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하늘이 주시는 것

by 소융이

미국에서 자란 신랑은 언제나 일본을 가보고 싶어 했다. 아! 일본을 신혼여행지로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나였는데, 그때는 ‘미국에서 살아갈 우리들인데, 우리가 살면서 앞으로 일본을 여행할 일이 몇 번이나 되리…’ 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뜻대로 일본 교토와 오사카로 9일간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신혼여행이 주는 즐거움과 설레움 때문이었겠지만, 우리는 정말 열심히 먹고, 돌아다니고, 날마다 온천욕을 하고, 사랑(?)을 했다. 3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첫아이를 임신하기에 젊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특별히 피임을 하지 않았다. 생명을 주시면 그저 감사히 받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뒤로 2-3주 뒤쯤 나에게 ‘빨간 날’ 이 찾아왔을 때 나는 약간의 실망을 했다. 어쩌면 임신을 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결혼 후 두 번째 ‘그 날’이 다가왔다. 3-4일을 기다려도 ‘빨간 소식’이 들리지 않자, 나는 임신테스트기를 사 와서 확인을 해보았고, 임신테스트기에는 선명한 두줄을 알리는 양성, 임신이라는 소식을 알렸다. 올챙이가 도망갔다가 잡혔다를 반복하는 태몽도 꿨던 터라 친정과 시댁에 임신 소식을 알리며 축하도 맘껏 받았다. 당장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를 찍으며 임신을 확실하게 확인받고 싶었지만 주변 산부인과에서는 8주가 되어서 오라는 대답뿐이었다.


임신 8주가 되어 초음파로 아이를 확인할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기대에 부풀어서 임신 8주 차 되어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갔을 때, 불행히도 초음파로 아기 심장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병원 측에서는 임신 초기에는 세포가 너무 작아 아기집 안의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 다음 주에 다시 오라는 말을 했다.


한 주 뒤, 임신 9주가 되었을 때 다시 똑같은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초음파로 아기집은 보이지만 여전히 심장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병원 측에서 다시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아직 너무 초기라 그럴 수 있으니 다음 주에 다시 확인을 해보자고.


다시 한 주 뒤, 임신 10주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병원 측에서는 유산일 수도 있겠다는 말과 함께, 그래도 다시 한번 한 주만 더 기다렸다 초음파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많은 생각과 느낌들이 오갔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릴 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유산이라는 말 조차 입에 잘 담지도 못하고, 권위 있는 산부인과를 (눈이 빠지도록) 열심히 검색해 새로운 예약을 잡았다.


새로운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고 담당 의사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99% 유산으로 판단된다”라는 것이었다. 임신으로 아기집은 형성이 되었으나, 아기집 안에 난황과 심장이 보이지 않는 ‘계류유산’ 소견이었다. 의사는 정말로 아무 일이 아닌 것처럼 너무도 담담하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유산된 아기집을 어떻게 몸밖에 빼낼 것이지 나에게 물었다. 감정을 제거하고 팩트만 이야기하는, 죽은 생명체의 찌꺼기를 빼내는 방법의 장단점만을 논의할 뿐이었다. 나도 내 앞에 마주한 의사처럼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약물로 아기집을 빼겠다는 의사만 표시하고 산부인과를 나왔다.


집에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이 그저 멍했다.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조차 모른 채, 그저 머리가 멍했다. 생명이 온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명이 다시 그렇게 잠시 머물렀다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유산이 무엇인지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저 조용히 손으로 닦으며 차를 운전해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소식을 알리고 계속 침대에 누워있었다.


저녁 7시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다. 너무도 예쁜 주홍빛 파스텔톤이 감도는 장미 꽃다발을 나에게 안겨주며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그제야 소리 내서 울 수 있었다. 그 감정이 충격인지 슬픔인지 당황스러움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쩌면 그 모두겠지만), 그제서야 남편 품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마음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마음이 너무 아파 유산과 임신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놓을 수 조차 없었다.


내가 아이를 유산한 수 만 가지 이유와 확률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그 생각들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한 모든 행동과 말, 마음가짐을 되돌려보며 다시 또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온몸이 불가항력적으로 이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생명은 하늘이 주시는 것’


삶은 다시 한번 나에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세상에는 정말로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는 것이 있어도 안되는 것이 있고, 별로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 있다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시간이 흘러 한 발짝 떨어져 자신을 바라볼 때야,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고.


그리고 나는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했다. 흘러가는 이 시간이 허망하고 슬픈 것이 아니라, 훗날 시간이 지나 지금을 기억할 때 모든 것에는 때와 이유가 있음을 깨닫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게 해 달라고. 나 스스로가 나를 내려놓고 슬픔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너무도 서툴고 나약한 존재이니, 당신의 그 거대한 사랑과 이해심으로 나를 안아달라고. 당신의 평화가 나와 함께 해달라고. 보잘것없는 내가 당신 앞에서 다시 한번 무릎을 꿇고 기도하오니, 연약한 나를 다시 한번 당신 안에서 일어서게 해 달라고.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나를 온전히 낮추어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