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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는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부담해야 하는가?(2)

대법원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일관되게 부정한다

by 심재우 변호사


지난 글에서 말씀드린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상법 개정안은, 원래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상법의 규정(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을, '이사는 회사와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내용(이사의 회사 및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으로 개정하는 내용이다.
이사의 충실의무란, 이사의 '회사를 배신하지 않을 의무'를 의미한다.


이번 글에서는 위 내용을 바탕으로, 상법 개정안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실제로 상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어떠한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례를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회사의 대표이사 A는 자신의 지분을 늘리기 위해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주주를 상대로 유상증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을 상대로만 유상증자를 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A에게는 현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A는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지인 B에게 20억 원을 빌린 다음, 이 20억 원으로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실시하여 자신의 지분을 늘렸습니다.
그다음, A는 유상증자 시 회사에 납입한 위 20억 원을 회사 계좌에서 곧바로 인출하여 B에게 변제하였습니다.


위 사례에서, A는 회사에 대한 배신행위를 했을까요?


그렇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회사 통장에 20억 원이 나왔다가 들어갔지만, 유상증자 직전의 회사의 자산과 유상증자 직후의 회사의 자산에 변화는 없습니다.

부채가 더 늘어난 것도 아니고요.

오히려 법인등기부상 납입자본금이 증가하여 회사의 신용이 더 좋아 보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회사는 손해 본 것이 없고, A는 자신의 지분을 늘렸고, B는 돈을 변제받았으니, 결국 이러한 A의 행위로 인해 손해 본 사람은 전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A를 제외한 회사의 나머지 주주들은 손해를 입었습니다.

A의 지분이 증가했으니, 나머지 주주들의 지분 비율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자산 상태는 동일하니, 나머지 주주들의 지분 가치가 줄어든 것이지요.

예를 들어 회사의 자산이 100억이고, A가 50, 나머지 주주들이 50만큼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봅니다.

그런데 A가 위 사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신의 주식을 50에서 100으로 늘렸습니다.

그렇다면, 유상증자 직전에는 A와 나머지 주주들이 100억을 50:50으로 나누어 가지고 있었는데, 유상증자 후에는 100억을 100:50으로 나누어 가지게 된 셈이 되니, 결국 A는 이득을 보고 나머지 주주들은 손해를 본 것이지요.


이와 같이, 이사의 행위가 회사에 대한 배신은 아니지만 다른 주주들이 손해를 보는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뉴스에서도 꽤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물적 분할을 통한 상장입니다.


어느 회학 회사(상장 회사임)에 전통적인 화학 부문과 배터리 부문이 있는데, 배터리 부문이 굉장히 유망합니다.
소액 주주들은 이 배터리 부문을 보고 이 화학 회사에 투자를 하고, 화학 회사의 가치가 점점 올라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학 회사의 대주주와 이사회가 배터리 부문만 따로 떼어 자회사로 만든 뒤(물적 분할), 별도로 상장(IPO)을 합니다.

위 IPO는 대박이 납니다.
당연한 것이, 아주 유망한 배터리 부문만 따로 떼어 배터리 회사를 만들고 신규로 상장을 하니 다들 공모에 참여하지요.
게다가, 이 배터리 회사의 입장에서 봐도 물적 분할 및 IPO는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신규로 유치한 자금을 통해 기술 발전을 하고 설비를 늘리는 등, 배터리 회사를 더욱더 키우고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 사례에서, 대주주도, 이사회도, 배터리 회사도, 배터리 회사의 공모주를 받은 주주들도 모두 행복합니다.

단 하나의 주체만 빼고 말입니다.

바로 기존 화학 회사의 주주입니다.

이들은 배터리 부문을 보고 화학 회사에 투자를 했는데(주식을 취득했는데), 이제 자신이 취득한 이 주식들은 그 가치를 잃어버렸습니다.

배터리 회사가 따로 상장되었는데, 배터리 회사 주식을 사지 누가 화학 회사 주식을 사겠습니까?


이렇듯 회사에는 영향이 없거나 오히려 회사 자체는 좋아지고, 또 총주주의 이익은 증가할지라도, 기존 주주의 비례적 주식 가치는 침해되는 경우가 현실에도 꽤 있습니다.




이쯤에서 이러한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이사가 회사를 위해 행동해야 하는 것은 잘 알겠다. 하지만 회사는 그 구성원인 주주들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영리법인일 뿐만 아니라, 이사는 주주들에 의해 선임되므로 결국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합리적이고 타당한 생각입니다.

또한 그러한 생각이 지배적이라면, 굳이 상법 개정도 필요 없겠습니다.

개정을 하지 않더라도 이사에게는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도 있다고 다들 생각할 것이니까요.


하지만 우리 대법원은, 일관되게 '이사는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는 부담하지 않고 회사에 대해서만 충실 의무를 부담한다'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위 대표이사 A의 지분 늘리기 사례에서 대법원은 "... 신주발행에 있어서 대표이사가 일반 주주들에 대하여 그들의 신주인수권과 기존 주식의 가치를 보존하는 임무를 대행한다거나 주주의 재산보전 행위에 협력하는 자로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는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중략)... 따라서 신주발행에 있어서 대표이사가 납입의 이행을 가장한 경우에는 상법 제628조 제1항에 의한 가장납입죄가 성립하는 이외에 따로 기존 주주에 대한 업무상배임죄를 구성한다고 할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대법원이 이사는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것으로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상법 제382조의3 규정을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라고 개정하여,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명문화하자는 것이 상법 개정안의 핵심입니다.




이사는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부담해야 하는가?(3)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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