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or Liber_책을 사랑하는 시간, 공간, 인간
나는 여행을 떠날 때 책 몇 권을 꼭 챙긴다. 보통은 안 본 책이 아닌 예전에 인상 깊게 본 책을 가져간다. 경험을 통해 같은 책도 언제 어디서 읽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고, 좋은 책은 읽을수록 더 깊은 맛을 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독서와 여행은 서로 닮았다. 모든 여행과 책은 시작, 중간, 끝이 있다. 그 모두가 고유한 여정이고 경험이며 이야기를 생성한다는 점도 둘의 공통점이다. 독서 자체가 여행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책과 독서를 여행에 비유한 이들이 많다.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는 ‘책이라는 배’에 올라 ‘달콤한 여행’을 했다고 썼고, 쥘리랭 그린(Julien Green)은 우리는 ‘책이라는 창문’을 통해 낯선 ‘먼 곳으로 날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권의 책은 다른 세상으로의 초대장이다. 책은 과거로의 여행, 때로는 미래로 날아갈 수 있는 수단이다. 또 책 읽기는 누군가의 삶을, 어떤 시대와 공간을, 그리고 나의 마음을 탐험하는 길이기도 하다.
여행의 묘미 가운데 하나는 한 사람의 숨결이 스민 장소에서 그의 책을 읽는 것이다. 나는 이를 ‘현장 독서’라고 부른다. 처음 현장 독서의 매력을 알게 된 건 2015년 봄, 홀로 떠난 여행에서였다. 그 여행은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스승 구본형과 책으로 인연을 맺은 법정 스님의 자취를 짚어보는 길이었기에 두 사람의 책을 한 권씩 가져갔다.
구본형은 20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45일간 전라남도 곳곳을 걸으며 유랑한 여정을 <떠남과 만남>이란 책에 담았다. 나는 스승이 남도를 여행하며 머문 곳에 도착할 때마다 <떠남과 만남>에서 그 공간에 관한 부분을 찾아 읽었다. 섬진강변에서 읽고, 강진 영랑생가와 대흥사에서도 스승을 떠올리며 읽었다. 읽을 때마다 마치 그가 곁에 있는 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때 스승과 나눈 교감이 지금도 마음에 흐르고 있다.
법정 스님이 태어난 전남 해남의 한 마을과 스님이 오랫동안 수행한 송광사 뒤편 불일암 등 그의 자취가 배어있는 장소에서 <무소유>를 펼쳐 몇 꼭지씩 읽었다. 스님이 머문 자리에서 책을 펼치니 글자가 살아 숨 쉬었다. 책과 나 사이에 아무런 벽 없이 책의 내용이 온몸으로 다가왔다. 그야말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특히 쌍계사(雙磎寺) 탑전(塔殿) 뒤편 툇마루에 앉아 봄바람에 흩날리는 매화 꽃잎을 맞으며 책을 읽은 시간은 지금도 그림 같은 풍경으로 남아 있다. 내가 이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여행 중에 일기를 썼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호흡이 남아 있는 공간에서 그의 책을 읽어보라. 황홀한 독서를 하게 될지니! 현장 독서와 함께 여행의 순간을 기록하면 여행의 의미가 깊어지고, 여행의 기억을 오래도록 생생하게 간직할 수 있다. 여행 중에 하는 독서와 기록은 결국 나 자신과의 대화다. 이 세 가지를 함께 할 때 자기 자신을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작품에 나오는 장소에 가는 것보다
더 훌륭한 독서 체험은 없습니다.
상트페테부르크에서 도스토옙스키를 읽는 거죠.
더블린에서 베케트와 조이스를 읽고요.
- 오에 겐자부로
'북앤딥라이프(Book & Deep Life)' 방문하기
'깊은 독서, 깊은 사색, 깊은 인생'
https://cafe.naver.com/bookndeep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