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만난 노인들

늘 그들이 평온하기를

by 소융이

내 딸 아이의 성격은, 내가 임신 중에 노인병원에서 근무했던 그 환경 그대로를 닮아 있다. 딸은 하루 종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참견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하루 종일 딸 아이의 뒷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혼자 습관처럼 물어보고 대답하곤 한다. 혼자 짜증과 절망이 섞인 채로 물어보았다가 이내 곧 혼자 대답하며 웃는다.


“너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러니?”

“애미 니년이지, 누구여”




L.A 노인 병원에서 일했을 때의 이야기다. 사회복지사로서의 병원 경력이 처음이기도 하고, 미국 건강 보험이 지극히 자본의 (이익)논리에 따라 운용되는지라 나는 부쩍 긴장하며 병원생활에 적응했다. 미국 보험체계의 민낯이지만 적지않은 환자들이병원에 더 머물고 싶어함에도 불구하고 보험회사 측에서 승인을 해주지 않아, 병원측에서 환자들의 퇴원을 압박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환자들의 불만이 병원의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질까봐, 혹은 상황이 악화되어 소송으로 이어질까봐 서류와 절차적인 문제에 신경을 곤두 세웠다 (이미 병원에서는 몇 건의 소송으로 몇 년 째 재판이 진행 중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병원에서 더 많은 노인을 만날수록, 나는 그들 삶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내가 병원 생활을 더 즐겁게 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선택한 것일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들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을때 전체적인 서류나 절차과정이 훨씬 더 매끄럽게 진행되기도 했다.


그들은 이제 병원에서 쇠퇴해 가는 자신의 몸과 흐려져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내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젊은 날에 빛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누군가는 소싯적에 보통사람으로서는 꿈도 못꿀 액수의 거액을 운용하며 사업을 하기도 했었고, 누군가는 수려한 외모로 젊은 날의 청춘을 불태우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타고난 입담과 성격으로 공동체를 일으켜 세웠으며, 누군가는 타고난 끼와 실력으로 방송 활동 했으며, 누군가는 훌륭한 집안 배경과 언변으로 정치계에 입문하기도 했었다. 이제 그들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되어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침대에서 화장실의 이동 조차도 자유롭지 않은 삶이 되었지만 (침상에서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도중 넘어져서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그들이 가장 젊고 예뻤던 날을 이야기 할 때 만큼은 마치 몇달 전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하는 것처럼 그들의 얼굴에는 발그레한 윤기가 돌고 눈에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나는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참 많은 예쁨을 받았다. 물론 임신한 여성과 어린 아이들을 예뻐해주는 미국의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그들 삶의 이야기가 나에게는 너무 재미있었다. 희노애락을 경험하는 그 순간에는 달콤 씁쓸한 세상사의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묻어나지만, 세월과 감정의 필터링을 거친 희노애락은 말하는 이로 하여금 정제된 감정만을 전달하게 하고, 듣는이는 아무 걱정없이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되는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끝이나면 그 이야기를 들어준 나에게 감사함을 표시하고, 임신으로 뚱뚱해진 내 배를 만지며 축복의 말 또한 뱃 속의 아이에게 건내주었다. 환자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 역시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길 바란다며 나에게 많은 선물과 축복의 말들을 건냈다.


그들의 축복 덕분인지 나의 딸아이는 나와 남편의 유전자 조합으로는 나오기 힘든 활달함과 호기심을 지녔다. 늘 빠르게 움직이며 사고를 치는 딸아이 덕분에, 나는 그 병원을 그만둔지 1년 넘었지만 ‘즐거운 원망’으로 내가 일했던 병원과 노인 환자들을 이따금씩 기억해본다. 어쩌면 그들 중 일부는 돌아가셨겠지만, 그들 중 누구는 병세가 더 심해져서 상급병원으로 옮겨졌겠지만, 그들 중 누구는 아마 치매가 심하게 진행 되어 나를 기억조차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들이 오늘도 평온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평안한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가장많이 기억하는 노인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작은 마음의 편지들을 띄어본다.



B 할머니. 한국에 있는 우리집 고양이와 이름이 똑같다며 단 한번에 이름을 기억했던 한국 할머니. 참으로 수고로운 삶을 사셨는데 어찌 이리 마음도 얼굴도 고우실까요. 친아들 한 분, (본인의 자식이 아닌)두번째 남편의 딸 3명을 남편 없이 혼자 키우시느라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할머니 그 고운 마음덕에 아드님도 성격이 참 좋으십니다. 할머니의 예쁘고 순수한 마음 마주할 때면 일과 사람에 지쳐가던 제 마음도 다 맑아지는 기분이었어요. 할머니 제가 출산휴가를 내고 병원을 떠날 때 쯤에는 입맛이 없다고 자꾸 한국 두유만 드시고, 움직임이 줄어들어 자꾸만 무릎이 부어갔는데 요즘은 어떠신지요. 제가 할머니 예쁘고 고왔던 마음 오랜동안 기억할께요.


P할아버지. 여자를 좋아하시던 터라 국적을 안가리고 예쁜 여자만 보면 이야기하고 싶고, 내가 한번만 더 젊었으면 당신이랑 살림 한번 차려보고 싶다고 하셨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한평생 바람핀거 눈감아주고 이제는 늙어서 옆에서 병수발도 하는데, 할머니 잠깐 화장실 가있는 사이에 여자 직원들한테 그러면 안됩니다! 제가 이번 생에는 안되지만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나면 할아버지 여자친구 하는거 한 번 생각해 보겠다고 맨날 거짓말 한거 죄송해요. 두 세번을 다시 태어나도 할아버지 여친은 못하겠어요. 남은 시간들 할머니랑 좋은 시간, 좋은 추억 많이 만드시길 바랄께요.


A 할머니. 치매가 있으셔서 제가 말하는 건 모두 믿으셨던 귀여운 할머니. 내가 18살이라고 해도 믿어주고, 결혼을 3번 해서 남편이 3명이 있었다고 해도 믿어주고, 내가 고향이 북한이었다고 해도 모두 믿어주신 할머니. 할머니 화장실 갈 때 직원 호출해서 꼭 부축 받아서 가세요. 안그럼 또 엉덩이 뼈 깨져서 정말 고생 많이 하십니다. 할머니 큰 따님이 맛있는 요리해서 갖다주시고, 저희 부부 털모자도 떠주셨는데. 아직도 털모자 볼때마다 할머니 큰 따님 생각납니다. 할머니와 가족분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랄께요.


B 할머니. 할머니 성질 괴팍하고 드러운거 병원 직원들 다 압니다. 그래도 병원 직원들한테 함부로 말씀하시면 안돼요! 정작 할머니를 곁에서 가장 많이 지켜봐주는 사람들은 병원 직원이랍니다. 할머니 고집때문에 며느리를 30년 넘게 안봤다는데, 이제는 조금 내려놓으시고 조금씩 관계를 시작해보는건 어떨까요. 할머니 나한테 미친년이라고 많이 하셨는데, 그래도 한국 사람이라고 팥빵이랑 약과 많이 챙겨주셔서 좋았습니다. 사실 팥빵 얻어 먹으려고 할머니 침대에 찾아간 적 몇 번 있습니다.


C할머니. 보험 적용이 힘들어서 개인 사비로 한달에 $20,000 (약2400만원)을 내고 계시는 백인 할머니. 실질적인 병원의 VIP는 할머니임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하신거 빼고 머리도 너무 총명하게 잘 돌아가시니, 항상 머리가 둔탁해지지 않도록 지금처럼 신문과 잡지 많이많이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R 어머님. 노인병원에 들어 오시기에는 너무 젊고 예뻣던 어머님. 충분히 예쁘고 똑똑한데도, 어릴적 부모님 사랑을 많이 못 받고, 본인이 한 번 이혼한것에 대한 컴플렉스를 감추려고 하다가 환청과 망상이 시작됐던 환자분. 망상이 심해져서 주변 사람들이 총을 겨누고 있다고, 방송사에서 취재나왔다고 한 날 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정신과 약은 늘 꾸준히 복용하셔서 빨리 마음이 편안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M 할아버지. 치매가 심해져서 5분전에 한 말도,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를 갔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셨던 한국 할아버지. 할아버지 나랑 놀고 싶다고 내 앞에서 노래도 많이 불러주고 농담도 많이 하셨는데… 할아버지 병원에서 나가시던 날 (할아버지가 장기환자로 분류되고 보험적용이 안되면서, 사실은 더 낮은 등급의 시설로 쫓겨난 것이나 마찬가짐),내 손잡고 눈물흘리시며 “예쁜이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우리 예쁜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해야해” 하실 때, 저 마음이 너무 뭉클 했었습니다. 할아버지 참 오랜동안 마음에 남을꺼에요. 늘 건강하시고 평온하시길 바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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