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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조종하는 사람들

by 사이먼 케이

하야디 하얀 방에서 한 소녀가 눈을 뜬다. 자신의 팔과 다리를 확인한다. 이내 두려운 듯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 벽을 마주한다. 뚫어지게 쳐다보던 소녀는 갑자기 입을 열며 말한다.


“하나, 하나, 하나, 하나.”


소녀는 ‘하나’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읊는다.




“이건 네 생각일 뿐인 거잖아. 경찰에서도 자살로 마무리하려고 한다며?”


정순은 속상한 듯 성진에게 말한다. 성진은 자신의 파일과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종이를 쪼그리고 앉은 상태에서 들여다볼 뿐 별 대꾸를 안 한다. 두 사람은 거실이다. 상쾌해야 할 거실은 성진이 깔아놓은 물건들로 번잡하다.


“정말 이럴 거야? 우리 결혼식도 얼마 안 남았는데?”


정순은 대꾸 없는 성진을 밀친다. 성진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는다. 성진의 손에는 피를 토한 채 팔과 다리가 부러진 한 소녀가 바닥에 있는 사진이 들려있다.


“그냥 비관 자살을 한 아이야. 대학도 떨어지고 남자친구한테도 버림받았다잖아. 부모도 없고 그러니까 떨어져 죽은 거야. 아니, 경찰에서 그렇다는데 왜 자기가 굳이 나서서 아니라고 하는 거야.”


여전히 성진은 대꾸 없이 일어나 이번에는 벽에 붙어있는 한 사진을 쳐다본다. 수많은 사진이 붙어있어 빈 벽이 안 보일 정도이다.


“내가 아는 사람은 비싸고 좋은 그림으로 벽을 도배하는데 자기는 이게 뭐냔 말이야. 자기가 이러니까 일감도 점점 더 떨어지는 거 아니야.”


정순은 주저앉은 채 성진을 쳐다보며 말한다. 성진은 그제야 정순을 쳐다본다.


“내 일감이 줄어드는 건 나를 질투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아서야. 이건 분명 살인 사건이라도. 이것 봐.”


성진은 정순에게 설명해 주려는 듯 사진 몇 장을 건넨다. 정순은 그런 성진의 사진을 쳐다보다 뿌리친다.


“됐어. 자기는 너무 이기적이야. 나 혼자서 결혼 준비 다 하고 있잖아. 우리가 모아 놓은 돈도 이제 떨어지고 있단 말이야. 늘 함께하기로 했잖아. 내가 돈 버니까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야. 준비는 같이 하고 싶은데 저 하나라는 여자애의 죽음 이후에 자기는 완전히 미쳐버렸잖아.”


정순은 멀쩡할 때 찍힌 하나라는 소녀의 사진을 쳐다보며 말한다. 20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앳된 모습의 하나는 순수한 얼굴의 귀신같이 하얗고 뽀얀 피부를 가지고 있다. 누가 봐도 이뻐 보인다. 30대 중반의 정순 모습과 많이 대조되어 보인다. 정순은 풍만한 몸매를 앞세워 약간은 거세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야. 난 미치지 않았어. 내가 지금 이러는 건 억울하게 죽은 저 여자아이가 불쌍해서야. 그리고 내 명예를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고.”

“난 안 불쌍해? 산 사람은 살아야지. 왜 자꾸 죽은 사람을 붙잡고 그러는 거야? 저 여자애가 그렇게 좋냐고. 죽은 저 여자애가? 아니면 혹시 자기 저 여자애 살아있을 때 만난 거야?”


정순의 말에 성진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게 아니라면 왜 이렇게 집착하냔 말이야. 우리 결혼식이 먼저여야 하는 게 상식이고 정상적인 생각이 아니냐고.”


정순의 말에 성진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다. 정순은 속상한 듯 자신의 명품 가방을 집어 들고는 집에서 나가버린다. 성진은 그런 정순을 멀뚱히 쳐다볼 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한참 후 위스키를 들고 와 한 입 마시면서 다시 사건의 파일을 쳐다본다.


“아니야. 하나 너는 자살이 아니야. 분명히 그날 뭘 봤던 거야. 난 그걸 알아야 해. 그것만 알면 다시 복귀할 수 있어.”


성진은 미친 사람처럼 위스키를 마시며 마치 사진 속의 하나에게 말하듯 혼자 중얼거린다.




다른 색은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듯한 흰 방에 앉은 하나가 앉아서 허공에 대고 떠들고 있다.


“하나, 하나, 하나, 하나, 하나, 하나...”


하나는 마치 무엇을 보고 누구에게 이야기를 듣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기울이고 이며 계속해서 ‘하나’를 말하고 있다. 이전보다 더 확신에 찬 듯하다.




‘따르르릉’


구식 벨 소리가 거슬릴 정도로 성진의 전화기에서 길게 울린다. 잠이 들었던 성진은 잠결에 전화를 받는다.


“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를 듣던 성진은 벌떡 일어난다.


“뭐라고! 그 사람이 죽었단 말이야!”


성진은 허둥지둥 재킷을 챙기고 나간다. 손에는 멋진 양복을 입으며 전화를 하는 남자의 사진이 들려있다.


현장에는 추락사로 죽은 한 남자의 시신이 경찰들이 만든 마스킹 테이프로 둘러서 쌓여있다. 주위에는 시민들이 웅성거리며 쳐다보려고 하고 경찰들은 현장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성진이 도착하자 현장에 있던 한 형사가 불편한 기색으로 쳐다본다.


“야, 문 형사. 자네는 현장에 오면 안 돼.”

“내 말이 맞는 것 같지 않아? 이 남자가 죽었다면 더더욱이 말이야.”


성진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사진을 보여준다. 멋진 양복을 입은 남자와 사진 밖에 죽은 남자의 모습이 일치한다. 다만 사진 밖의 죽은 남자의 모습은 사진 속과 대비될 정도로 처참할 뿐이다.


“이건 하나 사건과는 연관이 없어. 이 남자는 단순 추락사야.”

“또 그렇게 모든 것을 단순 사고로 위장할 거야? 진짜를 찾을 생각이 없는 거야? 더 사람들이 죽을 거란 말이야.”

“자네 결혼식도 얼마 안 남았다며. 정순 씨를 그렇게 놔둘 거야? 어제도 내 와이프한테 전화해서 하소연했다잖아. 정순 씨 같은 여자 없어. 제발 정신 차리고 내가 때가 되면 연락할 테니까 그때 돌아오게 해 줄게. 지금은 결혼식에만 신경 써.”


형사의 말에 성진은 대꾸 없이 시신을 쳐다보며 주위를 살펴본다. 그리고 떨어졌다는 옥상으로 올라간다.


“야, 이봐! 성진! 쟤 잡아. 누가 저 새끼한테 연락한 거야?”


형사는 옆에 부하 경찰에게 성진을 잡으라고 한다. 부하 경찰은 이미 올라가 버린 성진을 잡으러 빌딩으로 들어간다.




옥상에서 떨어진 경위를 살피던 성진 뒤로 부하 경찰이 다가온다.


“문 형사님. 이렇게 멋대로 올라오시면 안 됩니다.”

“이 남자가 아무리 악랄해도 자살할 사람은 아니었어. 자네도 경찰 짬밥이 좀 되니까 느낌이 오지 않아? 정말 자살인 것 같아? 하나라는 아이도 아닌 거 알잖아.”


성진의 말에 부하 경찰은 한숨을 내쉬며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머리를 만진다.


“제 느낌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자살이면 어떻고 타살이면 어떡하냐고요?”


부하 경찰의 말에 성진이 대답한다


“우리는 형사야. 자네도 형사가 되기 위해 경찰이 된 거 아니야. 진실을 파헤쳐야지. 억울하게 사람이 죽었는데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엉성하게 일을 했냐고.”

“지금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저희는 인력도 부족하고 사건은 끊이지를 않아요. 하나 사건도 그렇지만 윗선에서 보기에 그렇게 중요한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이 사건도 마찬가지예요. 만약 선배님 말씀대로 하나가 피살된 거라면 그것 때문에 교도소에 들어가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아요.”

“무슨 말이야. 지금 이 사람 보다도 더 유명한 사람이 죽어야 중요한 사건이 된다는 말이야?”

“그렇겠죠. 세상이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유명하고 돈 많아야 대접받는 세상이에요. 죽음마저 말이에요.”


부하 경찰의 말에 성진은 숨을 크게 내쉰다.


“이 사람도 꽤 알려진 사람이잖아. 얼마나 더 유명한 사람이 죽어야 수사를 제대로 하는 거냐고."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안 그래도 지금 윗선에서 수사를 다시 하라는 명령이 떨어질 거라는 소리가 있었어요."


성진은 일어난다.


“난 내 감을 믿어. 지금 이것도 하나 사건과 관련이 있어.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거야. 하지만 결국 돈 많고 유명한 사람이 죽기 시작해야 사건을 제대로 조사할 테지.”


부하 경찰은 성진의 말에 인상을 찌푸린다.


“왜?”

“실은.”


부하 경찰은 머뭇거리다 성진에게 뭐라 말을 건넨다.


“몇 명이나 더 죽었다고? 왜 이런 건 알려주지 않았어?”


성진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부하 경찰을 쳐다본다.


“선배님이 제발 여기서 멈춰 주셨으면 해서요. 이미 죽은 사람을 어떻게 하실 건데요? 하나가 살해당했다 한들 뭐가 바뀌는데요. 선배님.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예요. 선배님을 다시 찾을 때 돌아오세요. 그때는 윗선에서도 선배님의 수사 실력이 필요할 거예요. 필요할 때 나서시라고요.”


성진은 부하 경찰의 말에 올라온 계단으로 걸어간다. 부하 경찰은 다시 모자를 쓰며 따라간다.


“그럼 살해한 용의자가 있을 거 아니야."

"이미 잡은 상태예요."

"그 사람은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도대체 하나 사건을 은폐시키기 위해 얼마나 더 사람을 죽이려는 거야. 윗선은 누구를 말하는 거야? 누가 이렇게 컨트롤하냔 말이야. 왜 이렇게까지 세상을 컨트롤하려고 하는 거냐고.”


성진은 울화가 터진다는 듯 계단을 내려가며 말을 토해낸다.




해맑은 표정의 하나 뒤로 아까 옥상에서 떨어졌던 남자의 시체가 벽에 박혀있다. 갑자기 남자의 시체가 눈을 뜬다. 그리고 벽에 박혀 움직이지 못해 답답해한다. 그리고 하나를 발견하고는 두려운 표정으로 쳐다본다. 하나는 그 남자를 보며 해맑은 미소와 함께 눈을 깜빡인다.


“이게 뭐야? 네가 여기 왜 있어? 너, 죽은 거 아니었어?”


남자가 말을 하지만 하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는다.


“야, 이 계집애가. 대답 안 해? 네 이름이 하나라고 그랬지? 여긴 어디야?”


남자를 대답 없이 쳐다보던 하나가 천천히 입을 연다.


“열넷... 열넷... 열넷... 열넷...”

“뭐가 열넷이야?”


남자는 그때 자기 옆으로 자신과 마찬가지로 시체처럼 벽에 붙어있는 다른 12명의 시체를 쳐다본다. 그들을 알아보는 듯 남자의 표정이 점점 더 두렵게 바뀐다. 하나는 흐뭇하게 벽에 박힌 시체들을 쳐다보며 ‘열넷’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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