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우리는 왜 똑같기를 원하는가?
"너무 튀지 마", "그렇게 말하면 분위기 흐려져", "지금 그런 얘기를 하면 안 되지!" 이러한 말은 한국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과 '달라 보이는 순간'에 모두가 불편해질까 봐, 그저 입을 다물고 감정을 살짝 접어 넣는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보통 '사회성' 또는 '배려'라고 불린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짜 사회적인 것이고 배려인 걸까? 혹시 '비슷해지기를 강요받는 침묵'의 일종은 아닐까?
한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같음'을 미덕으로 삼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교복, 같은 입시 환경, 같은 조직 문화와 같이, 이질적인 것을 용인하기보다는 동일한 기준 안에서 조용히 적응할 줄 아는 능력이 곧 '성숙함'이고, '성공의 조건'이 되었다. 그렇게 형성된 '사회적 동일성 강박'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억압하며, 심지어는 왜곡하게 만든다.
"나는 이 방법이 나만 문제 삼는 건 아닐까?", "이거 나만 예민한 건가?", "괜히 말했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어." 이렇게 감정은 공감받지 못할 것이라은 두려움과 불안 속에 조용히 사라져 버린다. 그때 우리는 단지 감정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조종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감정 표현의 양극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속적인 억제 끝에 어떤 이들은 아주 차갑고 무표정해지고, 반대로 누군가는 감정이 폭발하듯 분노하거나 무례해진다. 앞서 분노에 대한 감정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몸 어딘가에, 관계 속 어딘가에, 또는 우리 사회의 골목 어딘가에서 튀어나올 준비를 하며 숨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정신 건강의 위기', '공감 부족 사회', '공론장의 파괴' 같은 모습으로, 조용하지만 때로는 아주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뒤흔든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똑같아야만 사회가 평온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아는 것이다. 진짜 성숙한 사회는 감정이 다양하게 흐를 수 있는 '공감을 가진 사회'이다. 다른 감정이 불편함이 아니라, 다름 그 자체로 정당하게 인정되는 사회, 의견이 다른 사람을 이상하거나 틀린 사람이 아니라 '다른 경험과 시간을 건너온 한 명의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사회 말이다.
감정은 억압해야 할 것이 아니라,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요소이다. 사람의 감정은, 곧 '존재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잃는 사회는 결국 사람도 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