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트르제비치, 텔치
가끔은 사진 한 장이 마음을 이끌어 낯선 곳으로 데려갑니다.
그러나 현실은 사진보다 흐리거나, 때로는 사진에 담기지 않는 아름다움을 품고 있기도 하지요.
반대로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맞닥트릴 때도 있습니다.
오늘의 여행은 후자였습니다.
트르제비치의 카를로보광장, 두 성인의 조각상이 고요히 내려다봅니다.
다리를 지나는데 익숙한 동상이 있습니다.
왕비의 고해성사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바츨라프 4세에 의해 블타바 강에 던져진 얀 네포무츠키는 카를교에 서있는 30개의 조각상 중 가장 인기 있는 성인입니다.
그 네포무츠키가 이곳 요슬라브카 강변에도 서 있습니다.
체스키 크룸로프의 다리에서도 보았습니다.
아마도 다리 위에서 순교한 그를 기리는 일종의 전통이겠지요.
언덕 위에 성 프로코피우스 성당이 거대한 배처럼 서 있었습니다.
둥근 아치와 고딕의 뾰족함이 한 건물 안에서 은근하게 섞여 있었지요.
옆으로 이어지는 트르제비치성은 성당보다 덜 거창하지만, 묘하게 따뜻했습니다.
주황색과 황톳빛이 뒤섞인 외벽은 흐린 날에도 불구하고 빛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고, 늘어진 나무 그림자가 가끔씩 벽에 손가락처럼 스며들었습니다.
성과 성당 사이를 잇는 공간은 물비늘처럼 조용했고, 날숨을 길게 내쉬면 바로 밀려날 것 같은 얇은 아침의 공기가 그 틈새에 흘렀습니다.
성을 나와 길을 건너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바닥에 박혀 있던 별 모양의 표식을 발견하고 알았습니다.
그곳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트르제비치의 유대인 지구라는 것을요.
유대인 공동체와 기독교 사회가 수백 년 동안 공존해온 곳은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바로 그것이 트르제비치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유입니다.
가파른 골목과 강으로 이어지는 좁은 계단은 옛 삶의 체온을 그대로 품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유대인 공동체가 실제로 거주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부는 박물관이나 문화시설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 전체는 시간을 통째로 보존한 듯, 그들의 삶이 방금 문밖으로 나갔다 돌아올 것 같은 기운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성당과 성, 강과 유대인 지구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 작은 도시의 풍경은 마치 서로 다른 색의 물감이 닿은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번져 섞인 수채화 같았습니다.
고요하고 오래되었으며, 어디든 손을 대면 색이 미세하게 흔들릴 것만 같은, 그런 부드러운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듭니다.
조용한 여운을 뒤로하고 텔치로 향합니다.
흐린 하늘, 비둘기 깃털빛 구름이 광장을 덮고 있습니다.
광장의 집들은 모두 같은 시대에 정비되었지만, 파사드는 각 집주인이 취향에 맞게 파스텔톤의 연한 오크, 연회색, 핑크, 올리브 그린, 레몬색, 흰색과 검은색 즈그라피토 등 다양합니다.
텔츠의 집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통일 속의 다양함이었습니다.
아치형 회랑으로 연결된 집들에는 오래전부터 오늘까지 살아온 삶이 은근히 스며 있습니다.
제빵사가 오븐을 열거나 의사가 환자를 맞이합니다.
살구색 집에선 대장장이가 금속을 두드렸을 겁니다.
연보랏빛 집의 여학생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웃음을 흩뿌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책장이 낮게 속삭입니다.
회랑의 몰딩 틈새, 몇 세기 전 장인이 새긴 덩굴 문양이 은은하게 빛납니다.
이 광장을 지금의 형태로 완성한 이는 자하리아스입니다.
자하리아스(1527–1589)는 모라비아의 저명한 귀족이자 가장 부유한 거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에 매료되어 장인들을 직접 데려왔고, 텔치 성과 광장을 전면 개보수했습니다. 오늘의 텔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것은 사실상 그의 선택 덕분입니다.
체코에는 2,000개 이상의 성과 샤토가 있습니다.
이것은 국토 면적 대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이고 유럽에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에 이어 많습니다.
텔츠 성의 중정에 아케이드가 보였습니다.
비도 피할 겸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지요.
그리고 그곳에서 오래된 색의 기도를 만났습니다.
벽은 마치 오랜 세월을 견뎌온 종이처럼 부드럽게 일렁였지요.
석회가루가 얇게 스민 표면은 따뜻한 크림색으로, 그 위의 장식화는 마치 무뎌진 펜촉으로 쓴 오래된 편지처럼 반쯤 지워진 채 남아 있었습니다.
창 아래 둥글게 감긴 벽면에는 비어있는 사각 패널들이 규칙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공백처럼 보이는 패널의 빈 여백에는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흐려진 스크롤 장식은 선이라기보다 윤기 없는 기억의 자국처럼 보였고, 그 속에 감긴 붉은색과 녹색의 미약한 흔적만이 당시의 숨결을 증언하는 듯합니다.
덩굴이 아치의 곡선을 따라 길게 뻗고, 포도잎처럼 성긴 잎사귀들이 기하학적 문양 사이에 가볍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작은 형상들이 파도처럼 말려든 곡선 속을 은근히 오가고 있었지요.
어떤 부분은 금세 바스러질 듯 연하며 어떤 부분은 아직도 선명한 윤곽을 자랑했습니다.
아치의 안쪽 모서리에 남아 있던 레몬색과 하늘색의 얇은 선들은 시간이 흐르며 색을 거의 잃었음에도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하는 것처럼 벽의 리듬을 부드럽게 잡아주고 있었습니다.
천장 가장자리의 작은 플로럴 문양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려함 대신 기척만 남겨놓은 빛의 가루랄까?
빗속을 통과한 옅은 빛은 아치 아래로 조용히 스며들어 이미 바랜 색의 파편들 위를 천천히 훑고 지나갔습니다.
나는 벽의 그림들이 한낱 장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의 흠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라진 것이 더 많은 여백이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지요.
그 여백은 마치 오래된 색의 기도 같았습니다.
시간이 나를 바라보는 듯했습니다.
바랜 흔적들이 모여 만든 얇은 기도,
희미해지면서 더 깊어지는 아름다움,
잠시라도 그곳에 머물 수 있었음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누군가는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갈 낡음과 바랜 빛깔에 감동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시간을 품고 있었습니다.
소유보다 기억을, 화려함보다 여운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반짝이는 경이로움이 아닌 은은한 흐릿함을 눈으로 어루만질 수 있었던 그날도 후회 없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