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돼지

개돼지에게 잡아먹히다

by 사이먼 케이

"어차피 국민은 개돼지입니다."


영화에서 나온 이 유명한 대사는 실제로 사적인 자리에서 나왔던 이야기란다.


'그래.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강민은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들개 영상을 보며 생각한다. 생각보다 들개는 위협적이게 생겼다. 저렇게 생긴 들개를 자기 같은 평범한 시민한테 비유한 건가? 술자리에서 한 말이라 하니 농담 삼아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리저리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들개를 보면 유명인이나 권력자가 하는 말에 쉽게 휩쓸리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하라는 데로 따라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리기도 한다.


돼지 영상도 생각난 김에 찾아본다. 역시나 비슷하다. 무리를 지어 여기저기 주는 밥을 그저 게걸스럽게 먹기만 하는 모습이 왜 돼지를 저급으로 생각하는지 알 듯하다.


'나도 개돼지인 건가?"


다시 들개와 돼지 영상을 본다.


'난 그대로 다르지 않나?...'


행동에 비해 돼지는 생각 이상으로 지능적인 동물이라고 한다. 갑자기 자기 자신이 돼지라고 생각하니 돼지에 대해 좋은 점을 떠올리고 싶다.


'아닌가?'


뉴스에 나오는 소식이 진짜인지도 가짜인지도 모른 채 권력자들이나 연예인들의 말에 쉽게 흔들릴 때도 있지만 때로는 자기 고집대로 하기도 하기에 개돼지가 아닐 수도 있다고 강민은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지나가는 똥개가 나타난다. 너무 귀엽게 생겼다. 이쁜 여자들이 오라고 손짓을 하니 짧은 꼬리를 흔들며 엉덩이를 씰룩대며 다가온다. 이쁜 여자들이 좋아한다. 저렇게 사랑받고 귀여운 개라면 굳이 나쁘지도 않을 것 같다.




생각난 김에 삼겹살을 먹고 들어가기로 한다. 잘 익은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입속에 적시니 기분이 좋아진다. 젓가락에 쌈장을 가득 집어 상추에 묻힌 다음, 그 상추에 삼겹살 한 점을 넣는다. 그리고 그 상추를 정성 들여 말아서 입에 가득 넣고는 소주 한잔을 입속에 적셔 넣는다. 너무 맛있다. 이런 게 천국이 아닐까 싶다.


혼자 삼겹살과 소주를 만끽하는데 식당 아줌마가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튼다.


요즘 한창 시끌벅적한 뉴스들이다. 정치인들의 파벌싸움, 그들과 그들의 식구의 비리, 특히 자식들이 저지른 잘못. 뉴스에서는 이러한 일들을 열거하지만 정의는 늘 권력자의 편.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저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권력자가 된다. 강민의 세금과 투표로 뽑혔는데 어떻게 저런 식으로 까지 변질되었는지.


강민은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다시 소주를 들이마신다. 자기 일은 아니어도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정의가 사라진 듯한 뉴스들을 보고 있자니 천국이라 생각했던 방금 전의 상황이 다시 현실지옥으로 돌아오는 듯하다. 그리고 소주잔을 쳐다본다.


'이런 게 정의지.'


자기도 모르게 소주 한 병을 비운다. 원래 삼겹살 한 점에 소주 한잔 이런 식으로 먹을 생각이었는데 뉴스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소주만 마셨던 것이었다.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낮술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내일 출근을 해야 하니 오늘 같은 꿀휴일에는 마음껏 마시고 취하고 싶다. 하지만 이내 뉴스 앵커의 목소리에 기분이 다시 언짢아진다. 권력자들이나, 그들의 가족들이나 다 정상은 아닌 듯하다.


'정상이라면 저런 일 못하지.'


수많은 사건들이 있지만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사건이 바로 '박정원 사건'이다. 판사출신 국회의원의 아들이 수 차례 살인을 저질렀다는 의혹이다. 지금 티브이에서 나오는 뉴스에 의하면 결국 무죄 판결이 났다. 카메라에 살짝 비취기만 하지만 법원에 있는 시민들이 분노했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박정원 때문에 누군가의 자식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판사출신이다. 정의롭다고 소문났던 판사출신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할 만하다. 화날 일이다. 하지만 국정감사 시간에 질의자로서 늘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외치며 정의로운 척하던 박정원의 아버지는 조용하다.


'에휴.'


강민 세금으로 저런 사람들이 먹고 산다고 생각하면 화만 난다. 강민의 소중한 한 투표로 저런 사람을 찍었다 생각해도 화만 날 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오늘 살기도 빠듯한 자신에게 저런 뉴스는 남의 일이고 연예뉴스와 별다를 게 없다. 요번 달 가장 핫한 키워드가 아마 '박정원' 이였을 것이다. 조만간 저 사건의 이름도 바뀔 것이다.


박정원이 살해를 지시했든지 저질렀든지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 강민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그저 남는 시간에는 삼겹살에 소주를 먹을 뿐이다. 식당 아줌마는 한탄을 하며 박정원을 욕한다.


"분명 저 새끼가 죽인 건데 저렇게 덮어버리냐고. 지 아빠만 믿고 저렇게 사냐. 저 아빠도 그렇게 안 봤는데. 에휴!"


속이 터지는지 식당 아줌마는 탄성을 내지른다. 강민은 못 들은 척하기 위해 귀에다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사이트에 들어간다. 갑자기 삼겹살이 어떻게 자신의 입까지 오게 되는지 궁금해졌다. 삼겹살을 먹으며 돼지를 사육하는 영상을 보는 자신도 정상은 아닌 듯하다.


돼지 주인이 한밤에 들개에게 잡아먹힌 돼지를 보며 운다. 또 다른 영상을 틀어본다. 제목이 아주 자극적이었다.


'개돼지에게 잡아먹힌 사람'




안 볼 수가 없다. 돼지나 들개 무리가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이다. 돼지와 들개는 사람을 비롯해 아무거나 다 먹는 잡식성 동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동영상에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얘기해 주며 강민의 시선을 끌었다. 사람이 돼지우리에서 쓰러지면 돼지들은 가차 없이 그 사람을 먹이로 간주해 잡아먹는다고 한다. 들개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보신탕이 들개라고 했던 어떤 어른의 말이 떠오른다. 자꾸 개를 먹으라 그래서 울면서 싫다고 하자 들개가 사람을 잡아먹기에 우리 인간이 미리 선수 쳐서 먹어야 한다면서 먹게 했다. 잠깐 떠오르는 옛 기억과 함께 동영상을 보면서 강민은 남은 삼겹살과 소주를 다 먹는다. 삼겹살을 혼자 4인분, 소주 6병을 마셨다.


"젊은 양반이 잘 먹고 잘 마시네. 젊은 양반이 정치해도 저 새끼보단 잘할 거다."


약간 알딸딸한 상태에서 계산을 하는데 식당 아줌마가 강민에게 티브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박정원 아버지의 판사시절 사진이 나온다. 강민은 그저 웃어 보였다.


"다 나름 사정이 있겠죠."

"아니야. 저 새끼들은 우리 세금으로 지네들 배나 불리는 놈들이야. 다 똑같은 놈들이라고. 우리를 개돼지로 보는 거지. 맨날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잘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우리를 위해 하는 게 뭐냐고. 저렇게 지네 아들 살인사건이나 덮어버리고."


더 이상 아줌마와 이야기하면 싫어하는 정치 이야기에 빠질 것 같아 그저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혼자일 때는 모르지만 밖에서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하는 건 거부감이 든다. 강민은 지금 배도 부르고 점점 취기도 올라와 자신의 오피스텔로 바로 들어간다. 그리고 침대에 쓰러진다.


"내가 저런 쓰레기 놈들을 다 처리하는 슈퍼히어로 같은 힘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강민은 혼잣말을 하며 그대로 잠이 든다. 그리고 기이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진흙 같은 어둠 속에 사육지가 보인다. 이전에 처음 보신탕을 먹었던 장소로 인식이 된다. 갑자기 돼지 무리들이 보이고 근처에 들개 무리들도 어슬렁대고 있다. 돼지를 먹으려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티브이에서 보았던 국회의원의 아들 박정원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게 보인다. 돼지 무리들이 킁킁 대며 박정원을 핥기 시작한다.


"뭐야 이 놈들! 꺼져!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아악!"


박정원의 두 발이 들개 무리에게 물려있고 들개들은 박정원의 발을 맛있게 먹고 있다. 핥으며 뼈를 씹어먹는 소리가 이전에 봤던 먹방 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박정원이 일어나려 하지만 돼지들이 어느새 박정원의 두 손을 씹어먹고 있다. 낮에 봤던 동영상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다.


"하지 마 이놈들아! 꺼지란 말이야!"


고통스러운 듯 박정원은 소리를 치지만 돼지와 들개 무리가 씹어먹는 소리에 그대로 묻혀버린다. 어느새 들개들과 돼지들은 합심해서 박정원의 다리와 팔을 먹다가 몸통을 먹기 시작한다.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다고..."


박정원이 다시 소리 지르며 말하지만 그 소리는 오래가지 못한다.


'툭... 데구르르르.'


뭔가 떨어져 나가 구르는 소리다. 박정원의 머리다. 한 돼지가 입에 침이 가득 고인채 박정원의 머리로 걸어간다. 박정원의 머리에 붙어있는 얼굴은 겁에 질린 채 돼지를 쳐다본다. 돼지 먹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돼지가 박정원의 머리를 먹기 시작한 것이다. 들개들도 달려든다. 칠흑같이 어둡고 고요한 밤, 한 인간의 육체가 그렇게 개돼지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알람소리와 함께 강민은 눈을 뜬다. 어제 먹은 삼겹살이 좋았나 보다. 너무나 상쾌한 아침이고 이상하게도 숙취가 없다. 보통 소주 6병이면 강민은 인사불성이 된다. 그런데 지금 마치 안 마신 듯 아무렇지도 않고 도리어 상쾌하기까지 하다. 힐링이 된 듯하다. 천국과도 같았던 삼겹살 소주가 이렇게도 다음날을 기분 좋게 해주는 줄 오늘 처음 깨달았다.


출근을 하려고 지하철을 탄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핸드폰을 손에 쥐고 뉴스를 보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어제 그 식당 아줌마처럼 박정원 무죄 사건에 여전히 분노를 하나 싶었다. 무심코 쳐다본 그들의 표정은 분노가 아니었다. 당황스러움과 놀라움, 그리고 경악스러움이었다. 옆에 사람의 휴대폰을 살짝 쳐다봤다. 속보뉴스였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어제저녁, 재판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한 박정원 씨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는데요. 오늘 새벽, 한 양돈장에서 박정원 씨가 마지막으로 입었다는 옷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 양돈장이 위치한 곳은 들개들이 자주 나오는 지역으로 유명한데요. 들개 무리나 돼지 무리에게 잡아먹혔을지도 모른다는 한 시민의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아직 경찰이 조사 중에 있다고 하니 자세한 정보가 들어오면 계속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시민의 인터뷰 소리가 들린다. 순간 강민은 무언가 집히는 게 있었다. 어제 꿈이 꿈이 아니었던가? 강민은 점점 기분이 이상해진다. 마치 어제 꿈에서 보았던 들개와 돼지들의 생각이 읽히는 듯 한 느낌이다.


"어떻게... 그럼 잡아먹혔다는 거야?"

"누가 죽인 다음에 저기로 데려다 놨겠지."

"뭐 당할 놈이 당한 거지."

"유가족이 그런 거야?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어떻게 저런 식으로 죽여?"


지하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강민은 그들을 쳐다본다. 이 중에 범죄자가 있다.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생각이 들면서 강민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다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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