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스페인의 마침표, 세고비아
마드리드 북쪽의 차마르틴역에서 기차를 탔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장면을 펼치기 위한 시작입니다.
어둠의 기척이 아직 남아있는 아침, 플랫폼에 서있는 사람들의 얼굴엔 각자의 설렘이 담겨 있었지요.
도심의 윤곽이 점점 흐려지고 스페인의 황량한 대지 위로 가을빛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언덕과 올리브 나무들, 그리고 길게 뻗은 도로들이 왠지 이별을 준비하는 배경처럼 느껴졌지요.
세고비아 귀오마르역에 도착하여 길을 걷는데 고소한 빵 냄새가 납니다.
셋다 빵을 좋아하는 터라 그 유혹을 지나칠 리 없습니다.
시나몬롤, 애플파이, 레몬 케이크 한 조각과 카푸치노의 부드러운 거품은 언제나 어울리는 조합이지요.
무려 1866년부터 운영해 온 장인의 집이더군요.
어딜 가나 우리의 촉은 대단합니다.
미리 검색해서 알고 찾아가지 않아도 오래된 맛집을 척척 알아보곤 하니까요.
세고비아는 기타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기타리스트의 이름과도 같습니다.
'안드레아스 세고비아(Andrés Segovia Torres, 1893년~1987년)'는 '단 한 대의 기타로 오케스트라 효과를 내던 마법사'로 불리던 스페인의 클래식 기타리스트입니다.
카세트의 까끌까끌한 잡음 속에서도 그가 튕겨낸 한 음 한 음은 유독 또렷했었지요.
언젠가 어떤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습니다.
"기타는 나를 통해 말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나는 그저 그 소리를 듣고 따를 뿐이죠."
그는 남쪽의 안달루시아에서 태어나 그라나다에서 잠시 기타를 배웠을 뿐 독학으로 기타의 신에 이르렀습니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와 함께 스페인의 클래식 음악 대가로 손꼽히는 인물이지요.
기타리스트의 이름과 같은 도시 세고비아로 가는 중입니다.
세고비아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로마 시대의 수도교와 알카사르가 유명합니다.
수도교는 사진으로 보던 이미지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었습니다.
마치 도시가 들고 있는 오래된 검처럼, 도시 한가운데를 묵직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쌓인 돌들이 무게의 시(詩)를 쓰듯 이천 년의 시간을 버티고 있었지요.
로마인들이 건설한 이 거대한 아치는 하늘과 땅을 잇는 돌의 문장입니다.
167개의 거대한 아치는 기원후 1세기경,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 치하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용접이 뭔지도 모르던 시대, 시멘트 한 방울 쓰이지 않은 이 구조물은 오직 정교한 균형과 압력으로만 하늘을 받치고 서 있습니다.
돌이 아니라 충직한 신하 같습니다.
돌 아치 사이로 넘어가니 마치 거인의 다리 사이를 지나는 기분입니다.
돌의 무게가 아니라 그 무게를 견뎌온 시간의 깊이가 느껴졌지요.
거칠고 우툴두툴하지만 듬직한 돌을 만져봅니다.
성모님이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작은 조각상이 보입니다.
아마도 수도교가 그토록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성모님과 함께여서일지도 모릅니다.
이 수도교의 주된 목적은 약 17km 떨어진 프리오(Prioro) 강에서 세고비아 시내까지 물을 공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산악 지형의 자연 경사를 이용하여 오로지 중력으로만 물을 흘려보냈지요.
총길이: 약 813m
최고 높이: 약 28.5m
아치 수: 167개
재료: 모르타르 없이 잘 다듬어진 화강암 석재만을 이용
놀랍게도 이 수도교는 수세기 동안 보수가 거의 필요 없었습니다.
한낱 돌다리가 아니라 완벽한 건축물인거죠.
수도교는 19세기 중반까지도 실제 상수도 기능을 수행했고 19세기 후반 이후부터 상수도 기능을 멈췄지만 오늘날까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요.
명실공히 세고비아의 상징입니다.
수도교 속에 2천 년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수백만 번의 아침과 수백만 번의 밤, 수천 번의 전쟁과 평화, 사라진 왕조들과 잊힌 언어들과 태어났다 사라진 수많은 발자국의 기억이 담겨있지요.
수도교는 그 모든 시간을 맨몸으로 맞았습니다.
한겨울 눈 속에서 묵묵히 발을 내딛는 사람들을 보았고, 폭염에 지쳐 땀을 닦는 나귀꾼들의 그림자를 품었을 테지요.
다리 아래로 지나간 수레바퀴, 행진하는 군인들의 군화, 그리고 첫사랑에 설레는 손을 꼭 잡고 건넌 연인들까지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그 침묵이 신비롭습니다.
거대한 책 한 권이 나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입니다.
이 돌 하나하나가 사람이라면, 얼마나 노련하고, 얼마나 슬프며, 또 얼마나 너그럽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비에 젖고, 눈에 덮이고, 태양에 타들어가면서도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던 그 돌들이 그저 세월의 모든 얼굴을 받아들이며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돌의 우직함이 경외롭습니다.
수도교 위쪽으로 올라가 내려다보니 더 대단합니다.
메주 덩어리처럼 주무를 수도 없는 돌로, 둥근 아치를 만들고 그 위에 또 다른 돌 하나를 얹을 때까지 얼마나 깊이 재고 생각했을까요.
지금은 레이저로 수평과 수직을 재지만 그 옛날엔 먹줄 하나로 기준을 삼았겠지요.
사람의 의지와 인내와 능력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세고비아는 다정한 붉은 지붕과 무심한 돌담으로 가득합니다.
파란 하늘 아래 멀리 산맥이 희미하게 웃고 있고, 그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오래된 언어처럼 속삭이고 있었지요.
다리에서 이어지는 골목을 따라 걷습니다.
돌담의 작은 틈에서 힘겹게 뿌리를 내린 풀 한 포기가 씩씩하게 몸을 뻗어내고 있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살짝 오르막의 작은 길에 주택들이 모여 있습니다.
상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 길에 소박한 책방과 테라코타라는 이름의 화방이 나란히 붙어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화방의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질감과 크기가 다른 종이와 알록달록한 물감과 붓, 색연필, 파스텔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문을 열고 들어서니 천장에 물감이 말라붙은 수십 개의 팔레트들이 거꾸로 붙여 있습니다.
모양도 색도 서로 달랐지요.
세고비아를 지나간 이름 모를 화가들의 손끝이 그곳에 머무는 것 같았습니다.
벽에 붙어있는 나무 물고기들을 닮은 작고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이 프린트된 에코백을 샀습니다.
이름하여 세고비아 물고기백입니다.
세고비아 대성당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산 마르틴 광장에 후안 브라보의 동상이 서있습니다.
16세기때 오스트리아의 카를로스 5세가 스페인의 왕이 되면서,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고 차별대우를 하는 등 이곳 주민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는데요.
그때 왕에 맞서 싸웠던 사람이 바로 후안 브라보입니다.
좀 더 걸어가니 세고비아의 마요르 광장이 보입니다.
세고비아 시청과 방금 전 보았던 동상의 이름을 따서 만든 후안 브라보 극장, 산 미구엘 성당들이 모여 있지요.
세고비아 대성당은 뾰족한 아치와 섬세한 선이 독특한데요.
그것은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으로 "대성당 중의 귀부인"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외관과 섬세한 장식으로 유명합니다.
금으로 장식된 오르간,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유럽 성당 특유의 기하학적 무늬 조각 및 그림 등이 내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유럽 성당 특유의 기하학적인 무늬를 가진 조각과 천장화도 볼 수 있었지요.
세고비아 대성당에는 태피스트리 방이 있습니다.
이 방에는 16세기 브뤼셀에서 제작된 "행성들"이라는 제목의 태피스트리들이 시리즈로 걸려있는데요.
그 옆으로는 두 개의 대형 진열장에 세고비아 주교의 전례복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방은 원래 예배당이었으나 1924년 대성당 박물관으로 바뀌었습니다.
천장에는 별처럼 흩어진 문양이 박혀 있고 그 아래에는 묵직한 태피스트리들이 조용히 시간을 걸치고 있습니다.
태피스트리들을 보호하기 위해 창문엔 붉은 천이 드리워져 있고 붉은 벨벳 의자들이 극장처럼 길게 늘어서 있어요.
화려함보다 질서, 위엄보다는 정적이 더 인상적인 공간입니다.
빛은 창을 따라 리듬을 타듯 성당의 곡선을 어루만지고 있는 그곳은 기도보다 더 조용한 아름다움이 머무는 곳이었지요.
대성당을 지나 언덕 아래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마침내 그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절벽 끝에 아슬하게 자리 잡은 세고비아의 알카사르(Alcazar, 스페인어로 성 또는 궁전이라는 뜻)
성곽 너머로는 깎아지른 절벽과 그 아래로는 강이 어우러져 마치 구름 위에 지어진 성처럼 보였지요.
뾰족하게 솟은 탑들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지붕, 그리고 은은한 모래빛 외벽은 누가 보아도 동화의 한 장면입니다.
성문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중세의 웅장함이 반깁니다.
그 안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단연 이슬람 양식의 방인데요.
나무로 정교하게 조각된 천장에는 별 모양 패턴이 겹겹이 이어지고, 그 아래 벽면을 따라 아라베스크 문양이 유려합니다.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충돌하고 서로에게 스며들었던 시간의 흔적이 한 공간에 응축되어 있는 듯했지요.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장식, 색채의 조화, 빛의 흐름까지, 그 방에 머무는 동안에는 마치 고요한 기도문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두 개의 왕좌가 마주한 왕좌의 방은 침묵 속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내뿜었습니다.
벽에는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고, 그 위에는 "Tanto monta, monta tanto…(동등하다, 똑같은 권위라는 뜻)"라는 문장이 황금처럼 반짝였습니다.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의 동등한 권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라 이 나라의 운명을 함께 짊어진 두 사람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문장이지요.
화려한 천장 장식 아래에서 수많은 결단과 조약, 명령과 축복이 오고 갔을 이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연극 무대이자 성스러운 제단입니다.
가파른 나선형 계단을 따라 탑 꼭대기에 오르면 바람이 세고비아의 지붕들을 훑고 지나갑니다.
수도교, 대성당, 그리고 저 멀리 펼쳐진 메세타의 평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 앞에서 오래된 시간의 무게를 잠시나마 함께 짊어진 기분이었습니다.
알카사르는 단지 아름다운 건축물이 아니라 세고비아라는 도시의 혼을 품은 심장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내가 세고비아에서 가장 오래 바라보았던 장면은 성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마을의 풍경입니다.
노란 단풍, 흙빛 기와, 그리고 사람도 그림자도 한적한 길 아래로 가을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지요.
집 몇 채와 자연스럽게 물든 나뭇잎들이 말로는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드라큘라의 성이라 불리는 루마니아의 브란 성이 아름다운 이유는 성 자체보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 때문이었지요.
세고비아의 알카시아 역시 위치 때문에 더욱 빛났습니다.
성의 내부를 돌아보는 동안에도 유리창만 보이면 저절로 시선이 바깥 풍경으로 향했으니까요.
그러나 정작 그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들어가면 그곳에서 바라보는 느낌이 덜 할 겁니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풍경은 멀리서 바라볼 때 아름다운 법이니까요.
사람이 일부러 만들어낼 수 없는 빛깔의 향연이 펼쳐져 있어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이 있지요.
한 조각만 떼어갈 수 있다면...
기차역으로 가기 전 수도교 아래 벤치에 앉았습니다.
밤이 깊어졌고 파란 하늘 아래 수도교가 고요히 떠 있습니다.
이 여행의 마지막 장면이자 조용한 마침표였지요.
돌의 무게와 침묵이 닮았습니다.
스페인을 걷는 동안 눈앞에 펼쳐진 풍경 앞에서, 뜻밖의 감정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화려한 성당도 좋았지만, 이름 모를 골목에서 스쳐간 고요가 더 오래 남았지요.
몇몇 도시에서 그림들을 만났고 몇몇 밤에는 그림들이 꿈속을 지나갔습니다.
길을 걸을수록 여행은 점점 안으로 향했습니다.
스페인은 낯섦보다 낯익은 놀라움을 주는 나라입니다.
도시마다 각자의 고요한 심장이 있습니다.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예술의 언저리에서 숨을 쉬고,
시체스에서는 무심히 빛나는 파도와 장식적인 건물들이 환대했으며,
지로나와 베살루에서는 오래된 시간과 마주 앉았고,
피게레스에선 상상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날카롭고도 부드러운지 체감했습니다.
빌바오의 철제 조형물과 구겐하임의 반짝이는 외피 아래선 마음이 잠시 조각조각으로 나뉘었다가, 다시 천천히 맞춰지기도 했지요.
산 세바스티안의 라 콘차 해변에서는 비를 맞으며 모래에 문장을 새기는 사람을 오래도록 지켜보았습니다.
순간순간이 진심이었지요.
사라고사와 팜플로나에서는 조금 덜 정제된 일상의 숨결을 느꼈고, 말라가에선 수평선이 하루의 경계를 부드럽게 감쌌습니다.
네르하와 프리힐리아나, 하얀 마을은 마치 발에 꼭 맞는 신발처럼 안락했고 세비야의 오렌지 향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지요.
미하스와 론다의 높은 언덕과 깊은 계곡 사이로 오르락내리락하던 마음,
마르베야의 해변을 걷는 동안에는 먼 데서 떠돌다 온 사람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곳에 살았던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그 정교한 무늬와 정원들 앞에선 무언가를 '보다'가 아니라 '경배'한다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지요.
마드리드엔 길들여지지 않은 예술의 기운이 거리 곳곳에 퍼져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렘브란트와 고야와 엘 그레코를 만났고 그들의 눈빛 속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마치 여행이 천천히 가라앉는 듯한 도시 세고비아...
마음속엔 지중해의 바람 한 줄기와 이베리아 반도의 햇빛 한 조각이 남았습니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의 밀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지나간 자리의 고요함까지 말입니다.
'걷고, 보고, 느끼고'
풍경은 멀어졌지만 내 안에 새겨진 빛과 색과 냄새는 남아 있습니다.
스페인어에는 간혹 독특한 기호를 볼 수 있습니다.
문장 앞에 붙어있는 거꾸로 된 느낌표와 거꾸로 된 물음표인데요.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Hola! (안녕!)
¿Cuánto cuesta? (얼마예요?)
스페인어의 감탄문과 의문문은 문장의 시작 부분에 거꾸로 된 느낌표 ¡와 거꾸로 된 물음표¿를 붙여서 강한 느낌을 강조하죠.
이 규칙은 스페인어의 독특한 문법 중 하나로 읽는 사람이 문장을 시작할 때 이미 감탄이나 의문의 맥락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랍니다.
즉 스페인 사람들은 말의 첫머리부터 감정을 아니 속내를 미리 내 보이는 거죠.
이 나라의 사람들은 감정을 숨기지 않고 사랑을 아끼지 않으며 화도, 슬픔도 거리낌 없이 꺼내 보입니다.
¡와!로 시작해서 ¿왜? 하고 끝나는 이야기 같지요.
삶이 즐거운 곳,
눈이 맛있는 땅,
태양이 자라는 나라,
참을 수 없는 유혹의 지중해,
줄 없는 노트 같은 이번 여행은 모든 푸름에 나를 맡기는 시간이고 가슴에 창을 내어 바람을 맞는 것이었습니다.
비어있는 기억의 프레임에 마음의 풍경을 담고, 액자에 넣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스페인의 서랍이 몇 칸 생겼습니다.
첫 째 칸엔 파란 노래를 부르며 자라는 하늘이,
두 번째 서랍엔 피아노 같은 하늘에 바이올린 선율 같은 태양이,
맨 마지막 칸엔 스페인 하늘을 걷고 있는 내가 들어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이 여정의 모든 시간 동안, 곁을 지켜주었던 친구 M과 J에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함께해 주신 독자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신이 그어놓은 테두리 같은 나라, 스페인 2'를 마칩니다.
"Muchas Graci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