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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한집사 Oct 18. 2024

홍승은 작가의 「관계의 말들」이란 무엇인가

홍승은의 「관계의 말들」과 정현종의 「섬」 사이의 상호 텍스트성에 대해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섬」, 정현종 -


 관계에 대한 인간의 모순된 욕망을 이처럼 멋진 메타포로 묘사한 시가 또 있을까? 

 퇴근 시간에 몰려드는 차들처럼 끝없이 이어진 인간의 무리 가운데서 살아가는 ‘나’, 그리고 ‘나’, 또 그리고 ‘나’, 수많은 ‘나’들……. ‘연결된 채 살아간다’라고 인간의 관계적 속성에 대해 언급한 작가(저자 홍승은)의 말처럼 이 시 역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노래한다. 결국 운율에 입 맞춘 시인이나 담론을 풀어낸 작가나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같은 셈이다. 


 관계.      

 시인은 이것에 대해 독자에게 말하고자 ‘섬’이라는 기막힌 소재를 활용한다. 섬- 입도와 출도가 있는, 양면성을 지닌 공간. 


 그러기에 ‘섬’과 ‘가고 싶다’라는 시어와의 관계에 집중한다면 이 시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섬’이라는, 관계의 연결 고리를 찾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 작품이 된다.  반면 ‘섬’과 ‘사람들’이라는 시어와의 관계에 주목한다면 ‘섬’은 타자에게 지친 마음을 회복하고자 도망치려 하는, 자신만의 도피처일 수 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이중적 속성에 대해 작가는 ‘우리는 끝내주게 모순적이고 이상한 존재들이다’라고 정의한다. 수많은 ‘나’에 둘러싸여 살아가기에 때로는 상처받고 눈물 흘리면서도 늘 외로움을 느끼며 관계에 목말라하는……. 그래서 책 속 <들어가는 말>의 마지막 글귀가 이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관계가 당신을 힘들게 할지라도 부디 자신을 잃지 않기를 소망하며-     

 “우리, 함께 흔들려요. 꼭 자유해요.”     


 이처럼 타자와 관계 맺음으로써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도구는 무엇일까? 그것을 작가는 바로 ‘말’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의 제목이「관계의 말들」인 사실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실제로 인간이 사유하는 한계는 그가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견해가 학계의 주된 입장임을 고려한다면 작가의 이러한 관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이 책은 100개의 장에 걸쳐 독자에게 관계를 다룬 여러 글의 한 장면을 소개한다. 더불어 이와 관련된 작가의 경험과 깨달음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관계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때?’라고. 그 기저에 깔린 주된 의식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존중, 둘째는 사랑, 셋째는 연대이다.


 첫째, 존중. 

 이것은 나 자신과 더불어 그 외 모든 존재를 포용하고 이해하는 태도를 말한다. ‘나부터 나를 제대로 호명하기 위해’라는 글귀는 다양한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특히 누군가의 아내․엄마로 살아가며 제 이름을 잊은 여성들에게 ‘나’를 지키라는 울림을 준다. 또한 ‘다른 결을 가진 우리’라는 글귀는 개체의 고유성을 인정해야만 공존할 수 있다는 가치를 담고 있다. 가정, 학교, 회사 등과 같은 공동체에 속해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안내가 아닐까? 


 둘째, 사랑.

 작가는 개인적인 차원의 연애부터 사회적인 차원의 가부장제, 그리고 이념적인 차원의 페미니즘까지 다루며 ‘사랑’을 폭넓게 이야기한다. 공허함을 달래고자 ‘연애인’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쉬지 않고 연애했던 과거. 하지만 결국 한없이 작아지는 이별이 따르고- 그러면서 나 자신을 향한 사랑을 깨닫고, 자연스레 여성을 제도적으로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부조리함에 눈을 뜬다. 더불어 ‘사랑’이란 추상어를 재해석하려는 이념적 시도에도 관심을 두게 된다. 삶과 생각을 담담한 어조로 집필한 에세이처럼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분석적인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셋째, 연대. 

 글의 마지막인 100번째 장에서 작가는 본인이 운영하는 글쓰기 강좌의 수강생들에게 ‘우리는 집필 공동체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믿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서로 돕는 관계- 

 나를 믿기 어려울 땐 나를 믿어 주는 우리를 믿는 관계-

 자신에 대한 믿음조차 희미해져 집단 히스테리를 앓고 있는 현대인들이 ‘나․너․우리’의 관계를 회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집필 공동체를 뛰어넘은, 시민 공동체의 운명적 관계를 지칭하는 말로 책에서는 ‘시민적 돌봄’이라는 용어를 인용한다. 인구 감소가 가시화되고 있는 오늘날에 진정 우리가 새겨두어야 할 개념이다.     


 존중, 사랑, 연대.

 그리고 이것을 담은 그릇, 말.      


 작가는 너무나 달콤하게 ‘너의 슬픔을 감싸 줄 문장이 있어서 다행이야.’라고 속삭인다. 누구나 말을 한다. 자신에게도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키우는 강아지에게도, 가지에 돋은 새잎에도, 안개 자욱한 하늘에도 말한다. 다만- 말할 때 타인을 지금보다 존중하고, 사랑하고, 함께하려는 마음을 담는다면, 지금보다 세상의 슬픔이 조금은 더 작아질 것이란 이야기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그런 문장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너에게 이런 편지를 띄운다.


 책장을 덮은 지금

 한없이 아름다운 말로 배표를 산 후

 나는-

 너와 나 사이의 섬에 가고 싶다고.

 아무도 발 딛지 않아 외로웠을, 

 그 섬에 가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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