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와 늑대인간 그리고 인간 p1
“도대체 뭐가 문제야? 난 널 사랑하고 너도 날 사랑하잖아. 이것 봐... 나 이것도 준비했어.”
나는 다급하게 호주머니에 있던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낸다. 소라가 그 다이아몬드 반지를 쳐다본다. 알이 작다.
“알이 작아서 그래? 내가 지금 버는 것 때문에 그러는데 조금만 기다려줘. 우리 결혼하면 내가 더 벌어서 진짜 큰 다이아로 바꿔줄게.”
소라는 대답이 없다. 나는 더 다급해진다.
“도대체 왜 그래?”
소라가 여전히 대답이 없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소라의 가녀린 어깨를 꽉 붙잡는다. 그제야 소라의 눈동자가 천천히 나를 쳐다본다.
“미안해.”
소라의 말에 나는 주저앉아 버렸다. 내 표정이 나에게는 안 보이지만 분명 망연자실한 표정일 것이다. 이 와중에 누군가가 내 표정을 찍어서 나중에 소라와 함께 웃으며 봤으면 하는 소망이었다. 그만큼 지금 상황이 한바탕의 소동이었고 추억이었으면 바라고 있었다.
“우리가 다 계획한 거잖아. 앞으로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말하지만 소라는 대꾸 없이 넋 나간 표정이다.
“그 새끼가 그렇게 좋아! 그 새끼 누구야!”
내가 결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주위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소라와 사귀면서 처음 소리치는 것이었지만 소라는 여전히 대답이 없다. 언제나 주위를 신경 쓰며 남의 시선에 민감하던 소라는 지금 주위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나는 변해버린 소라를 꼭 껴안아본다.
“됐어. 원래 결혼 전에는 심란할 수가 있어. 그냥 실수라고 생각하자. 다음 주면 크리스마스야. 우리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어디 여행 가자. 우리 다시 잘하면 돼. 내가 더 잘할게. 우리는 환상적인 커플이잖아. 우리는 일심동체의 연인이잖아.”
횡설수설하는 나에게 안겨있는 소라는 반응이 없다.
“세린... 세린이도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우리 가족들도 너를 너무 이뻐해 주는데. 우리 엄마 아빠가 신혼집도 알아봐 주고 계신단 말이야.”
“오빠...”
소라가 그제야 맥없이 나를 부른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소라를 쳐다본다.
“나 그 남자 없으면 안 돼. 그 남자를 너무 사랑해... 처음에는 단순한 불장난이었어. 그런데 그 불장난이 산불처럼 번져버렸어....”
소라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나는 듣고 싶지 않은 소리에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오빠 괜찮아?”
세린이가 부르는 소리에 악몽에서 깬 듯 나는 일어났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서 벽을 쳐다보며 돌아 누웠다.
“밥 또 안 먹을 거야?”
세린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았어. 걱정되는데. 그렇게 며칠 동안 아무것도 안 먹고 안 마시면 안 돼. 엄마도 그냥 차려 놓고 나간다니까 제발 나와서 조금이라도 먹어. 오늘 크리스마스란 말이야.”
세린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며 나가려 하다가 멈칫했다.
“오빠... 시련당한 사람한테 지금 이런 말하는 게 조금 그렇긴 한데...”
세린이가 머뭇거린다. 나는 뒤돌아 누운 채 고개만 돌려 세린이를 쳐다보았다. 세린이의 볼이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그리고 수줍은 듯 자꾸 몸을 베베 꼰다.
“뭔데?”
목소리가 잠겨 소리가 잘 안 나오지만 나는 힘을 내서 물었다.
“나, 실은 만나는 남자가 있어.”
세린이의 말에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 오빠, 무리하지 마.”
“아니야. 그래서, 우리 세린이한테 남자가 생겼구나. 좋은 사람이겠지?”
동생이 대견했다.
“응, 좋은 사람이야. 나를 많이 아껴주고... 그리고...”
세린이가 머뭇거린다.
“결혼하려고?”
내가 대신 말해 주었다. 세린이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모르게 내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축하할 일이네. 왜 지금 말했어.”
“실은 우리 엄마 아빠랑 오늘 만나기로 했거든... 그런데 오빠가-”
“-아니야. 나도 당연히 만나봐야지. 내 동생이 결혼하겠다는 사람인데. 축하한다 세린아. 크리스마스에 너무나도 좋은 선물을 안겨주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세린이의 표정이 미안해 보였다. 나는 억지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세린이를 꼭 안아주었다.
“우리 세린이 이제 오빠가 이렇게 안아주는 것도 마지막이겠네."
"아니야, 오빠. 왜 섭섭하게 그런 말을 해."
"나 밥 먹을게. 안 먹었으면 같이 먹자. 나 머리도 하고 그래야겠다. 몇 시에 만나기로 했어?”
“해가 지는 시간에. 8시쯤?”
“조금 늦은 시간인 거 같은데?”
“아, 그 사람 일 끝나고 만나기로 해서.”
“그렇구나. 그래. 시간이 많이 남아서 다행이네. 알았어. 장소도 문자로 보내줘.”
“오빠 정말 괜찮겠어?”
“그럼. 내가 가장 아끼는 동생이 결혼한다는데 시시껄렁하게 차인 걸로 방해받으면 안 되지.”
나는 세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세린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지만 이내 좋은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해가 진 8시. 고급 레스토랑이다. 약간 어두침침한 게 좀 그렇지만 음식이 맛있어 보인다. 분위기도 로맨틱해 보인다. 남녀 둘이 있으면 너무 좋을 레스토랑이지만 상견례 자리로는 조금 과해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순간 소라 생각에 욱했지만 꾹 참았다. 소라도 이 레스토랑에 오면 엄청 좋아했을 것이다. 명품도 좋아하고 고급 레스토랑도 좋아하고 고급 와인도 좋아한다.
"오늘은 다 잊어야지."
나는 스스로를 다짐하며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하지만 내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세린이의 예비 신랑을 보고는 넋을 잃고 말았다. 세린이 옆에 앉은 저 창백한 피부의 잘생긴 청년에게 매료되어 버렸다. 남자가 어떻게 저렇게 잘생길 수가 있을까? 자신이 저렇게 생겼으면 소라가 떠나지 않았을까? 아니다. 지금 소라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잘 생긴 청년의 눈빛은 마치 나의 생각을 꿰뚫는 듯한 불그스름한 눈종자로 쳐다보고 있었다.
“엔겔이라고 합니다.”
영어 이름을 가지고 있나 보다. 발음도 좋고 목소리도 좋았다. 내가 저런 식으로 영어 이름을 말했으면 재수 없었을 텐데 엔겔의 목소리와 표정이 함께 더해지니 더없이 매력 있고 끌린다. 세린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지만 인석이는 불안하다. 저렇게 잘생기고 매력적인 청년에게는 수많은 여자가 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돈도 많은 것 같은데.
“실례지만 무슨 일을 하시는지...?”
내가 용기 내어 물어본다. 나는 극심한 내향인이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향인의 성향을 띠지만 실제로 일이 끝나면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 덕에 먹는 약도 많았고 병원도 자주 다녔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소라를 만나고 나서 그 성향이 많이 고쳐졌었다. 소라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하기도 싫었다. 엔겔은 그 잘생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의 소심한 질문에 대답한다.
“가족이 요식업에 종사합니다. 저는 재료와 소스를 담당합니다.”
너무나도 당당한 풍채이다. 부모도 잘 만난 데다 능력도 좋은 듯했다. 게다가 예의도 바르다. 시종일관 나에 대한 예의를 차려주는 엔겔에게 나는 빠져버렸다. 회사에서는 내가 늘 을이기에 언제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 거래처를 가도 나는 을이고, 내가 갑이어야 하는 상황에 조처도 나는 을이었다. 소라는 내가 너무 착해서 그런 거라며 내가 조금은 모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 소라가 정말 나를 떠난 걸까? 다른 놈하고 눈이 맞다니...
“이 레스토랑도 이 사람 부모님 거래.”
내가 잡생각에 잠긴 걸 아는 듯 세진이가 보탰다.
“곧 우리 엔겔이 다 운영할 겁니다.”
음식을 들고 들어오며 또 다른 멋진 부부가 들어온다. 엔겔의 부모님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특별한 요리를 대접해 드리려고 준비하느라 너무 늦게 가져왔네요.”
“아닙니다. 지금 요리도 너무 맛있어서 뭐부터 먹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엔겔의 부모님과 나의 부모님은 서로 잘 맞는 듯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엔겔은 인석이가 불편하지 않게 계속해서 배려를 해주는 게 느껴졌다. 소라와의 일로 너덜너덜해졌던 엔겔의 마음이 다시 좋아졌다. 하지만 어디선가 계속해서 떠오르는 이 불안한 이 마음이 뭐인지 모르겠다. 자기는 헤어졌는데 저렇게 행복해하는 여동생의 표정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지 잘 모르겠다. 나는 좋은 오빠다. 늘 여동생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가족에게도 잘하는 착한 아들이며 오빠다. 나는 세린이가 저렇게 멋진 남자와 결혼한다는 게 믿기지는 않지만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나는 착한 오빠다.
"하지만 착한 남자에게는 나쁜 여자가 붙게 되어있죠"
"응?"
엔겔이 나에게 말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엔겔은 분명 세진이와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말을 했나 싶어 둘러보았다. 부모님들은 서로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가 나에게 말을 건 거지?
"그래서 소라라는 여자가 그렇게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며 떠난 것입니다, 형님."
'형님?'
순식간이지만 엔겔의 불그스름한 동공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흠칫 놀랐다. 복화술을 하는 건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건너뛴 느낌이었다. 어느새 나는 엔겔에게 소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입이 무거운 편이다. 내 이야기를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 혹시 지금 엔겔이 건네준 고급술 때문인지 아니면 엔겔이 워낙 말을 잘 들어줘서인지 모르겠다. 왜 이 청년에게, 그것도 내 여동생의 미래 남편에게 이렇게 주절주절 떠들어 댈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들은 어느새 작지만 아늑한 방으로 자리를 옮겼고 방에 있는 주크박스에서 세린이는 노래를 고르고 있었다. 엔겔은 나에게 술을 따라주며 함께 마시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