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박은순님이라는 환자분이 진료받으러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진료받지 않더라도 매일 하루에 두 번은 꼬박 찾아오시는데, 여기에는 작은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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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이야”
“밖에 춥다! 밥 먹었떠? 이거 먹어!”
그날도 어김없이 접수도 안 하고 원장실 문을 벌컥 여시더니, 다짜고짜 달콤해 보이는 빵을 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평소에도 은순님이 가장 좋아하는 단팥빵이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은순님은 "흐흐흐흐"하며 웃으시며 놀란 저를 재미있다고 바라보셨습니다.
사실 은순님은 동네에서는 유명한 분이였습니다. 매일 같은 옷을 입었고 다리를 절룩거리셨지만, 늘 웃는 표정으로,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이야기해서 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처음엔 그럴 때마다 적응이 안 돼서 깜짝 놀랐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진료를 볼 때도, 개인 업무를 볼 때도, 누워서 쉬고 있을 때도 아무렇지도 않게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셔서 큰 소리로 인사하니 말입니다. 이날도 진료 보던 환자분이 큭큭 거리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난감한 일이...
“어머님, 아이고 이런 거 사 오실 필요 없는데요. 어머님 맛있는 거 드시지..”
“괜찮아! 이 약 먹어도 돼?!”
“어디 볼게요. 어 이거 맨날 보여주시던 약이랑 똑같은 거잖아요?”
“이 약 먹어도 돼?!!”
“네 드셔야 돼요. 당뇨약이잖아요.”
“응 그럼 좀있다 봐!!”
이날도 어김없이 박은순님은 평소와 같은 약 이름을 물어봤습니다. 잘 살펴보면 항상 동일한 병원에서 처방받아 오시는 약이었습니다. 병원뿐만이 아니라 약국 이름도 매번 똑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기억력 문제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박은순님은 태어날때부터 장애가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살아왔던 삶도 평탄치 않으셔서 팔다리는 여러 번 골절을 입었던 흔적이 보였고, 몸의 여러 곳이 정상이 아닌 상태였습니다. 특히 어깨나 손가락의 탈구가 자주 생기셨는데, 그럴 때마다 일일이 맞춰줘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이 마음씨만은 누구보다 좋아서 어디를 가실 때면 꼭 이렇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날도 저한테 단팥빵 3개를 무작정 놓고 가셨습니다. 안 주셔도 된다고 된다고 이야기해도 계속 가져다주셔서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미안한 마음이 폭발해서 꼭!! 어떻게 좀 보답을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돈도 없으실텐데 이렇게 자꾸 사다주시고. 이런저런 생각 끝에 불현 듯 한 가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아.. 병원비라도 좀 줄여드려야겠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 될줄은 몰랐습니다.
그날도 빵을 주시고 일하러 가셨던 은순님이, 바쁜 시간이 다 끝날 때 즈음 치료받으러 다시 오셨습니다. 저는 여기저기 만져보고, 관절도 눌러보고, 어떤지 물어봤습니다. 치료 기간도 오래 되었고, 아픈 것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말씀하셔서 이제 하나씩 치료를 줄여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치료 위주로 해서 여러모로 비용을 줄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어머니 오늘은 많이 좋아지셔서 부항은 안 하고 침을 놓을게요. 그래도 치료 효과는 충분할거에요.”
치료실에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순간 은순님의 얼굴이 파래지는 것 같이 보였지만 저는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왜 안 해?!”
“아, 통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셔서 조금이라도 비용이 덜 나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
한참 침을 놓다 보니 또 저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왜 안 해?! 부항 왜 안 해?!”
그때 저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못 들으셨나보다 하고는 다시 처음부터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름 치료를 잘 끝마쳤다고 생각하고는 진료를 이어갔습니다. 이때라도 대책을 세웠어야 했는데 저는 다음날 출근할 때까지도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선생님 중 한 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저에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원장님...”
“네?”
간호사 선생님이 핸드폰을 꺼내서 저에게 내밀었습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원장님 이거 보세요..”
[부재중 전화 XX통]
“은순님 어제 난리났데요.”
“(헉...)”
“부항. 침, 뜸.. 하던대로 해주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알고 보니 그날 저녁, 은순님은 동네에 아는 사람들마다 다 붙잡고 한의원에서 부항을 안 해준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동네에서 장사를 오래한 분을 통해 알게 된 일이지만, 은순님이 오는 것을 싫어하는 가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행색도 초라하고 와서 가끔 옆에 사람을 깜짝 놀라게도 하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곳에서는 오지 말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답니다. 혼자 살고 생활도 어려웠던 은순님은 병원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제가 무심코 했던 행동이 자신을 쫓아내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원장님이 쫓아내실줄 알았나봐요..”
덕분에 온 동네에 소문이 다 났습니다. 저는 부랴부랴 원래대로 치료해드리기로 했습니다. 수납이랑 청구만 적게 하면 되니 말입니다.

그 다음날부터 다시 평온한 일상이 찾아왔습니다. 은순님은 여전히 똑같은 약봉투를 들고와서 이게 뭐냐고 물어보신 후 찬물에 믹스 커피를 한잔 타서 먹고 갔습니다. 그리곤 내가 온 거 비밀로 하라는 말도 깔깔 웃으면서 덧붙였습니다. 아무래도 자주 찾아오는 것은 저희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아니고... 한의원에 간호사 선생님들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원장님이 아니라 저를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

덕분에 깜짝 놀랄 일은 줄었지만 왠지 모르게 서운해지는 날들입니다. 약 봉투 가져오시면 더 잘 설명해드리고, 부항도 잘 붙여드려야겠다... 하하하...
그때 더 잘해드릴껄... 껄.... 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