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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주책(酒冊)’

Amor Liber_책을 사랑하는 시간, 공간, 인간

by 홍승완 심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책은 작가가 좋아하는 술을 마시며 그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이다. 저자가 즐겨 마신 똑같은 술이면 이상적이지만, 구하기 어렵다면 같은 주종 정도면 충분하다. 마야 안젤루의 시를 읽을 때는 셰리 와인을 앞에 두고, 제임스 조이스의 책을 읽으며 기네스 맥주를 곁들이고, 마크 트웨인의 책을 볼 때는 버번이나 스카치위스키를 선택한다. 트루먼 카포티(Truman Capote)의 책을 펼칠 때는 그가 즐겨 마신 칵테일 스크루드라이버를 앞에 두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의 <보물섬>에는 럼을 준비하며, 멕시코를 대표하는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Carlos Fuentes)의 책, 가령 <아우라>를 읽을 때는 메스칼이나 데킬라가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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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트루먼 카포티,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카를로스 푸엔테스 / 사진 출처 : Wikimedia Commons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주량이 약했음에도 술이 창작 과정에 활력을 준다면서 “술을 마시면 감정이 무르익는다. 나는 술을 마시고 고조된 감정을 이야기에 넣는다. 맨정신일 때 내가 쓴 이야기는 멍청하기 짝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진(Jin)과, 진을 기주로 한 칵테일인 진 리키(Jin Rickey)를 아주 좋아했다. 진 리키는 그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에도 등장한다. 피츠제럴드와 교류하기도 했던 T. S. 엘리엇(T. S. Eliot)도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영감의 원천 중 하나로 진을 꼽았으며, 진을 기주로 한 또 다른 칵테일인 드라이한 마티니를 즐겨 마셨다. 나라면 보드카가 아닌 진으로 만든 마티니를 마시며 엘리엇의 시를 음미하고,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을 때는 진이나 진 리키를 손에 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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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리키와 마티니 / 사진 출처 : Wikimedia Commons


영어 ‘spirit’가 증류주 외에 정신, 영혼, 진정한 의미, 참뜻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했던 거 기억하는가? 어떤 책의 저자가 자주 애용한 술을 곁에 두고 책을 읽으며 저자의 ‘영혼’에 접촉해보라. 그 술을 마시며 책을 읽다 보면 그 책이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포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좋은 술과 좋은 책이 만나면 ‘정신’이 깨어나고 부지불식간에 ‘참뜻’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좋아하는 인물이나 작가가 있다면 혹시 그가 술을 좋아했는지, 어떤 술을 즐겼는지 알아보자. 그리고 그가 쓴 책이나 그에 관한 책을 읽으며 그 술을 마셔보자. 아주 가끔이어도 괜찮으니 한번 해보라. 독특하고도 잊지 못할 독서 체험이 될 것이다.


나는 구본형 사부가 그리울 때면 스승이 즐겨 마셨던 묵직하고 드라이한 칠레 와인을 마시며 그의 책을 읽는다. 또 가끔은 아이리쉬 위스키를 홀짝이며 조셉 캠벨의 책을 읽을 때도 있다. 언젠가 조셉 캠벨에 관한 책을 읽다가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캠벨이 아이리쉬 위스키를 즐겨 마셨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떤 인물이 가까이했던 술을 마시며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왠지 그와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술기운 탓이겠지만 뭐 어떤가. 책의 저자와 더 깊이 교감하는 게 책을 읽는 중요한 이유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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