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성유전학으로 보는 자기 돌봄
우리는 종종 유전자를 ‘바꿀 수 없는 운명’처럼 여긴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설계도처럼, 시간이나 경험으로는 수정할 수 없는 절대적 지침이라고 믿고는 한다.
하지만 후성유전학(Epigenetics)은 그 믿음을 조용히 뒤흔든다. 유전자의 염기서열은 변하지 않지만, 그 유전자가 '언제', '얼마나',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유연하게 바뀐다는 것이다.
그 말은 곧, 우리의 하루가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고 끌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오늘 눈을 뜨고 마시는 첫 커피 한 잔, 길을 걷다 마주한 봄 햇살, 누군가의 다정한 말 한마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분노나 울컥함, 이러한 사소한 순간들이 우리 세포 속 유전자에 조용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신호는 회복과 성장의 방향으로, 또 어떤 신호는 억제와 소진의 방향으로 유전자의 변화를 이끈다.
최근 연구들은, 명상이나 심호흡 같은 감정 조절 활동이 실제로 염증 유전자의 발현을 줄이고 회복 유전자의 발현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보살피는 행동이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닌, 세포의 회복을 위한 생물학적 개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 돌봄'은 단순한 사치나 여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내 몸이 그리고 내 세포가, 나에게 요청하는 정당한 권리이자, 어쩌면 다음 날을 견디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결국, 하루 중 10분이라도 나의 감정을 솔직히 마주하고, 나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는 시간들이, 바로 후성유전학이 제안하는 치유의 방식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행동심리학도 너무나도 매력적인 분야라고 생각한다!)
정리하면, 우리는 매일 스스로를 직접 설계할 수 있다.
미래는 유전자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것도 아니다.
오늘 어떻게 숨을 쉬고, 또 어떻게 살아내는지가 곧 나의 유전자를 다시 쓰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 자신을 위한 쉼표 하나를 진심으로 놓아보기를 바란다.
참고로, <BBC 사이언스>에서 소개 한 '스트레스 줄이는 방법'을 제안하였으니, 참고해 보면 좋을 듯하다.
3-2-1 전략은, 들리는 소리 세 가지, 감각으로 느껴지는 두 가지, 그리고 냄새를 맡거나 맛볼 수 있는 것 한 가지를 떠올려 보는 것으로, 당장의 주변 환경에 초점을 맞추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다.
운동도 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키기 때문에 스트레스원의 하나이다. 만약, 만성 스트레스나 코티솔 문제가 있다면, 운동 루틴에서 장기간의 유산소 운동은 빼거나 한두 단계 전쯤에서 멈추는 것이 좋다.
연구 결과, 녹색의 자연 공간에서 산책하는 것은 정신건강 개선과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이 된다. 실제로, 녹색의 자연에 초점을 맞춘 대상자들은, 회색 도시 요소들에 초점을 맞춘 대상자들에 비해 기분이 크게 나아지고, 불안감이 크게 줄어드는 효과를 확인하였다.
매일 스트레스를 줄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짧은 명상'이다. 1초 정도 멈춰 스스로의 호흡이나 발이 닿는 땅의 느낌에 집중하는 간단한 명상은, 몸의 부교감 신경계를 활성화하여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매일 작은 목표를 조금씩 달성하는 것은, 삶의 초점을 다시 맞추는 데 도움이 되고, 반대로 스트레스 요인에는 덜 신경을 쓰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매일 아침 5~10분 정도 아침 햇살을 받는 습관을 들이거나, 관심이 가는 책 한두 장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등의 활동은, 기분을 안정시킬 뿐만 아니라, 생체 시계를 강화해 수면의 질도 높아질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불면증을 포함한 각종 수면 부족 문제는 스트레스 호르몬으로도 불리는 코르티솔의 과다 분비를 야기한다(Giselle Soares Passos, 2023)그렇기에, 명상 등을 통해 하루를 일찍 정리하고 빨리 잠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다. 만약, 평상시 불면증이 있어 일찍 잠에 들지 못한다면, 오후 2시 이후부터는 카페인 섭취를 가급적 피하고, 침실을 최대한 어둡게 만드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매일 30분 이상 신체 운동을 하는 것은, 활동 부족으로 인한 불면증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후성유전학에 대해 더욱 자세하고 쉽게 알아보고 싶다면, David Moore의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콘텐츠 관련 추천 자료>
"Changes in the expression of inflammatory and epigenetic-modulatory genes after an intensive meditation retreat, María Jesús Álvarez-López, 2022"
"Study reveals gene expression changes with meditation, Richard J. Davidson, 2013"
"What Is the Molecular Signature of Mind–Body Interventions? A Systematic Review of Gene Expression Changes Induced by Meditation and Related Practices, Buric et al., 2017"
"Effects of long-term meditation on the expression of genes related to inflammation and their methylation status: A case-control study, Dasanayaka et al.,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