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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책, 술과 작가

Amor Liber_책을 사랑하는 시간, 공간, 인간

by 홍승완 심재
자랑과 철학이, 책과 술이, 의좋게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어리석은 자는 모른다.
-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책은 커피와 잘 어울린다. 그래서인지 동네마다 북카페가 하나씩은 보인다. 나도 책 읽을 때 커피를 즐겨 마신다. 주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가끔 에스프레소도 찾는다. 보통은 커피 머신을 이용하지만 핸드 드립과 드립백으로 준비하기도 한다. 원두가 떨어지면 봉지 커피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쨌든 책을 읽을 때 커피가 있어야 한다. 책과 커피는 내게 늘 짝을 이루는 세트와 같다.


그렇다면 술은 어떨까? 술과 책도 잘 어울릴까? 최근 몇 년 사이 술 마시며 책 읽는 공간, 이른바 북펍(book pub)과 책바(冊bar)가 늘어난 걸 보면 이 조합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음주 운전은 금물이지만 ‘음주 독서’는 잘만 하면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다.


커피와 술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독서와 글쓰기에 도움을 준다. 마시면 잠을 쫓고 활기를 돋구는 커피는 각성제다. 그에 비해 술은 심신을 이완하고 긴장을 풀어주는 진정제에 가깝다. 흔히 술을 흥분제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술을 마시면 술의 이완 효과 덕분에 전보다 들뜨거나 오버하는 모습 때문이다. 술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마시면 행동이 점점 굼떠지고 결국 잠이 든다.


어찌 보면 커피와 술은 상호보완적이다. 그래서일텐데 술과 커피를 조합한 음료도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게 아이리시 커피(Irish Coffee)로 아일랜드 위스키에 커피를 섞고 휘핑크림을 얹어 만든다. 이밖에도 네팔에는 커피에 이 나라의 전통주인 락시(Raksi)와 설탕 그리고 히말라야 고원지대에 사는 야크(Yak)의 젖으로 만든 버터를 넣어 만든 무스탕 커피(Mustang Coffee)가 있고, 베네수엘라에는 커피에 사탕수수즙으로 주조한 미체(Miche)를 탄 깔렌따디또(Calentadito)라는 ‘커피술’이 있다. 아이리시 커피와 무스탕 커피와 깔렌따디또 모두 따뜻하게 마시는데, 추운 날씨에 몸을 녹이고 피로를 풀어준다.


image.png?type=w1600 대표적인 리큐어 커피(Liqueur coffee) 아이리시 커피 /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술과 독서의 만남이 괜찮다면 글쓰기와 술의 조합은 어떨까? 적어도 일부 작가는 ‘음주 집필’을 선호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는 1991년 뉴욕 타임스에 밤에 잠들기 위해 레드 와인을 마시고, 아침엔 커피를 마시고 나서 코냑을 마시며, 그다음에 글을 쓴다고 하면서 지금도 많은 독자가 찾는 소설 <연인>을 술에 취해서 썼다고 밝혔다. 시인 마야 안젤루(Maya Angelou)는 한 인터뷰에서 글을 쓰는 데 필수적인 물건으로 사전, 성경, 셰리 와인을 꼽았으며, 노벨 문학상과 퓰리처상을 받은 유진 오닐(Eugene O'Neill)은 위스키를 물처럼 마신 걸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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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야 안젤루, 유진 오닐 /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술 마시며 글을 쓴 작가의 목록은 아주 길다. 유명 작가들만 선별해도 그렇다. 왜 글쓰기에 술이 도움이 되는 걸까? 여러 작가의 의견을 모아보면 술은 창작의 압박을 덜어 주고, 때로는 창작에 불을 당기는 뮤즈 역할을 한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를 때 천둥처럼 아이디어를 던지고,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할 때 번개 치듯 돌파구를 열어준다.


술을 좋아하는 작가들 사이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술에 취해 글을 쓰고, 술에서 깼을 때 고친다”는 말의 원조는 미국의 작가 피터 드 브리스(Peter De Vries)다. 그는 1964년에 발표한 자신의 소설에서 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때로 나는 술에 취해 글을 쓰고 술에서 깨어나 수정한다. 때로는 맨정신일 때 글을 쓰고 술에 취해 수정한다. 하지만 창작을 하려면 두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드 브리스의 얘기는 그렉 클라크(Greg Clarke)와 몬티 보챔프(Monte Beauchamp)가 쓴 <알코올과 작가들>에 나온다.


작가와 술의 궁합은 어떨까?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찾는 술이 있을까? 싱겁게 들리겠지만 작가마다 다르다. 작가마다 선호하는 술이 따로 있었다.


시인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는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 와인 한 병과 담배,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라디오를 최적의 글쓰기 환경으로 꼽았다. 그에 따르면 좋은 와인은 창작을 위한 최고의 동반자다. 와인을 곁에 두면 ‘서너 시간은 글을 쓸 수’ 있으니까. 마야 안젤루는 와인 중에서도 셰리 와인을 좋아했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문명은 증류와 함께 시작한다”라는 말을 남긴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는 위스키, 그중에서도 버번과 잭 다니엘을 선호했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젊어선 버번을 좋아했고 마흔 살 넘어서는 스카치위스키를 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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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좌측)와 마크 트웨인(우측) /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한 명 더 소개하면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오래 살았던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는 스위스의 샤슬라 포도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을 좋아했다. 그는 스위스에 사는 동안 대표작 <율리시스> 대부분을 집필하고 <피네건의 경야>를 완성한 걸로 알려져 있다. 조이스는 스위스에서도 아일랜드 출신답게 기네스 맥주를 ‘아일랜드의 와인’이라 부르며 자주 마셨다. <율리시스>와 <피네건의 경야>에는 기네스에 관한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image.png?type=w1600 기네스를 마시는 제임스 조이스 /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물론 술이 작가에게 늘 좋은 친구였던 건 아니다. 과도한 음주로 심신이 망가지거나 양질의 작품을 꾸준히 내지 못한 작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아버지 다이달로스(Daedalus)가 밀랍으로 만들어 준 날개만 믿고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태양열에 밀랍이 녹아 추락한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Icarus)처럼 술을 날개 삼아 한껏 도약했다가 추락했다. 너무 높이 날지 말라는 아버지의 조언을 한 귀로 흘려들은 아들처럼 높이 오를수록 추락의 결과는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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