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일대의 기회를 만든 존경스러운 애니메이터 심
2009년에 아바타 1 이 개봉할 때쯤, 심과 나는 연애 초창기였다. 모든 연애가 그러하듯 영화관은 필수 코스였고 영화를 좋아하고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의류사업에 추가로 프리랜서 영화 콘셉트아티스트 일도 하고 있었던 심이었다. 그런 심에게 그 당시 최고의 3D 애니메이션 느낌이 나는 CG 기술을 보여줬던 영화 '아바타'는 큰 충격을 주었었다.
사업으로 너무 바빠 간신히 심야 마지막 상영시간을 예매하고는 설렘을 가득 안고 극장에 들어갔을 때, 극장에는 우리 커플과 다른 두 명의 관객만 있어 영화관을 전세 낸 듯이 관람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우리 둘은 CG 기술과 배우들의 연기가 절묘하게 접목된 작품의 디테일과 완성도에 넋을 잃고 한참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이걸 사람이 만들었다니. 그렇게 충격적인 것만 기억하는 나의 뇌리에 깊게 박힌 날이었다. 그게 심커플의 첫 영화 '아바타'를 영접한 2009년의 어느 날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이 흘러 남편은 미국 SCAD에서 애니메이션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아바타 1에 리드/시니어 애니메이터로 작업했던 분이 미국에 만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3D 애니메이터로 입사하게 되었다. (취업의 과정은 15화에 자세히 다루었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2019년, 플로리다에 있는 작은 그 회사에 입사할 당시 남편과 나는 회사의 비전과 가능성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바타 1’ 작업에 참여한 분이니 혹시나 정말 혹시나 다시 아바타 2를 이분이 작업하실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으로 가득 찬 우리 멋대로의 설렘이었다. 물론 '아바타'를 제작한 'Weta'는 뉴질랜드에 위치한 회사이기에 정말 가능성이 적은 우리끼리 김칫국 마시기용 설렘이었다.
그렇게 플로리다에서 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남편은 매일 매 순간 최선 이상의 노력을 하며 성장해 왔다. 넘어지면 일어서고 실수하면 다시는 실수를 번복하지 않게 포스트잇에 기록을 해서 책상 벽에 붙여 두며 매일 상기시키며 실수를 줄여 나갔다. 심은 코로나로 인해 2020년 2월부터 재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늘어나는 포스트잇을 매일 지켜볼 수 있었다. 그렇게 포스트잇이 벽 절반을 차지할 때쯤 남편의 애니메이팅 실력은 처음보다 훨씬 성장해 있었다. 물론 경력 전혀 없던 주니어 애니메이터였기에 올라갈 길만 있었지만 시간 대비 초인적인 힘으로 실력을 성장시킨 그가 존경스러웠다.
2021년 겨울 즈음, 매해 하던 회사 연 평가에서 심은 그동안의 노력과 성장을 인정받았고, 회사 내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바로 '아바타 2: 물의 길' ( Avatar : The Way of Water )이었다. 회사에서 10명 정도의 인원을 뽑아 '아바타: 물의 길' 작업에 참여시켰고, 그 10명 안에 심이 들어간 것이었다. 우리가 입사할 당시 생각 했던 김칫국 마시기가 정말로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물론 심이 처음 애니메이터로서 엄청난 영화 작업에 참여한다는 것은 이 기회를 갖게 된 것에 대한 기쁨만큼 두려움도 컷을 것이다. 실제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그는 1분 1초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집중했다. 박사님 같아 보이는 수두룩한 지금 그의 흰머리는 그때 다 생긴 것 같다. 그냥 영어도 어려운데 뉴질랜드식 영어 발음을 들으며 회의하고 많은 실력이 뛰어난 팀원들에게 배우고 성장하며 무사히 아주 잘 애니메이터로서 '아바타 : 물의 길' 작업을 마무리했다.
'아바타 1'을 본 지 11년이 지나 7년간 하던 패션디자이너, 콘셉트아티스트,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닌 3D 애니메이터로 '아바타 2' 작업에 참여한 심을 보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 인생이 참 재미있구나' 생각했다. '아바타: 물의 길' 상영 첫날, 영화 끝 크레딧에 많은 크루들 중 몇 명 안 되는 한국인 아티스트 이름인 그의 자랑스러운 이름을 보고 있자니 꿈 만을 바라보고 유학을 시작하며 수입 없이 공부 기간을 견뎠던 시간들이 참 가치 있게 느껴졌다. 평생 한번 경험할까 말까 한 일들이 단순하지만 확고한 신념에서 미미하게 시작되었고 5년에 걸친 나비 효과로 일생일대의 기회를 누리게 되었다.
연애 전부터 나에게 존경스러운 선배였던 그가 결혼 후 잠시 사업의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꿈 없이 방황하더니 미국에 와서 자신이 좋아하는 적성에 맞는 새로운 직업인 애니메이터가 되고 난 후, 13년 전 그 시절 부지런히 노력하며 자신을 성장시켰던 멋지고 존경스러운 선배로 다시 돌아왔다.
인생에 수많은 선택이 존재하고, 둘이 한 팀이 된 부부에게 둘의 입맛을 모두 맞출 수 있는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2016년, 그 당시 우리에게 더 가치 있는 선택을 해서 후회를 줄이는 길을 선택하며 투자한 유학생활이 긴 우리 인생에 아주 이로운 밑거름이 되었다. 나이 상관없이 꿈을 꿀 용기, 도전해 보고 실패할 용기, 실패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키우며 무던히 앞을 보고 걸어갈 힘, 이 모든 것들이 단단히 쌓여갔다. 그의 도전, 실패, 노력, 성공을 보며 나 또한 존경스러운 그를 닮고 싶어 나의 장거리 도전을 준비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계속 써 내려갈 우리의 일상들 중 그의 응원을 받으며 현재 진행 중인 나의 도전도 한 챕터로 달고 쓴 이야기들을 줄줄이 기록할 날들이 곧 오기를 바란다.
달콤 살벌 심부부 미국 유학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