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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금 Oct 24. 2024

엄마는 장래희망 있으면 안 돼?

애가 둘이지만 나를 찾아, 꿈을 찾아가보렵니다.

남편이 출산기념 선물로 명품백을 사준다기에 따라 나섰다. 사실 난 명품과는 거리가 먼 여자다. 무채색 상의, 펑퍼짐한 청바지 그리고 에코백. 좋게 말해서 스티브잡스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같은 전형적인 어린이집 등하원 패션이 내 스타일이다. 하지만 남편은 내 어깨에 에코백 말고 매끈하고 반짝이는 무언가를 걸쳐주고 싶었나보다. 



코로나로 인해 명품에 대한 사람들의 소비욕구가 극에 달했던 시기. 오픈런은 필수였다. 개점시간 전부터 백화점 출입문 앞에서 서성이다 줄을 섰다. 딱히 사고 싶은게 없었는데 괜히 심장이 벌렁거리고 초조해졌다. 이윽고 웅장한 음악과 함께 문이 열렸다. 줄 서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남편과 난 어리둥절 해서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렸다. 순간적으로 ‘지금 뛰어야 하는거야? ’라는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고, 우리는 말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웃긴게 뭔줄 아는가. 사실 샤넬로 갈건지 에르메스로 갈건지 정하지도 않고 무작정 사람들을 따라 달린 것이다. 그날 우린 푸드코트에서 밥만 먹고 왔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삶은 그저 생존에 불과하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그저 생존해 있었지 살아 있지 않았다. 부모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인 줄 착각하고 모범생으로 자랐다. 연봉액수가 높으면 자존감도 높아질거라 착각하고 은행원이 되었다. 큰 회사에 다니면 나도 큰 사람이 되는 것인 줄 착각했다. 나의 생각보다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 훨씬 신뢰할만 하다고 착각했다. 착각의 늪에 빠져서 내가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정신 차려보니 살림은 물론 모유수유도 제대로 못하는, 잘하는 걸 아무리 찾으려해도 찾기 어려운, 심지어 취미조차 없는 아기엄마가 보였다. 거울 앞에서 다시 보자. 둥그런 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낯빛은 누렇고 눈은 퀭하네. 푸바오는 귀엽기라도 하지. 판다 같은 몸을 이끌고 언제든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 있도록 다 늘어난 수유복을 입고 유령처럼 하루종일 집안일을 하면서 아기를 돌보았다. 그런 내 모습이 짠해 보였던지 엄마는 아기를 봐줄테니 어서 복직하라고 하셨다. 



눈을 감았다. 은행으로 다시 출근하는 내 모습을 머릿 속으로 그려보았다. 아침에 눈 뜨면 회사에 출근해서 좋아하지도 않는 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내 모습이 보인다. 아이 소풍가는 날 도시락은 제대로 쌀 수 있을까. 아이 생일은 까먹지 않고 잘 챙길 수 있을까. 무엇보다 사랑하는 내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온전하게 볼 수 없어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 테지. 돈 더 벌어서 내집 마련 몇 년 일찍 하면 아이들이 알아줄까.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며 인생을 허비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다.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야. 



  

헷갈렸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이었는지, 사랑하던 색깔은 또 무엇이었었는지. 3살배기 유치원생도 묻자마자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에, 30대 애엄마인 나는 답을 하기 어려웠다. 답을 떠올리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나는 나를 알고 싶어졌다.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고 또 싫어하는지, 뭘 하고 싶고, 또 하기 싫은지 말이다. 애꿎은 아가의 손을 잡고 중얼거렸다. 



“아가야, 엄마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어떡하면 좋을까.”



영문 모르는 아가는 엄마가 눈을 맞추며 중얼거리자 옹알이를 시작한다. 혹시 이거, 뭐라도 좀 시작해보라는 뜻은 아닐까. 아가에게라도 등을 떠밀리고 싶었을만큼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 



나무를 심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20년 전이었고,
두 번째로 좋은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 중국 속담


  

남편에게 복직하지 않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워낙 평소에 제발 좋아하는걸 하면서 사람답게 살라는 말을 자주했던 남편이었기에, 흔쾌이 오케이했다. 결혼하난 참 잘했다. 남편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좋은 곳을 왜 그만두냐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정말 내 마음이 이끄는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아이들도 내 손으로 직접 키우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하려고 태어난 사람인지 알고싶고 또 성장하고 싶었다. 내 아이들에게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10년간 근무했던 은행을 퇴직했다.   





모든 새로운 시작은 다른 시작의 끝에서 온다.
- 세네카




‘애 엄마가 무슨 장래희망 타령이냐, 주책이다.’ 라고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다르다. 장래 희망이 있다는 건 삶의 목표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모양과 크기의 그릇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충분히 인식하고, 그에 맞는 나의 소명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인간의 삶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질문아닐까. 그렇기에 애엄마이든 할머니든 나이에 상관없이 일생동안 반드시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한다. 그리고 그 답을 위해 부단하게 성장해야 한다. 





애엄마가 주책떠는게 아니다. 단지 나는 그 작업을 애 엄마가 되고 나서 시작한 것일 뿐이다. 늦지 않았다. 오히려 애 엄마라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어 더 좋다. 이보다 좋은 자녀교육이 어디있겠는가. 오늘도 난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여준다. 질풍노도의 애 엄마가 나와 친해지며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장래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앞으로 계속 전하겠다. 



이제 백화점에 가면 당당하고 여유있게 푸드코트로 직진한다. 명품백보다 에코백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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