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성이 삶을 갉아먹는 방식에 대하여
한의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 저는 남쪽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한의원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한 환자분이 종종 떠오릅니다. 허리 통증을 호소하시기에 제가 열심히 설명을 드렸더니,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학교가 어디냐. 서울대 아니지? 나는 네 말은 안 들어. 진단은 대학병원 가서 받을 거니까, 너는 침이나 놔봐."
그때는 그냥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한동안, 저에게 두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첫째는 누군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특히 처음 보는 초진 환자가 들어오면,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습니다. 둘째는 출근길에 차를 몰거나 그 동네를 걷다 보면, 동네 사람들이 다 밉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겠지. 그런 생각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상태를 바꿔보려 했습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예약과 초진에서 진짜 치료받을 사람만 골라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구조는 작동했어요. 좋은 분들만 받게 되니 몸은 훨씬 편해졌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오히려 불안해졌습니다. 악담하시는 분들을 거르고, 호의적인 분들만 받았는데도 그랬습니다.
사실 한참 뒤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어떤 사람을 골라내고 싶다면, 일단 모든 사람을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가정해야 합니다. 그때 제 마음 속에서는, 모든 환자가 앞서 말씀드린 그분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고 가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늘 긴장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상태를 바꾸려고 정말 많은 시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시도를 해도 마음은 더 답답해지기만 했습니다. 한의원 상태가 좋아져서 그런 분들이 덜 와도 마음이 착잡했고, 한의원이 안정되어 갈수록 마음은 더 타들어갔습니다.
-내가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내가 어떤 선입견을 갖게 되면, 다른 환자분들에게 거리를 두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그중 몇 명은 자연스럽게 건성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면 앞서 말씀드린 그 환자분 같은 분이 안 들어오니까 마음은 편해집니다.
건성으로 보게 되는 환자가 하루에 두세 명. 비율로는 아주 적지만, 그게 쌓입니다.
건성으로 일하는 시간이 하루에 몇 시간. 비율로는 아주 적지만, 그게 쌓입니다.
건성으로 사람을 대하는 시간이 아주 잠깐. 비율로는 아주 적지만, 그게 쌓입니다.
그 적은 비율이 제 삶과 마음과 진료 태도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가족을 대하는 태도까지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환이 필요합니다. 저 사람이 안 좋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환경이 안 좋다는 패러다임 대신에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목소리가 큰 분이 들어오시면 '왜 저렇게 목소리가 클까',
대답을 안 하시는 분이 오시면 '왜 대답을 안 하실까',
이런 패러다임 대신에,
목소리는 크지만 내가 케어할 수 있는 환자분일까?
대답을 안 하는 분에게 내가 가진 선입견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분이 진짜 아픈 건 정말 허리만의 문제일까?
와 같은 질문들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순간에 마음을 다하지 않는 아주 작은 태도가, 결국에는 삶 전체의 결을 바꿉니다. 비율로는 아주 적은 그 시간이, 사실은 가장 많은 것을 결정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진료실 문이 열리면, 숨을 한번 쉽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본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