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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Feb 17. 2024

여행지에서 가져온 꿈, 디아(Dyia)

바라나시 갠지스강






여행은 기분 좋은 수고입니다.

아름다운 벗어남이기도 하지요.

여행을 간 섬에서 태풍을 만나거나 산간 오지에서 폭설을 만난다면 어떨까요?

'바다가 하품을 하는 군, 아니 기침을 하는 걸까? 구름이 알을 낳고 있는 중일지도 몰라'

이런 낭만적인 생각만으로 일탈을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 하는 여행을 했습니다.


바다는 배신을 하지 않더군요.

언제라도 변함없이 우리를 반겨주었죠.

모래는 가는소금보다도 더 고왔습니다.

발이 시렸지만 맨발로 무언의 소통을 나누었습니다.

백사장에 찍힌 발자국들은 그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대화를 짚어보는 상상도 흥미롭더군요.


바다 곁에선 잠을 설치곤 합니다.

바다가 내내 나만 바라보는 것 같아서요.

몇 번이고 자다 깨어 발코니에서 밖을 내다보면 바다가 웃어주듯 파도의 하얀 이가 어둠 속에서도 선연했습니다.

노트북에서 마이클 호페의 음악을 꺼냈지요.

그제야 바다도 나도 단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렇듯 음악은 어떤 배경에나 잘 어울립니다.

책의 언저리, 미술관의 그림 사이를 돌아다니는 음악, 차와 와인이 있는 카페, 식물원의 나무와 꽃잎 사이, 수술복을 입은 집도의의 어깨, 오랜만에 찾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여행을 떠나는 자동차 안, 내 죽음의 배경에서 조용히 흐를 장례음악까지 어떤 배경에서든 편함과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줍니다.


소중한 것은 항상 더디게 오는 법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행복역으로 가는 꿈을 꾸며 삽니다.

꿈은 더디 오는 그 무엇을 기다릴 수 있는 힘이니까요.

여행의 마지막 날, 새벽비가 내리더군요.

바다에 비가 내리는 풍경을 본 적 있으세요?

비가 둥그런 언어로 바다와  몸이 되는 건 달리 수식이 필요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입니다.

비는 곧 눈으로 변하고 아침 식사를 하는 뷔페의 긴 창문에 늘여졌던 롤 스크린은 이미 몸을 둥글게 접고 있었지요.


옛 선인들은 눈보라와 삭풍 속에 피어나는 눈꽃이 육각형의 결정이라 하여 육화(六花) 또는 육출화(六出花)라 했답니다.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 꺾어 내어 임 계신데 보내고저 임께서 보신 후에 녹아진들 어떠리.' 하는 송강의 시처럼 아름다운 눈송이가 선물처럼 내리고 있었어요.

그 순간 고립무원의 눈부신 일탈을 꿈꾸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어쩌면 발뿐이 아닌 운명까지 묶였으면 하던 문정희 시인의 눈부신 고립을요.


사랑하는 마음도 지구의 자전축처럼 23.5도 기울어져 있으면 합니다.

지루하지 않게 새로움을 가지면서 변함없이 돌고 도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은 서로의 마음이 같은 페이지에 있다는 뜻입니다.

속도를 달리하는 그리움, 비슷한 간격으로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 그러면서 마침표 없는 이야기를 쓰는 것,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인도에 가보지 않은 분이라도 이런 사진 본 적 있을 겁니다.

바나나 껍질을 엮어 만든 작은 바구니 안에 꽃과 나뭇잎을 넣고 작은 초를 켜서 소원을 빌며 갠지스 강물에 띄워 보내는 형형색색의 디아(Diya)

상념을 방류하는 동시에 희망을 따라가는 일종의 의식이지만 그런 따뜻한 이름을 가진 카페가 있어도 좋겠다 싶습니다.

그곳에서 희망 한 잔 마시는 상상을 하니 미소가 번지네요.

바라나시가 그리운 날입니다. (2008년 2월)




갠지스 강의 디아



*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클래식 월간지 <Coda>, <Andante>, <la musica>에 게재되었던 필자의 클래식 에세이와 음악 리뷰들을 <끄적임>이라는 제목으로 브런치에 소개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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