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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09. 2024

무너져가는 절벽마을에서도 꽃을 가꾸더라

16. 오르비에토, 시비타 디 바뇨레초






십 수년 전, 한 곳에서 3박도 고마웠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7박 이상 지내는 경우가 많다.

5박은 빠르게 지나갔다.

까사 보나리를 떠나는 날,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게 일찍 정원으로 나갔다.

올리브 나무밭으로, 소나무 사이로 그리고 사이프러스를 쓰다듬으며 산책을 했다.







10시 체크아웃, 오후 4시에 키안차노 테르메 체크 인.

평소와 다르게 밖에서 긴 시간(적어도 6시간)을 보내야 한다.

자매들은 시에나로 간다고 했다.

B와 나는 한 방향에 있는 오르비에토와 시비타 디 바뇨레초에 가기로 했다.

원래는 시비타에 갔다가 오는 길에 오르비에토를 들릴 예정이었으나 오르비에토로 먼저 향했다.


오르비에토는 시타 슬로(Cittaslow, 영어로 slowcity)를 실천하는 도시이다.

슬로시티 운동이란 로마의 스페인광장에서 맥도널드가 문을 연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이것은 패스트푸드 운동에 대한 대응으로 음식의 표준화를 거부하고 각국 고유의 음식을 지키자는 의도이다.

레스토랑 주인과 와인 생산자가 최고 품질의 음식과 음료를 준비하고 판매하도록 장려하는 방법으로 자연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음으로써 환경, 식물, 동물 및 인간 건강의 안녕을 고려하는 전통 요리 및 식품 생산의 보존에 중점을 둔다.

이탈리아의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를 시작으로, 오르비에토(Orvieto), 브라(Bra), 포지타노(Positano)를 비롯해 지금은 전 세계 97개 도시가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느리게 간다는 의미로 심벌 마크로 달팽이다.

이 표식을 발견하면 슬로 시티를 실천하는 곳이라 여기면 된다.

     


시타슬로 심벌, 달팽이



1년 전, 로마에서 기차를 타고 와서 푸니쿨라와 버스를 타고 역사지구로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골목마다 오르비에토의 지역별 코무네 깃발들이 다른 컬러로 걸려있다.

주차를 하고 약 1km쯤 걸었을까?

아름다운 대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딕 양식이지만 제일 먼저 눈길을 잡는 것은 역시나 화사한 모자이크 파사드이다.

오르비에토와 시에나 대 성당의 건물 옆 벽면이 검은색과 흰색 줄이 교차되어 있는데 이것은 지역에서 흔히 구할 수 있푸파라는 석회암이다.

 






오르비에토 대성당
푸파라는 석회암으로 만든 성당 벽면의 줄무늬




그곳이 처음인 BB를 위해 티켓을 구매하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오르비에토 대성당은 산 브리치오 예배당(La Cappella di San Brizio)에 그려진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이 유명하다.

1447년 안젤리코(Angelico)가 시작하여 루카 시뇨렐리(Luca Signorelli)가 완성했다(1499~1504년).

프레스코화는 부활과 구원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140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격동적인 정치적, 종교적 분위기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동시대의 화가 미켈란젤로가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을 그리기 전에 인간의 행동과 몸짓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 그림을 꼼꼼하게 보고 연구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말했다.

어설프게 베끼면 표절이 되지만 완벽하게 훔치면 걸작이 된다고...








루카 시뇨렐리의 최후의 심판 중 일부
루카 시뇨렐리의 자화상(왼쪽)과 프라 안젤리코.



14세기 중반에 지어진 코르포랄레 예배당(La Cappella del Corporale)은 볼세나 기적의 귀중한 유물인 볼세나의 리넨이 여기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헤미안(프라하)의 신부인 베드로는 1263년 로마 순례 중 볼세나에 들러 산타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체를 받아 드는 순간, 과연 이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이 맞을까 하는 의심을 품었다고 한다.

그러자 손에 쥐고 있던 성체에서 피 한 방울이 떨어졌고 전례에 사용되는 성체의 천을 빨갛게 적셨다.

오르비에토에 있던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이러한 기적적인 일화를 듣고 성스러운 리넨(성체의 천)을 오르비에토로 가져와 트란시투루스(Transiturus) 교서와 함께 성체 축일을 제정했다.

그리고 그 리넨 천은 코르포랄레 예배당에 지금까지 보관되어 있고 수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 붉은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성스러운 리넨(성체의 천)



대성당이 보이는 광장 한쪽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오가는 여행자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단체 여행자들이 성당 앞에 모여 이어폰으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그리고 성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골목 어귀로 사라지면 약속이나 한 듯 다른 여행자들이 우르르 나타나고 사라지곤 했다.


1년 전 프로슈토 플래터와 수제 트러플 파스타를 아주 맛있게 먹었던 레스토랑 L'oste Del Re도 지나갔다.

그땐 몰랐는데 이곳이 슬로시티라서 그렇게 담백하고 맛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장인들의 공방이 모여있는 좁은 골목길도 지났다.

역시 변한 게 없다.

그래서 더욱 친근하다.










*1년 전 오르비에토 브런치

https://brunch.co.kr/@silviano/235





  

'저~ 한국분이세요?'


시비타 디 바료레초에 주차를 하고 주차 머신에서 티켓을 꺼내는데 누군가 물었다.

돌아보니 젊은 커플이 서 있다.

화사한 원피스를 입은 여성으로 보아 신혼여행이 아닐까 생각했다.


'네, 맞아요.'

'저희가 오늘 렌터카를 처음 이용하는데 이 기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서요. 좀 가르쳐주시겠어요?'


나는 순서대로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원하는 주차 시간만큼 동전을 놓으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현금이 없단다.

역시 MZ는 다르구나 싶다.

어떻게 해외여행을 현금 없이 할 수 있지?

주차하려면 동전이 필요하니 준비해 갖고 다니는 게 좋을 거라 전하고 카드 이용법을 알려주었다.



주차장에서 연결되는 계단에는 바뇨레초 역사중심지까지 1분, 시비타 인포까지 도보 17분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 후로도 시비타를 가리키는 화살표가 곳곳에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오직 한 방향으로만 가면 되는데 말이다.












작년 피렌체 인근에 있는 마을 피에솔레에 갔을 때 가스 미터기를 덮고 있는 철재 커버에 그림을 그려놓은 것을 보았었다.

그런데 이곳에도 철재 커버 위에 아름다운 그림이 곳곳에 그려져 있었다.

고대 에트루리안들의 미적 감각이 뛰어났다고 하는데 과연 그 후손들이라 다른가 싶다.

앙증맞게 그려놓은 그림들이 캔버스에 그려진 고가의 그림만큼 귀하게 느껴졌다.








'죽어가는 도시'

오늘날 시비타 디 바뇨레초를 지칭하는 대명사이다.

이 말은 20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지성이며 문학가였던 보나벤투라 테키(Bonaventura Tecchi, 1896~1968)가 자신의 고향인 이 도시를 가리켜 처음으로 '죽어가는 도시(Città che Muore)'라고 표현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곳은 옛 주거지인 시비타(Civita)와 현재의 주거지인 반뇨레초(Bagnoregio)로 나뉜다.

그러니까 죽어가는 도시로 알려진 것은 바로 절벽 위에 있는 시비타이다.

하지만 선입견일까? 바뇨레초라 불리는 마을의 중심 거리도 이미 기운이 쇠한 느낌이다.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고 예쁜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도 없이 적막하다.  

하지만 아직 5월이고 고지대임에도 불구하고 기온이 꽤 높았다.

바뇨레초 역사지구를 통과하여 약 1.5km를 걸어가니 시비타가 한눈에 보이는 뷰 포인트에 다다랐다.

안개라도 끼었다면 분명 떠있는 것처럼 보일 시비타가 우뚝 솟아 있었다.






구름 사이의 시비타 (출처 : 구글)




저 다리를 건너가려면 아무래도 요기를 해야겠다 싶었다.  

나무들이 우거진 그늘 아래 간이음식점에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냉장고에 있는 샌드위치 밖에 없다고 한다.

딱딱하게 굳어 있을 차디찬 샌드위치를 먹을 정도는 아니다.

갖고 다니던 사탕으로 당 충전을 했다.

그리고 BB는 좀처럼 안 하던 말씀을 하셨다.


'나는 여기 있을 테니 혼자 갔다 올래?'


시비타로 연결된 다리는 실제로 보니 경사가 꽤 심해 보였다.

엄두가 나질 않으신 모양이다.


'저기 가서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여기까지 왔는데 아깝잖아요.'

'그렇지? 그럼 천천히 가 보자.'


시원한 탄산수를 마시고 숨을 돌린 후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약 300m쯤 내리막 길을 지나니 시비타 인포 서비스 센터와 다리가 나타났다.

티켓은 1인 5유로.

마을을 보존하는데 쓰는 기금이라고 한다.





뷰 포인트, 간이식당이 있다



시비타를 바라보는 여인의 조각상




바뇨레초는 2500년 전 에트루리아 인들이 적들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이 지역에 건설했다.

1659년과 1794년의 지진으로 지금의 시비타 지역과 바뇨레초 지역이 분리되었다.

그동안 침식으로 인한 산사태와 지진은 최소 13건이 있었는데 기록으로 남아있는 지진 중 하나는 1695년으로 32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수백만 년 전에는 바다였으나 화산활동으로 융기하여 형성된 지형으로 지반이 약하여 오랜 세월 바람과 비로 인한 자연풍화로 발생하는 침식현상 때문에 지반이 깎여 나가며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이다.

침식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주민들 대부분은 현재의 바뇨레초 지역으로 이주하여 치비타에는 16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가 그나마 14명으로 줄었단다.

이 마을에는 예로부터 고양이가 많은데 지금은 주민보다 고양이가 더 많이 사는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시비타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1965년에 건설된 콘크리트 다리걸어서 건너는 방법이 유일하다.

그 다리는 보행로이기 때문에 자동차는 접근할 수 없고 식재료 등 생활에 필요한 보급품은 스쿠터를 이용한다.

매년 전 세계에서 7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간과 침식을 거부하는 고대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다리의 시작 지점부터 성문까지 길이는 약 300m, 높이가 70m라 마지막 구간의 경사가 꽤 심했다.

그늘 한 점, 바람 한 줄기 없는 다리를 건너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야말로 헉헉거리며 도착한 성문은 마을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 산타마리아 문(Porta Santa Maria).

성문 옆 양쪽에는 사자들이 경비를 선다는 의미로 사자 발 사이에 사람 머리가 있는 형태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성 문 옆의 부조





마을의 중심인 산 도나토 광장(Piazza San Donato)에는 산 도나토 대성당이 있다.

유일한 광장이지만 그리 크진 않고 기념품 상점과 향수 판매점, 레스토랑이 두어 개 있다.

상점 앞에는 나무로 깎아 만든 당나귀가 상징처럼 놓여 있다.


그 광장에서는 6월 첫째 일요일과 9월 둘째 일요일에 야생 당나귀 경주(Palio della Tonna)가 열린다고 한다.

이 경주는 시에나의 캄포 광장에서 열리는 팔리오(Palio)와 매우 비슷하지만 숙련된 말을 타고 광장을 전력질주하는데 비해 이곳은 일반 당나귀를 타고 광장을 3바퀴 돌아야 하는 차이점이 있다.

경주 코스가 매우 좁기 때문에 두 마리의 당나귀만 동시에 달릴 수 있다.

이 대회의 스타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당나귀들인데, 경주 중에 가끔씩 일어나는 돌발 행동 때문이라고 한다.

즉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거나 응가를 하기도 하고 뒷발차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모습들을 오히려 재미로 즐기며 응원한다고 한다.

상상만으로도 흥미롭다.

마을 전체가 부서지기 쉬운 화산 응회암의 고원 꼭대기에서 침식으로 인해 가장자리가 무너지면서 끊임없이 파괴될 위험에 처한 비극적인 운명에도 불구하고 이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산 도나토 광장(Piazza San Donato)




광장의 유일한 기념품 상점에 한때 작은 마을을 오갔던 당나귀가 짐을 지고 걸어가는 사진이 보였다.

삶이라는 게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지만 무너져내리는 절벽의 집을 떠나야만 했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싶다.











시비타에서 태어나고 어쩔 수 없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한 부부의 인터뷰를 읽을 수 있었다.(출처 : 구글)



"저는 이 집에서 태어났고, 열한 살이 될 때까지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뇨레초의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사는 게 너무 위험해졌거든요."라고 프랑카 아르테미는 말합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 구스타보 코로넬은 이제 어린 시절의 작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은 기초부터 개조되었고 프랑카와 구스타보는 절벽 마을에 주소를 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구스타보와 프랑카



바뇨레초는 한때 큰 도시였습니다.

지금은 두 개로 나뉩니다.

동쪽에 남아 있는 시비타에는 현재 14명의 상주 주민만 거주하고 있으며 시비타 디 반뇨레초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서쪽 부분은 영향을 덜 받아 간단히 바뇨레초라고 불리며, 3,000명 이상 살고 있지요.     

침식과 산사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로마 시대부터 있었습니다.

동물 방목과 파기가 금지되었고, 1765년에는 절벽 주변에 식재 계획이 시행되었지만 모두 헛수고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마을까지 올라가는 길이 없었어요. 그때는 당나귀를 타고 물건을 꼭대기까지 운반해야 했어요."


그녀는 가족이 마을을 떠나기 전의 시절을 잘 기억합니다.


"모든 주민이 종종 모여서 공동 식사를 하거나 영화를 보곤 했어요."       

프랑카는 어린 시절의 집이 "마을 전체가 하나의 큰 가족과 같았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녀와 원래 남아프리카 출신인 남편 구스타보는 마을의 유일한 광장에 위치한 교회에서 결혼했는데, 프랑카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시비타의 옛 주민들



새로운 산사태에 대한 두려움은 깊은 영향을 미쳤고 오랫동안 인구 감소와 쇠퇴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현재 추가 산사태에 대한 즉각적인 위협은 없습니다.

절벽 벽이 강화되었고 마지막 산사태가 발생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오늘날, 그곳에 살고 있는 14명의 주민 중 누구도 새로운 산사태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안전해요." 새로 리노베이션 한 집에서 살 수 있어 기쁘다며 프랑카와 구스타보는 말한다.


관광객은 다리를 건너 마을로 가려면 소액의 요금을 내야 합니다.

이  돈은 시비타 디 바뇨레초를 보존하는 데 사용됩니다.

오늘날 이 도시는 국경을 넘어 널리 알려졌으며  탈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마을 입구의 표지판에는 "죽어가는 마을, 시비타"라고 쓰여 있다. 

초록빛 아이비는 담벼락에 드리워있고 발코니를 가로지르는 화분에는 꽃들이 퍼레이드를 펼친다.

따뜻한 돌담에는 하얀 재스민이 향기를 내뿜고 돌계단에는 스케치를 하는 여행자가 앉아 있다.

조용한 모퉁이를 돌면 낡은 나무 문이 보이지만 건물의 일부분은 무너져 내렸다.


한쪽 절벽 너머로 수천 년 전에 시작되어 아직 끝나지 않은 침식 과정의 마지막 흔적인 거대한 흰색의 점토 벽이 보인다.

이 지역의 황무지 칼랑키 계곡(La Valle dei Calanchi)은 수백만 년 전 바다에서 융기한  악지 지형(모래, 점토, 자갈등으로 구성된 지형)으로 오랜 세월 바람과 비로 인한 풍화로 침식현상이 일어나 지반이 계속 깎여 나가고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이 지역을 '이탈리아의 캐니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칼랑키 계곡(La Valle dei Calanchi)
시비타에서 바라보는 바뇨레초




시비타는 정말 작은 마을이다.

구석구석 돌아봐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곳에 사는 사람이 14명뿐이라는 믿기지 않았다.

예쁘게 가꾸어 놓은 집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지 안 사는지 모르는 집의 담이나 입구, 계단에는 정성이 느껴지는 화분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고 좁은 골목 사이로 작은 레스토랑들이 많았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다면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다더니, 이곳 주민들은 내일 마을이 무너져 내려도 꽃을 가꾸는구나 싶었다.










레스토랑 안티코 프란토이오(Antico Frantoio)의 주인은 약 1,500년 된 거대한 올리브 압착기를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눈을 가린 당나귀가 원을 그리며 터벅터벅 걸어가며 프레스를 눌러 올리브를 으깨어 기름을 추출했다고 한다.

이제는 당일치기 여행자에게 간단한 식사인 브루스케타와 와인을 판매하는 오스테리아지만 말이다.

화덕에 구운 빵에 최고급 기름을 바른 후 매운 마늘로 문지르고 잘게 썬 토마토를 얹은 브루스게타가 기억 속에 남는다.




레스토랑 안티코 프란토이오(Antico Frantoio)


1500년 된 올리브 압착기



이탈리아에서 식사를 하려고 하면 리스토란테(Ristorante), 그러니까 프랑스의 레스토랑 말고도 트라토리아(Trattoria)와 오스테리아(Osteria)라고 쓰여있는 간판을 자주 볼 수 있다.

트라토리아는 이탈리아의 식당 종류 중 하나이다.

격식으로는 리스토란테 보다는 낮지만, 오스테리아 보다는 높다. 

그러니까 트라토리아는 프랑스의 비스트로와 비슷한 개념이고, 오스테리아는 좀 더 캐주얼한 음식점으로 생각하면 된다.


오늘부터 지낼 숙소 키안차노 테르메(Chianciano Terme)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이 있는 곳으로 발 도르차 인근 토스카나 인근이다.

이전 숙소와의 거리는 10km 남짓하여 비교적 가깝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호스트의 친구 마르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스트의 아들인 시몬이 체크인을 도와줄 거라 했는데 급한 문제가 있어서 본인이 왔다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다.

숙소는 1시 방향의 가파른 오르막 길을 따라 올라가는 듯하다가 급한 좌회전으로 9시 방향으로 꺾은 후 약 1m쯤 후진해서 다시 오른쪽으로 직각에 가깝게 핸들을 돌린 다음 바로 멈춰야 한다.

주차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오르막으로 향하는 길이 움푹 파이고 울퉁불퉁해서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주차보다 더 문제는 출차였다.

아무튼 주차를 했으니 출차도 가능하겠지 싶었다.

오르막 길을 올라 오른쪽에는 여러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데 그쪽은 여러 세대가 거주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반대편에는 우리가 묵게 될 숙소와 주차 공간이 따로 있는 것이다.  



마르코는 집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차근차근 이어갔다.

인상이 선하고 침착해 보였지만 긴장한 티가 났다.

본인의 영어가 서툴러 미안하다는 말을 간간히 하면서 말이다.

체크인에서 중요한 일은 마르코가 다 한 셈이니 그에게 선물을 건넸다.

그가 떠나고 머지않아 호스트인 스테파노에게 선물을 감사히 잘 받았다는 메시지가 왔다.

사실 나는 마르코에게 선물한 것인데 그는 우직하게 집주인에게 건넨 것이다.


숙소를 옮겼으니 장을 보러 가야 한다.

다행히 키안차노 테르메에는 근처에 아주 큰 규모의 마트 (coop)이 있다.

장바구니를 챙겨 슬슬 걸어갔다.

마침 거기서 A자매들을 만났다.

그들은 아예 장을 보고 난 후에 체크인을 하려고 한단다.

마트가 가까우니 수시로 올 수 있겠다 싶어 우선 급한 것만 사 갖고 숙소로 향했다.

남은 7박 8일 동안은 피렌체, 그리고 토스카나와 인접한 움브리아 지방의 소도시들을 설렁설렁 다녀볼 예정이다.






저녁 식사를 마쳤을 때 호스트의 아들 시몬이 왓츠 앱(what's app, 우리나라의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로 유럽에서 사용하는 어플)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마르코가 전하길 우리의 자동차가 커서 주차와 출차가 어렵겠다고 했다는 거다.

원하면 집의 아래쪽 가까운 곳에 주차할 곳이 있으니 알려주겠단다.

나는 기꺼이 그래달라고 했다.

시몬이 방문했다.

이미 어두워지기도 하여 그에게 운전을 부탁하고 조수석에 앉았다.

그런데 그는 시동을 켰다 껐다를 계속 반복할 뿐 출발을 안 한다.

 

'왜 출발하지 않아요?'

'아! 지금 시동이 켜진 건가요? 너무 조용해서 시동이 켜진지 몰랐어요. 전기차는 처음 타보거든요.'


주차장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무료라고 했다.

여러 가지로 신경을 많이 써주는 친절함이 고마웠다.

시몬은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떠났다.

그 숙소의 평점이 5.0이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오르비에토와 시비타 디 바뇨레초, 그리고 숙소까지 옮기느라 힘든 하루였으니 내일은 쉬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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