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와 늑대인간 그리고 인간 p1
“형님. 결혼이라는 건 잘 맞는 사람끼리 해야 하는 듯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세린 씨가 이쁘기도 하고 착하기도 해서 그렇지만 무엇보다 잘 맞아서 결혼을 결심했어요. 제가 들은 형님의 그 여자분은 형님하고는 잘 안 맞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형님은 너무 좋으신 분 같아요.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형님의 그 선한 성품을 고마워하는 여자를 만났으면 해요. 제 주위에 형님하고 결혼하면 잘 맞을 것 같은 여자가 있을 것 같으니 열심히 찾아보겠습니다.”
도를 넘어설 수도 있는 말이지만 엔겔이 말해주니 기분이 좋다.
"아니, 난 인기가 많이 없는 편이라. 자네처럼은 생겨야 여자들이 나를 좋아하지."
"아닙니다 형님. 어차피 좋은 여자 한 명만 잘 만나시면 되는 건데요."
"그런가?"
난 술에 취한 듯했다. 고급 술병이 세 병 정도 비워져 있었다. 반면에 엔겔은 멀쩡해 보였다.
“아, 그리고 형님.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엔겔의 말에 순간 세린이 돌아본다.
“말하려고?”
세린이의 말에 엔겔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순간 섭섭했다. 세린이는 나에게 모든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다 하는 아이였다. 내가 소라와 사귀고 나서 같이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그랬는지 지금 순간 나에게 비밀을 간직하는 듯했다.
"아닙니다 형님. 제가 세린 씨한테 부탁했어요. 제가 형님을 만나면 직접 말할 수 있게 해 달라고요."
"응? 뭘?"
내가 혼자 생각한 걸 들은 건가? 엔겔은 인석이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저희는 뱀파이어 가족입니다. 제가 형님이라 부르긴 하지만 제 나이는 올해 700살을 조금 넘었어요.”
엔겔의 진지한 말에 나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웃었다.
“그래. 그렇게 보여. 자네는 너무 잘생겼다니까.”
나의 농담에 엔겔은 잠시 고개를 떨구고 피식 웃는다. 옆에서 세린이가 와서 엔겔의 팔을 꼭 잡는다.
“아니야 오빠. 진짜 엔겔하고 가족들은 다 뱀파이어야. 흡혈귀 몰라?”
세린이의 말에 나는 무슨 말이냐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무슨 말...”
“형님, 차라리 지금 표정이 낫네요. 이전에 소라라는 여자 앞에서 보여주신 망연자실한 표정 보다요."
"뭐?"
나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엔겔은 술잔을 마저 비우고는 말을 이어갔다.
"형님.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형님의 그 소라라는 전 여자친구가 지금 사랑에 빠진 상대는 저희 가문의 오랜 적인 라잌이라는 라이칸 가문의 후계자예요.”
“라잌... 뭐? 라이칸?”
“네. 웨어울프, 즉 늑대인간 중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크리쳐중에 가장 똑똑한 종이라고도 하고 힘이 가장 세다고도 하는 무리예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게 무슨 황당한 말인가? 나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지금 저희는 라이칸과 전쟁 중에 있습니다. 라이칸은 자기들 무리뿐만 아니라 다른 크리쳐들과도 동맹을 맺었습니다. 다른 가문의 저희 종족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들 모두가 저희를 공격하면 저희 가문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겁니다. 오늘 형님과 이렇게 만난 건 우연이 아니고요.”
“그럼 우리 세린이는?”
“아, 세린 씨는 제가 지킬 겁니다. 중요한 건 형님입니다.”
“내가 왜?”
“형님이 라이칸의 표적이 되셨거든요.”
“난 차였는데? 왜?”
“제가 들은 정보에 의하면 형님이 라이칸을 다 죽일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난 싸움도 못하고 힘도 없어. 그렇다고 뒤를 봐주는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야.”
“네. 그래서 저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우선 제가 받은 정보에 의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게다가 저희 가문 역시 형님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나를... 왜?”
“저희는 꽤 오래 살아왔습니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아까도 느끼셨겠지만 원하면 저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어요. 저는 세린 씨와 교제하면서 세린 씨에게서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못한 많은 점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 점들이 형님에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대화를 나눠보고는 더 확신했습니다. 아마도 라이칸 가문도 형님에게서 그런 점을 발견했겠지요.”
나는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크리스마스에, 원래는 여자친구와 보내려다 차였던 나였다. 그저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며 착실히 돈을 모아 사랑하는 여자와 사는 꿈을 꾸었을 뿐이고 지금은 사랑하는 여동생을 위해 상견례를 왔을 뿐이다. 하지만 갑자기 뱀파이어와 라이카의 전쟁이라니...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엔겔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시면 형님의 전 여자친구 소라 씨도, 형님도 다 다치실 겁니다. 저희는 말할 것도 없고요. 형님의 선택에 따라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저야 형님 마음을 아프게 한 소라 씨가 어떻게 되는 건 상관없지만 여기 세진 씨나 형님네 가족, 특히 형님같이 착한 분이 상처받는 모습을 보는 게 마음 아픕니다. 그러니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다들 강할 거 아니야. 물리적으로든 뭐든. 나 같은 사람이 뭘 어떻게 하라고?”
“회사를 다니시면서 평범하게 사신다 그러셨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형님은 늘 약자의 편에서 형님도 모르게 강해지는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형님은 분명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뭘 할 수 있는데 내가?"
"회사를 그만두시고 저희와 함께 생활하시면 됩니다. 그렇다고 뱀파이어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저희는 억지로 강요하는 가문이 아닙니다. 인간을 지키려고 하는 가문입니다. 저희와 생활하시면서 앞으로 계획을 함께 세우자는 겁니다."
회사를 그만두라고? 실컷 돈을 모아서 집 장만에 보태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당장 회사를 그만두면 뭐 먹고살라고?
"사례비는 충분히 드릴 겁니다."
엔겔이 마음을 읽은 듯 미소와 함께 말했다.
"오빠! 엔겔 집 재벌이야. 숨은 재벌.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세진이가 말했다.
"그래도..."
나는 회사생활의 고충이 많았다. 차곡차곡 돈이 쌓이긴 했지만 회사 사장의 아들이 갑질하면서 억지로 나간 술자리에서 내가 그동안 회사생활하면 쌓인 돈이 얼마냐 무시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모은 돈의 두 배나 되는 돈을 그날 술값과 여자들과 노는데 탕진했다. 나는 그때 너무나 무기력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엔겔의 눈을 쳐다보는 나에게서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한 걸 느꼈다. 나약한 내가 나보다 훨씬 더 강함과 싸워 이겨야 한다. 너무나 큰 벽이라 느껴지지만 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다만 염려스러운 건 자신이 인간임을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점이다.
-p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