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까를로비 바리(Karlovy Vary)
까를로비 바리(Kalrovy Vary : 체코어로 카를 황제의 온천이라는 뜻)로 향하는 길은 조용한 아침의 기도문처럼 느껴졌습니다.
조금은 차갑지만 부드러운 공기, 가을 옷을 입은 나뭇잎들의 배경에는 지치도록 푸른 초록의 들판이 펼쳐져 있었으니까요.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주차장에 도착하니 비어있는 주차 공간에 꽤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습니다.
'예약 차량'이라는 문구들이 걸려 있기 때문이죠.
그순간, 멈출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이 그저 길을 따라 나아가야 했습니다.
길이 우리를 다른 쪽으로 밀어내는 느낌이랄까?
여행은 종종 그렇게 우리가 선택한 방향보다 우리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곤 하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은편의 경찰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못할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왠지 긴장이 되는 바로 그 순간. 경찰은 정지 신호를 보냈죠.
그러나 경찰은 방향을 잃은 여행자들임을 이미 알고있다는 듯
"이 길로는 들어오면 안 됩니다."
그리고는 해답을 내어주었지요.
"푸프 호텔로 가시면 될 겁니다."
푸프라는 이름이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가볍게 떠올랐습니다.
여행 전에 미리 살펴보았던 그 호텔의 카페,
어쩌면 처음부터 그곳으로 가도록 예정되어 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Děkuju(데꾸유)"
체코어의 감사 인사말은 충청도 사투리 같아 입속에서 금방 굴러갔습니다.
낯선 땅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은 언제나 '안녕하세요'와 '고맙습니다'이지요.
여행은 결국 다른 이의 따뜻함에 빚지며 이어지는 시간이니까요.
푸프 호텔(Pupp Hotel)에 도착하니 이번엔 경비원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예약하셨습니까?"
"아니요, 하지만 두세 시간 정도 주차할 수 있을까요?"
그는 생각보다 쉽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단기를 올려주었습니다.
금지되어 있던 문이 조용히 열릴 때 느껴지는 안도감, 그런 작은 것들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
까를로비 바리는 풍경이 먼저 말을 거는 도시였습니다.
간간이 보이는 햇빛은 흔들리는 강물 위에 흩어져 잔잔한 음악처럼 반짝였고,
곡선으로 이어진 건물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오래된 악보처럼 느린 리듬을 흘려보냈습니다.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수증기 탓일까요?
도시 전체가 큰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듯 공기가 따뜻했습니다.
군데군데 흐르는 온천 샘은 유황과 철분을 머금은 황금빛, 아니 구릿빛의 두꺼운 더께가 돌처럼 굳어져 있었습니다.
마치 이곳의 역사 자체가 응고된 것처럼 말이에요.
수증기 사이로 손을 뻗으니 시간의 표면을 만지는 것만 같습니다.
미지근한 물결이 문장을 이루듯 땅을 흐르는 모습은 여행자를 잠시 '요양객'으로 바꾸어 놓았지요.
온천수는 금속의 맛, 짠맛,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오래된 맛을 품고 있었습니다.
한 모금 삼키는 순간, 확신할 수 없는 시간이 혀끝에 천천히 내려앉았습니다.
카를 4세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전설처럼 이 도시의 물은 오래전 누군가의 아픔에서 시작해
수많은 회복의 순간을 지나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닿은 것입니다.
콜로나다(kolonáda : 기둥이 솟아 있는 회랑 형태의 복도)들은 단순한 회랑이 아니라 하나의 무대, 장면 하나처럼 서 있었습니다.
줄지어 선 기둥은 발레리나가 치맛자락을 들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처럼 둥근 아치와 더불어 우아하게요.
온천수의 증기는 햇살을 머금고 희미한 금 막을 만들었고 그 아래를 걷는 사람들은 마치 오래된 기도문 속을 지나가는 듯했습니다.
작은 찻주전자 모양의 온천 컵, 라젠스케 포하르를 들고 한 모금씩 마시며 걷는 사람들이 어떤 의식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지요.
그 컵 안에는 물뿐 아니라 몇 세기의 시간, 숨결, 위로가 함께 담겨 있으니까요.
베토벤과 괴테, 카프카와 브람스도 이곳에서 비슷한 숨을 쉬었을 테지요.
그러나 유명 인사들의 이름보다 그들이 이 도시를 걸으며 느꼈을 사소한 피로와 작은 위안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드보르작 공원에 닿으니 음악의 쉼표처럼 고요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마치 드보르작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호수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은 느린 평화가 맴돌았어요.
여행은 결국 새로운 것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시간의 결을 우리의 발걸음으로 천천히 어루만져 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까를로비 바리는 따뜻한 물의 목소리로 조용히, 그리고 깊게 지나간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우아한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