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정적

이 또한 지난 날의 추억이기를

by 심바

기온 31도, 습도 75%.

푹푹 찌고 습해서 뻐끔뻐끔 거려야 하는 날씨.


"나에게도 아가미를 줘-"라며 아무것도 하기 싫어 늘어지게 늘어져있다가 문득 그냥 이 나태한 기분을 글로 써보고 싶었다. 마음을 먹은 순간 모니터 앞에 앉아 메모장을 열고 올해는 글을 많이 써보자 결심하고 구매한 기계식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머릿속에 떠다니는 흐릿한 키워드만 있다. 분명 최근에 경험한 영감 주제들이 많은데. 흐릿하기 때문에 복잡한가? 그럼 그냥 '흐릿한 키워드, 머릿속에 미생물처럼 떠다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것들'을 글의 주제로 해봐야겠다.


복잡하다는 말이 맞나? 사실 지금 나는 단조롭기 그지없는데. 그전에 글을 쓸 때는 영감을 받아 순식간에 후루룩 써 내려갔던 거 같은데 지금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영감의 부재는 최근에 감정을 느끼는 것에 거리를 둬왔기 때문인 거 같다. 즐거움, 행복, 감사함, 슬픔, 벅참, 기쁨. 이런 감정이 몰려오려다가도 그 처리하는데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몰려오려던 감정들을 미리 어느 정도 차단하는 거 같다. 나중에 느껴보자, 나중에 몰아서 울자, 너무 기뻐하면 될 일도 안된다, 일희일비하지 말자, 너무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다, 화를 다스리면 일이 크게 벌어지지 않을 거다, 감정이 태도가 되지 말자.


여름은 덥기 때문에 쉽게 감정이 휘몰아치는 계절이다. 자연 또한 푸릇함을 한껏 뽐내고 해는 어디 한번 버텨보라는 듯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습도 또한 숨을 벅차게 만든다. 여름이라는 계절은 사람에게도 감정이든 태도든 자신감이든 뭐든 너도 한번 분출해 보라고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다. 근데 나는 이 한여름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분출은커녕 생각도 감정도 꾹꾹 담아내기만 했으니 정적 상태가 되는 것이 당연한가? 그러니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아 지는 거지.


그래서 오늘의 이 흐릿함도 그냥 기록해 본다. 모든 생명이 분주하고 활기찰 때 나 혼자 가만히 있는 것, 이것도 돌이켜보면 여름 기억의 한 조각으로 남아있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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