재와 연결되어 있는데 탐날 정도로 멋진 앤티크 타이프 라이터가 놓여있고 책장엔 나이 든 고서들이 그득했다.

아름다운 곳이다.

   


콜롬보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떠나온 여행이던 터라 오토 릭샤를 대절하기로 했다. 

리셉션에 부탁하니 5분이 채 되지 않아 장난감처럼 빨간 오토 릭샤 한 대가 호텔 마당으로 들어왔다.

빨간 티셔츠를 입고 온 릭샤 기사 이름은 엔튼, 

스리랑카나 인도 사람들의 평균 키에 비하면 월등히 커 보이지만 173 정도나 될까?

값을 물으니 자기는 km당 계산하니까 걱정 말고 타라고 한다.

콜롬보에서 꼭 가볼만한 곳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는 몇 개의 사원과 등대, 그리고 독립 기념관에 갈 것이라고 했다.



콜롬보 역시 인도와 다르지 않게 혼잡했다.

오토바이와 릭샤, 그리고 자전거와 자동차가 뒤엉켜 2차선 도로를 6~7개의 탈 것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 했다.

신호등 때문에 잠시 정차해있는 동안 오른쪽 릭샤에 탄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주저 없이 생끗 웃었다.

때 묻지 않은 그 미소가 매연과 경적과 혼란 속에 지친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왼쪽 역시 오토 릭샤가 한 대 서 있다.

반 백의 릭샤 왈라의 발이 보였다.

대부분의 릭샤왈라들은 맨 발이고 그 역시 맨 발,

발바닥은 물론이요, 발등이 거북이 등껍질 같다.   

  



맨 처음 간 켈라니야 사원

한번 참배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지은 모든 죄가 사해진다는 사원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8년 후 성도절 보름날, 그곳에 방문하시어 강물에서 목욕을 하고 직접 설법을 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란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옷 색깔이 모두 흰색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원으로 들어서자 90%의 사람들이 모두 흰옷을 입고 있는 게 보였다.

아이보리색 레이스 컬러가 달린 블랙의 린넨 원피스에 역시 검은 테가 둘러진 파나마 햇을 눌러쓴 나는 그야말로 백조 무리에 낀 흑조나 다름없었다.

사원에는 민소매나 짧은 바지는 출입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나름 점잖고 품위 있는 옷으로 선택한 터였다. 

안 그래도 외국인이라 눈에 띄는 데다가 키는 뻘쭘하게 큰 여자가 검정 옷을 입고 사원에 들어섰으니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어찌할 바 모르겠다.

그곳 사람들은 흰색을 가장 순결 한색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원에 갈 때면 흰 옷을 입고 참배한다고 한다. 

가장 순수한 마음을 부처에게 보이기 위함이란다.

어떤 부인께서 내게 몸짓으로 이르셨다.

신발과 모자를 벗으라는 뜻이다.

한쪽에 샌들을 벗어놓고 모래가 깔린 바닥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 뜨거움에 깜짝 놀랐다.

30도 남짓한 기온이지만 그곳의 햇빛은 포일에 반사된 것처럼 뜨겁고 밝았다.

하지만 불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모래 바닥에 앉아 불경을 읽거나 합장을 하고 스투파 (Stupa)를 돌고 있었다.

스투파란 불교에서 불타의 사리를 봉안한 기념비적인 건조물을 가리킨다. 

자이나교에서도 성현의 유골을 안치한 건축물을 스투파라고 부르지만 원래 베다 문학에서 스투파는 '정상, 꼭대기'를 뜻하는 말이었다. 

불교의 스투파는 반구형의 돔 형태로 벽돌이나 돌로 만들어졌고 대부분 하얀색이다.

스리랑카 말로는 다고바 (Dagoba)라고 불리는 거대한 원추형 불탑에는 부처의 유골 또는 쇄골이 모셔져 있었거나 모셔져 있다고 하여 사리탑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단다. 

   


스투파 주변이든 불상 앞이든 어디에나 꽃이 놓여 있다. 

무엇을 믿는다는 건 마음이 순수하다는 뜻이다.

하물며 신을 믿는다는 건 순수 중에서 으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종교란 삶의 목적이자 일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같은 불교 문화인데 우리나라는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데 비해 그들은 다리를 쭉 뻗고 앉아 기도하는 모습이 독특했다.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하여 1950년 만들어졌다는 인도양의 불빛이 되는 등대를 보았다.

특별한 아름다움이나 멋, 그리고 수 백 년 된 역사도 아닌 등대가 내겐 무가치하게 느껴졌지만 그네들에겐 의미 있는 등대였으리라. 



콜롬보 포트 역으로 향했다.

다음 날 갈레(Galle, 골)로 갈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다음 날이 일요일인 탓에 아침 7시 30분 기차 티켓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기차를 타면 해변을 따라가는 풍광이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엔튼에게 다음 날 일찍 호텔로 올 수 있느냐고 물으니 그러겠다고 해서 티켓을 구입했다.


콜롬보 포트 역


기차역 바로 옆에 있는 페타 바자르를 구경하기로 했다.

여행자들이라면 시장 구경이야 말로 흥미로운 일 중 하나이기 마련이다. 

스리랑카 최대의 상점들이 모여있다는 그곳은?

품질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옷가지들과 일명 쪼리라 불리는 스리랑카 전 국민들이 애용하는 슬리퍼, 그리고 디자인이 무척 조악한 가죽 제품 등 공산품을 파는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을 뿐 나의 관심이나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밥 먹을 곳으로 가자고 했더니 알았다고 할 뿐, 무슨 종류를 원하는지 어떤 급을 원하는지 묻지 않고 한참을 달려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발레 파킹 까지 해주는 현지식 고급 레스토랑 우파 리스,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성업 중이다.

종업원 역시 그 숫자가 많았으나 자리를 인도받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11시 반부터 음식이 소진될 때까지 진행되는 런치 스타일의 현지식은 밥과 네 가지의 커리와 채소들이 곁들여 나오는 세트 메뉴가 있었다.

그 이름은 탈리, 쉽게 말해 우리나라의 백반 같은 의미이다.

물어보니 가능하다고 하여 그 세트 메뉴와 탄두리 치킨을 주문했다.

엔튼은 식사를 함께 하자는 나의 제안을 극구 사양했다.

근처에 딱히 무엇을 사 먹을만한 게 없어 보여 자꾸 신경이 쓰여 밖으로 나가 그를 찾았다.

하지만 주차된 차들 저 쪽 귀퉁이에 그의 릭샤만 보이고 그는 보이지 않았다.

                                                                                                                                                             

탄두리는 화덕을 뜻하는 단어인 탄두르(Tandoor)에서 파생된 말로 탄두르에서 익힌 요리를 뜻한다.

그러나 치킨은 시커멓게 탄 부분이 많아 껍질을 거의 벗겨내야 했고, 곁들여 나온 난도 차파티도 아닌 빵? 은 퍽퍽했다.

이동식 수레에서 즉석에서 퍼주는 밥과 함께 나온 세트 메뉴의 비트채 절임이 그나마 새콤하고 아삭거려서 입맛을 돋우었다.

고급 음식점이긴 하지만 그들은 한결 같이 포크나 스푼을 사용하지 않았다.

타액의 불결함에 대한 생각으로 식기를 쓰기 싫어하는 인도와 스리랑카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연 그대로의 것으로 받아들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행위도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 몸이 더럽지만 그래도 타인의 타액이 묻지 않은 가장 깨끗한 식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지금도 손으로 밥을 먹는다.



물을 다스리는 왕이라는 뜻을 가진 강가라마야 사원은 콜롬보 최대 불교사원으로 1885년 히카두에스리나야카 스님이 창건하였다. 

이 곳은 스리랑카 불교 재건을 주도한 곳이다.

사원 안에는 박물관과 법당이 있다. 

박물관이라기보다 고물상 같은 느낌이다.

전시가 아니라 되는대로 늘어놓고 쌓아놓은 고물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어수선하게 늘어놓였다.

다른 불교국가에서 보내온 불상, 불경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생뚱맞게 한국의 금관 모형도 보였다.  

그곳에 특이한 불상이 있었는데, 바라보는 사람의 위치가 움직일 때마다 부처의 시선이 따라오는 게 신기했다.



시마 말라카 사원(Seema Malaka Temple)은 물 위에 세워진 사원으로 인공호수인 베이라 호수 위에 있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인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가 설립한 불교 사원으로 유명하단다. 

다른 사원들과는 다르게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이다.

호수 너머로 보이는 고층 빌딩들로 인해 싱가포르나 방콕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했다.  

                                       


독립기념관 옆 공원의 이름이 계피 공원(Sinnamon Garden)이다. 

그곳에서 크리켓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게임의 룰은 모르지만 인도와 스리랑카 사람들이 즐기는 스포츠라고 한다.

그런데 크리켓 배트가 꼭 나 어릴 때 빨래할 때 쓰던 방망이를 닮아서 혼자 피식 웃었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처음으로 국회가 열렸던 자리라고 한다. 

기둥과 지붕으로만 되어 있는 석조건물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돌의 서늘한 그늘과 기둥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무척 시원했다.

그런 이유인지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 있다.

독립기념관 앞에는 초대 총리이자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스테펜 세나나야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엔튼에게 과일과 주스, 그리고 맥주를 살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슈퍼 마켓에서 쿠키와 청포도를 사고 13살이라는 딸아이에게 주라고 쿠키를 사주었다.

맥주는 인도와 마찬가지로 허가받은 주류 점문 상점인 와인 샵에서 별도로 살 수 있었다.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거나 맘에 드는 볼거리 하나 없는 콜롬보였다.

그러나 호텔로 돌아온 순간 '이곳에 잘 왔어' 라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은 보디 때문이었다.

원래부터 그의 얼굴은 미소라는 마스크가 씌워져 있는듯하다.

그는 버선발로 뛰쳐나오듯 급히 나를 반기며 배낭과 카메라를 받아 들었다.

그러면서 어김없이 건네는 말, 


- 시원한 주스를 드릴까요? 커피를 드릴까요?


많은 호텔을 다녀봤고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처럼 진심 따뜻하고 온화한 말을 끊임없이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샌들을 벗고 발바닥에 닿는 흑갈색 마루 바닥의 차가운 나무 감촉에 피로가 사라졌다.

키 큰 나무 장을 열고 모자를 벗어놓고 옷을 갈아입는다.

샤워를 하고 평소에 즐기지 않는 맥주 킹 피셔 캔을 들고 밖으로 나가 풀이 보이는 방문 옆 테이블에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보디는 투명한 유리 글라스를 가져다준다.

그리고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 내일 아침 조식을 어떻게 준비할까요?

- 제가 내일 아침 일찍 기차를 타러 가야 해서 아침 식사를 못해요. 미안해요, 보디.

  혹시 런치 박스를 준비해줄 수 있나요?

-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샌드위치와 과일, 물을 준비해 드릴게요.

  어떤 샌드위치를 원하세요?

- 참치 샌드위치가 좋겠어요.

- 참치는 저희가 준비를 못했어요. 에그 치즈 샌드위치가 어떠세요?

- 그것도 좋아요. 고마워요.


객실 청소부터 게스트 시중까지 많은 일을 척척 해내고 있는 보디


다음 날, 새벽

보디는 정성스러운 런치 박스가 들어있는 얇은 나무 정도의 두툼한 종이 가방을 건넸다.

자기는 오늘 아침 off 해서 모레 아침에 출근할 거라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그곳에 러기지를 맡기고 골에서 1박 하고 콜롬보로 돌아와 다시 1박 할 예정이었다.

엔튼은 약속한 시각보다 5분 일찍 호텔로 왔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고 했다.

Sri(빛나는) Langka(섬)이라는 뜻의 스리랑카,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지나갔다.

그곳에서의 첫 만남이 보디인 것은 큰 행운이다.

새벽 별 몇 개가 빛나고 있었다.  


스리랑카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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