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알레그리, 미제레레
델피를 떠나는 길,
우리는 아폴론의 예언이 머물던 곳을 뒤로하고 구불구불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양쪽 길엔 누가 일부러 뿌려놓은 듯한 꽃들이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자연이 준 축복이지요.
그 순간, 듣고싶은, 아니 꼭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음악이 있었습니다.
대중적인 곡이 아니라 혹시나 친구들이 지루하고 어려울까 봐 한 번도 재생하지 않았던 곡이었지요.
그 순간의 결정이 어쩌면 누군가가 내게 속삭인 신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신의 세계를 뒤로하고, 인간이 기도의 자리로 삼은 공중의 절벽을 향해 가는 길.
조심스럽게 음악의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금기처럼 내려앉았던, 알레그리의 미제레레(Miserere mei, Deus)가 시작됩니다.
'Miserere mei, Deus.'
비브라토 없는 한 줄기 고음이 맑게 하늘로 솟아오르는 순간에 다다르자,
차 안은 순식간에 시간의 축복 속으로 봉헌된 작은 예배당이 되었습니다.
천천히 눈물이 차올랐지요.
친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이란 때로는 감히 다가설 수 없는 것에 대한 예의니까요.
창밖의 들꽃들이 마치 천상의 성가대를 이루듯 흔들리고, 차는 하늘을 향해 천천히 떠오르는 듯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목소리와 투명하게 올려지는 화성.
마치 공중을 떠다니는 무형의 무엇이 우리를 감싸 안는 느낌입니다.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 말없이 음악에 잠겼고, 눈을 감거나 멀리 산 능선을 응시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건 음악이라기보다 공간이고, 풍경이고, 누구의 말보다도 깊은 메시지였으니까요.
고요했지만 압도적이었고, 낯설지만 위안이 되는 시간입니다.
그 곡은 원래,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음악이었습니다.
오직 바티칸 시스티나의 높은 아치 아래에서 성 금요일 저녁 예배 때, 촛불이 하나씩 꺼지는 가운데 조용히 연주되었던 곡입니다.
그리고 지금, 한 줄기 빛처럼 고요한 아침의 그리스 산길 위에서 우리는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음악이 끝나자 누군가 입을 열었습니다.
"지금, 무슨 곡이었어?"
"신이 듣던 노래, 그런데 지금 우리도 들었네."
이후로도 친구들은
"그날 들은 그 음악, 다시 들을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건 단순히 음악을 다시 듣고 싶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날, 아주 잠깐이지만 '신의 귀에 머물렀던 순간'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그런 말이죠.
단테가 말했습니다.
"음악은 하늘의 숨결이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그날의 침묵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억하라. 어떤 침묵은 말보다 깊다."
무언가를 말하지 않고도 나누는 이해와 경외, 그건 아마 여행에서만 가능한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그 순간을 온전히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다시 길을 떠나도 되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알레그리의 《Miserere mei, Deus》
미제레레(Miserere, 전체 제목: Miserrere mei, Deus. 라틴어로 "신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는 이탈리아 작곡가 그레고리오 알레그리의 시편 51편을 편성한 곡입니다.
세상의 여러 재미를 누리고 인생을 즐기며 살던 사람이 신이 없는 삶이 공허하고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신께 나를 불쌍히 여기어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비는, 기도문에 가까운 내용입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외부 유출이 금지되었던 곡으로 유명합니다.
1. 작곡자 : 그레고리오 알레그리(Gregorio Allegri. 1582–1652)
이탈리아 르네상스 후기 ~ 바로크 초의 작곡가이자, 로마 교황청 성가대원이었습니다.
2. 작곡 시기: 1630년경
3. 가사: 라틴어 시편 51편 "Miserere mei, Deus"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4. 첫 연주 장소 : 로마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Sistine Chapel)
5. 특징 : 9명의 성악가가 부릅니다.(아카펠라, 무반주)
이중 합창 : 메인 합창단과 응답하는 소규모 합창단이 주고받듯 부름.
천사의 소리처럼 들리는 고음은 실제로 카스트라토의 음역이었으나 오늘날은 소프라노나 카운터테너가 부릅니다.
6. 금지된 음악 : 시스티나 성당 전용이었고, 악보 유출은 파문의 사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4세 모차르트가 이를 듣고 암보(악보없이 음악을 듣고 악보를 외워서 기억함)로 완벽히 재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1770년 로마 방문 중).
알레그리가 작곡한 지 140년 만에 비로소 세상에 알려진 음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