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답고, 마누라도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 Wife is beautiful

by 소융이

예쁜 딸을 낳고 우리는 싸우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너무 좋은 배우자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감사기도를 드렸던 우리였는데. 서로에게 너무 좋은 배우자라고, 먼 길을 돌아오긴 했지만 이렇게나마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던 우리였는데. 결혼하고 일 년 반 동안 3번 정도 가벼운 말다툼 정도밖에 하지 않는 우리였는데.


아이는 배앓이와 더불어 100일 동안 아기띠에서만 잠들었고, 산후조리가 덜 끝난 상태에서 나의 몸은 너덜너덜 해 질 것만 같았다. 남편은 나를 아주 아껴주는 사람이었지만, 잠에 있어서 만큼은 정말 예민하고 이기적이었다. 잠을 푹 자는 게 다른 사람들보다 힘든 사람이고, 잠을 푹 자지 못한 다음날이면 모든 것에 예민했기 때문에, 신혼 1일부터 기꺼이 행복하고 자발적으로 각방을 쓰던 우리였다.


그런 남편에게 새벽에 2-3번씩 우는 신생아를 부탁할 수는 없었다. 남편이 얼마나 잠에 예민한지 알기에, 그리고 다음날 프로그램을 만들고 (남편의 직업은 programmer) 클라이언트들을 상대하기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지 알기 때문에, 그냥 내가 새벽에 애를 돌본다고 했다.


다 꼴 보기 싫었다. 내 몸이 지쳐가니 애기가 예쁜지 모르겠고, 남편이 소중한지도 모르겠고, 잠자는 남편은 더 꼴 보기 싫었다. 출근하는 남편이 부러웠고, 출근하는 동안 24시간 보호를 받아야 하는 신생아와 떨어져 지내는 것도 부러웠다.


그런데 남편의 대학원 학기가 시작됐다. 회사에서 학비를 지원해주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워, 공부할 수 있을 때 얼른 그리고 많이 공부하라고 지지해주던 나였지만, 애를 낳고 나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나는 하루 종일 남편 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는데, 남편은 집에 오고 나서 또 공부를 해야 했다.


자연히 짜증과 싸움이 늘어갔다. 나는 피곤한 내 몸과 마음을 어찌할 줄 몰랐고, 남편은 예민해진 와이프와 회사, 일, 그리고 학교를 어떻게 병행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가 90일쯤 되었을 때였을까. 나는 아이를 안고 남편과 말다툼을 시작하려고 슬슬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할 때, 그때, 그 어린아이가 남편을 밀치면서 울기 시작했다. 그 어린아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24시간 보호해주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엄마를 슬프게 하는 아빠를 향해서 소리치며 울며, 엄마와 자신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손으로 아빠를 밀쳐내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직감적 아이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고 싸움을 멈췄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순간 둘 다 동시에 말을 멈췄고 그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남편이 말했다.

“자기. 엘리가 벌써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어서, 벌써 나를 미워하려고 해. 자기도 나를 미워하고, 딸도 나를 미워하면 나는 너무 슬플 것 같아. 내가 다 잘못했어. 미안해.”


남편과 나는 아기에게 참 부끄러웠다. 한 번도 아이는 우리에게 세상에 태어나게 해달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우리가 아이를 낳아놓고서는, 아이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고 있는 꼴이라니. 모든 상황이 슬펐고, 미안했고, 부끄러웠다.


남편과 상의하에 나는 당분간 한국 친정에 있기로 했다. 미국에서 베이비시터를 고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나는 친정이 있는 한국행을 택했다. 누군가는 부부는 절대 떨어져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엄청난 걱정과 조언을 해주었지만, 남편과 나는 그냥 잠시 떨어져 있기로 결정했다. 남편은 회사와 대학원을 마음 편히 병행할 수 있어서 Happy, 나는 마음 편히 도움받을 수 있는 친정이 있어서 Happy,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 듬뿍 받을 수 있어 Happy.


한국행 비행기를 끊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Life is Beautiful, Wife is Beautiful.”

(Feat. 어이없어서 멍하게 쳐다보다가 헛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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