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인간을 부러워한 이유

10. 그리스 델피

by 전나무




이번 여행에서 안드로이드 오토를 처음으로 이용했습니다.

구글지도를 자동차의 모니터로 보니 운전이 훨씬 수월했지요.

오래전 스마트폰에 담아놓았던 여러 빛깔의 음악들도 요긴하게 들었습니다.

손 안의 작은 기계에서 나오는 음악들은 분위기에 따라 각각 다른 영화 장면의 ost처럼 흘러갔으니까요.


아바의 맘마미아는 밝은 햇살을 닮았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고대의 향기처럼 고속도로 위에 감돌았습니다.

독일의 싱어송라이터 앤서니 라자로의 커피 컵은 감미로운 향기를 전했고,

오래된 팝송은 우리를 스무 살 나이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이 흘러나옵니다.

마치 재클린 뒤프레의 인생 같이 묵직한 첼로의 보잉이 가슴을 아리게 했지요.

그녀의 남편이었던 다니엘 바렌보임은 재클린이 병마와 싸울 때 젊은 피아니스트 사이에서 아들을 낳아 세상의 비난을 받았었죠.

그 아들 마이클 바렌보임이 어느덧 40세, 바이올리니스트로 활약하며 아버지와 함께 연주 활동을 하더군요.


도로 옆으로는 흰색과 분홍빛 협죽도, 노란 애니시다, 그리고 야생 귀리들이 꽃길만 가라는 듯 바람에 흔들립니다.

국도를 달리다 들른 허름한 식당은 소박했지만 정갈하고 따뜻했습니다.

그곳의 가족들이 정성껏 내어준 밥상이 우리를 편하게 만들어주었지요.


도로변에는 휴게소는 아니지만 쉼터 같은 빈 공터가 간간히 있습니다.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멈춰 선 곳에서 뜻밖의 선물 같은 풍경을 발견했지요.


'어머, 여기 뭐야?'


지형이 열리며 펼쳐진 바닷가 만(灣)의 푸르르고 잔잔한 물가.

호수처럼 고요한 물결,

동글동글한 조약돌,

바람에 흩날리는 타마리스크 나무들.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오후의 햇살이 우리의 움직임을 잠시 멈추게 했습니다.

그곳은 그저 바람이 데려온 장소 같았지요.

아무도 없던 그 시간, 그 공간은 꼭 오래된 수채화 같았습니다.

인위적인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자연의 고백.

마치 다음 생애에서나 다시 올 수 있을 듯한 그런 순간.

바람이 살랑 불었습니다.

동그란 나무 아래 한참을 앉아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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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피의 숙소는 마치 누군가의 오래된 수집품 창고 같습니다.

벽마다 걸려 있는 낡은 지도와 작은 수를 놓은 조각보, 유리 액자 속엔 쓰임새를 가늠할 수 없는 희귀한 물건들이 가득했고, 서까래가 드러난 천장 아래 로프트는 시골집의 다락방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그중 특히 맘에 들었던 공간은 발코니.

넓은 테라스용 나무 테이블과 아이보리 방석이 놓여있는 여섯 개의 의자, 그곳에 앉으면 마주 보이는 풍경은 그림이 따로 없습니다.

코끝을 물들이는 재스민 향은 마치 오래된 편지에 스민 잉크 냄새처럼 낯설면서도 그리운 감정을 불러일으켰지요.


'여기,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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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피로 가기 전 미리 검색해 본 결과 그곳에는 큰 슈퍼마켓이 없었습니다.

장을 보려고 들른 아라호바의 슈퍼 마켓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영업을 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장도 볼 겸, 동네 마실을 나갔지요.

'미니 마트'란 이름의 자그마한 상점들이 군데군데 있더군요.

작지만 식재료들을 제법 살 수 있었습니다.

유독 손님들이 붐비는 레스토랑이 있어 눈여겨보았지요.

'Dion'

내일 점심엔 그곳에서 해야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어김없이 새소리를 알람 삼아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아폴론 신전은 걸어도 될만한 거리이지만 차를 타고 간 이유는 모르긴 몰라도 분명 언덕을 한참 동안 올라갈 것이 뻔하니까요.

별도의 주차장이 없이 그냥 도로변에 차를 세우면 되는데 일찍 움직인 덕에 비교적 입구와 가까운 곳에 주차를 했습니다.


지금은 델피라 불리는 그곳의 옛 이름은 델포이.

햇살이 가볍게 어깨를 눌렀고, 마치 오래된 비밀 같은 바람이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신전은 많이 무너져 있었지만 오히려 그 부서짐이 델피의 시간을 더 깊게 했습니다.






입구를 지나자 돌길이 천천히 구불구불 이어집니다.

성스러운 길(Sacred Way)이라 불리는 이 길은 각지에서 몰려든 순례자들이 이 길을 따라 올라오며 제물을 바치고 신탁을 청했을 테지요.


델피에는 특별한 여사제, 피티아(Pythia)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폴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통로, 다시 말해 신의 대변인이었지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녀가 제시하는 신탁이 항상 명확하진 않았다는 거예요.

그녀의 대답은 종종 시나 수수께끼 같아서 해석은 듣는 사람 몫이었지요.

델피에서 사람들이 묻고자 한 건 미래였지만, 신탁은 언제나 완전한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피티아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온 말은 구름처럼 흐릿했고, 운명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었어요.


사람들은 늘 신의 대답을 기다렸다지만 나는 묻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인생도, 여행도, 옷을 고르고 입는 사소한 일까지도 결국은 그 사람의 기세라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내가 어떤 방향으로 발을 내딛느냐에 따라 운명은 뒤따라오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탁은 필요합니다.

신의 음성이 아니어도 스스로에게 묻는 그 순간도 하나의 신탁이니까요.


기둥 사이로 비치는 빛,

돌계단 위에 앉아 쉬어가는 고양이,

멀리 펼쳐진 파르나소스 산맥의 곡선, 그 모든 것들이 신전을 더 신성하게 만들었지요.

경건함보다는 웅숭깊은 고요가 감돌았습니다.

누군가의 예언을 기다리는 곳이라기보다, 스스로에게 말을 걸게 되는 공간입니다.






길을 조금 더 오르면 오른편으로 단정한 작은 신전 같은 건물이 나타납니다.

'아테네인의 보물창고(Treasury of the Athenians)'.

그곳은 마라톤 전투의 승리를 기념해서 아테네가 세운 것으로 그리스 도시국가의 자긍심이 깃든 공간입니다.

전쟁과 승리, 신에 대한 감사가 섞여 있는 이 작은 건물은, 시대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보물들은 아마도 박물관에서 볼 수 있겠지 싶습니다.



'이게 옴파로스야'


친구가 말했습니다.

'세상의 배꼽'이라 불리는 그 돌,

제우스가 세상의 중심을 찾기 위해 날려 보낸 두 마리의 독수리가 날아와 앉았다는 바로 그곳이지요.

하지만 진짜 옴파로스는 나중에 박물관 안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더 올라가다 보면 다양한 기념 기둥들의 받침대가 줄지어 있습니다.

스핑크스를 얹었던 긴 돌기둥, 도시국가들이 바친 조각상들, 청동 전차를 올려놓은 석대까지.

지금은 텅 비어 있지만 한때는 이곳이 화려한 조각의 숲이었었겠지요.


드디어 아폴론 신전(Temple of Apollo)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금은 몇 개의 기둥만이 허공을 가르듯 서 있지만 그 너머로 신성했던 공간의 깊이가 전해집니다.

이곳에서 고대의 여사제, 피티아(Pythia)는 향을 피우고 신탁을 내렸습니다.

그 예언 역시 때론 애매하고 은유적이었지만 당시에는 도시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폴론 신전 앞에 눈에 익숙한 청동 기둥이 보입니다.

열흘 전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술탄아흐메트 모스크) 앞의 광장에서 보았던 그 청동 기둥과 모양이 같았지요.

그것의 이름은 세르펜틴 기둥(Serpent Column).

기원전 479년,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페르시아 제국을 물리친 살라미스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며 델피에 세운 청동 기둥입니다.

세 마리 뱀이 서로 꼬여 올라간 형태로 제작되었고, 그 머리 위에는 황금 삼발이(Tripod of Plataea)가 올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기둥의 몸체에는 31개 도시국가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들이 함께 연합하여 싸운 기록이기도 하죠.

이 청동 기둥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4세기경 델피에서 비잔티움(현 이스탄불)으로 옮겨 히포드롬 광장 중앙에 세운 겁니다.

그러니까 현재 블루 모스크 앞에 남아있는 기둥의 몸체가 델피에 세웠던 진품이고, 델피의 아폴론 신전 앞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더군요.



아직 오전이고 기온은 높지 않은데 땀이 비 오듯 합니다.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가 잠시 쉬어야겠습니다.


'나는 그만 올라가고 여기서 좀 쉬다가 내려가면 좋겠는데 어때?'


두 친구가 동의했고, 호기심 천국인 T는 더 올라가 보겠다고 합니다.

친구가 떠나고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아폴론 신전을 바라보다 보니 그리스적인 색채를 담은 아름답고 몽환적인 음악 짐노페디가 떠오릅니다.

짐노페디 1번의 느리고 차분한 음들은 신탁을 기다리는 숭고한 고요함과 안성맞춤입니다.


짐노페디(Gymnopédie)는 고대 그리스의 짐노파에디아(Gymnopaedia) 축제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짐노(Gymnós)는 "벌거벗은", 페디아(paideía)는 "소년들의 훈련" 또는 "교육"을 뜻해요.

이 축제는 고대 스파르타에서 젊은이들이 반나체로 무용과 체육을 통해 신에게 헌신하는 행사였습니다.

이 춤은 단순히 육체적 훈련을 넘어서 미와 질서, 고요함 속의 조화를 담고 있었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짐노페디의 뜻에서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있을 겁니다.




앙리 마티스의 'Dance'.

그 작품 역시 원초적인 인간의 몸짓과 감정, 자연과 리듬, 고대적인 순수함을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그림 속 인물들이 원을 그리며 손을 잡고 춤추는 모습은, 사티의 음악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평화로운 세계를 상상하게 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이 그림 Dance와 Music이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두 번이나 다녀왔지만 또 그리운 곳, 상트 페테르부르크입니다.






머릿속으로 음악을 되뇌고 있는 동안 친구가 돌아왔습니다.

신전의 윗동네에서 본 유적들을 신이 난 듯 설명합니다.


'산자락을 따라가다 보니까 델피 극장(Theatre of Delphi)이 있어.

그 옆에는 고대 경기장이었던 스타디온(Stadium)이 있는데 규모가 엄청 크고...'


신전을 내려와 델피 고고학 박물관으로 들어섰습니다.

건물은 단정하고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시간의 숨결이 기적처럼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황금시대가 온전히 박제되어 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지요.


박물관의 가장 유명한 전시물, 델피 전차병(Charioteer of Delphi).

한 손엔 고삐를 쥐고, 시선을 곧게 앞을 향한 젊은 전차 기사의 청동상은 놀라울 정도로 정제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478년경 제작된 이 조각은 시칠리아의 왕이 델피에 바친 제물로, 전체 전차와 말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인물만이 남았습니다.

마치 금방이라도 말을 몰고 출발할 듯한 전차병의 눈빛이 형형합니다.

조각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처럼 느껴졌을 정도였지요.





아테네인의 보물창고 내부에는 사실 정교한 조각 부조가 있었는데, 그것의 일부가 이곳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솝 우화처럼 동물과 인간이 얽히고, 신화 속 장면들이 생생히 새겨진 이 부조는 당시 사람들의 상상력과 미적 감각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주었지요.


기이하면서도 매혹적인 조각상, 스핑크스 조각상(The Naxian Sphinx).

인간의 얼굴에 독수리 날개, 사자의 몸을 한 스핑크스는 낙소스 사람들이 세운 거대한 석상입니다.

질문을 던지고, 틀리면 죽음을 맞이하게 했다는 그 전설의 존재.

그 모습은 기괴하면서도 기품 있었고, 이곳 델피가 단지 신화의 무대가 아니라 문명의 경계였음을 증명해주는 듯했습니다.




넓은 전시실 한가운데, 두 청년 조각상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견고한 가슴과 당당한 자세, 짧게 묘사된 머리칼과 균형 잡힌 얼굴.

그들은 흔히 델피의 쌍둥이라고 불리는데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비스(Cleobis)와 비톤(Biton).

기원전 580년경, 아르고스 사람들이 델피에 바친 봉헌 조각입니다.

이 두 형제는 고대 그리스의 효심의 상징이었는데요.

어머니가 헤라의 축제에 늦지 않게 도착하도록 스스로 수레를 끌어 성소까지 데려다주었고,

헤라는 그 효심에 감동하여 두 형제를 죽음 대신 영원한 안식으로 데려갔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몸체는 단단하고 정적이지만, 앞을 응시하는 미소가 그들의 신성함과 인간적 감동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 안쪽 유리 진열장에 조심스레 보관된 작은 두상 하나.

그것은 단지 두상이 아니라, 황금과 상아로 만들어진 고대 최고의 공예 기법, 크리셀레판틴 조각의 일부입니다.

이 정교한 두상은 기원전 6세기 무렵 제작된 것으로 아폴론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해집니다.

가느다란 눈매, 섬세한 코선, 풍성한 곱슬머리까지, 마치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잠시 내려앉은 듯한 얼굴이지요.

금은 신의 빛을, 상아는 육체의 부드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쓰였는데요.

조각의 나머지 몸체는 유실되었지만, 이 작은 얼굴 하나만으로도 신묘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돌과 돌 사이, 기둥과 그림자 사이에서 자주 멈춰 섰습니다.

여행이 아니라 나만의 순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델피는 단지 고대의 유적이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조용히 말을 거는 장소였습니다.

신탁의 땅 델포이 신전(아폴론 신전)에서 여사제가 신탁을 전했고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가 이곳의 아포리즘에서 비롯되었던 것처럼요.


그리스 여행을 다녀와 두 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기원전 12세기 무렵, 트로이 전쟁을 다룬 영화 <트로이,2004>와 기원 후 4세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배경으로 한 <아고라, 2009>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인류는 그동안 발전한 것이 아니라 변화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질투하고, 전쟁을 하고, 신을 찾고, 또 사랑하고 두려워하며 의심하면서 믿고 싶어합니다.

기원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단지 옷이 달라졌고 건물이 다르고 쓰는 도구가 달라졌을 뿐이지요.




영화 트로이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더군요.

주인공 아킬레우스 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가 말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 하나 가르쳐줄까?
신은 인간을 질투해
인간은 다 죽거든
늘 마지막 순간을 살지
그래서 삶이 아름다운 거야
이 순간 넌 가장 아름다워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거든'


치명적인 약점을 말할 때 쓰는 아킬레스 건이라는 말은 바로 이 사람 아킬레우스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아주 멀고 먼 옛날, 그리스에 아킬레우스라는 용감한 전사가 살았습니다.
아버지인 영웅 펠레우스와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킬레우스는 태어날 때부터 몸집이 우람하고 보통 사람과 달랐지요.
어머니는 아킬레우스가 태어나자마자 죽음의 세계로 가는 스틱스 강에 목욕을 시켰습니다.
그 강물에 몸을 담그면 화살이나 창에 맞아도 상처를 입지 않거든요.
“자, 이제 너는 누구보다 강한 전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때 아킬레스의 발뒤꿈치만은 강물에 닿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아기의 발뒤꿈치를 잡은 채 물에 담갔기 때문이에요.
이 때문에 발뒤꿈치는 아킬레스의 단 하나뿐인 약점이 되었습니다.

아킬레스는 그리스 최고의 전사로 자랐습니다.
트로이와 전쟁이 벌어졌을 때에도 앞장서서 그리스를 승리로 이끌고 있었지요.
트로이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아킬레우스 때문에 도저히 이길 수가 없군.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트로이 사람들은 아킬레우스의 약점이 바로 발뒤꿈치라는 것을 알아냈어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아킬레스에게 독화살을 쏘아 발뒤꿈치를 맞추었어요.
그리고 용맹한 아킬레스는 맥없이 쓰러져 죽고 말았지요.

그 뒤로 발뒤꿈치의 힘줄은 ‘아킬레스건’으로 불리게 되었고,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답니다.


또한 영화 <아고라>에는 도서관 장면이 나오는데요.

책의 형태가 스크롤(Scroll), 그러니까 두루마리 형태로 말려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그 재료는 파피루스겠지요.

당시 그것의 명칭은 그리스어로 비블리온(biblion)

기원 전부터도 책을 소중히 여겼고 어마어마한 도서관이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아폴론 신전 앞의 돌기둥들,

"너 자신을 알라"는 문장이 적힌 폐허의 입구.

그것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의 세계였고, 소크라테스가 묻던 끝없는 질문입니다.

그리스는 묻고 있었지요.


"당신은 누구입니까?"


신화의 화려함도, 철학의 이성도, 신전의 기품도 결국 이 단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대리석 계단을 한 걸음씩 밟을 때, 그 아래로 기나긴 세월의 속삭임이 들려옵니다.

그리스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마치 시간의 틈새 속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내일 무엇이 기다릴지,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도요.

하지만 그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는 울고 웃으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러니 신이 인간을 부러워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싶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없습니다.

영원하지 않음에서 나름의 고요함과 평화를 느낍니다.

그리스에서 조차 내가 누구인가를 찾을 수 없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이 여행이 아름다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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