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타인의 취향이 불편한 이유

3장. 우리는 왜 똑같기를 원하는가?

by 제인 Jane




누군가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좋아하고, 또 누군가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에 몰입한다. 누군가는 평생 자전거만 타고 여행하며 살고 싶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평범한 일상을 정해진 루틴으로 가득 채우며 안정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러한 타인의 '개인 취향'을 마주할 때 종종 불편함을 느낀다. 또한, 단순한 호기심이나 무관심을 넘어서, 때로는 거부감이나 불쾌감으로 번지기까지 한다.


"도대체 왜 저런 걸 좋아하지?", "난 절대 저런 거 못 해", "나랑 너무 다르네." 취향은 분명 개인의 영역이다. 그런데도 그 개인의 영역이 '나와 다르다'라는 이유만으로 왜 불쾌감이나 거부감이 생기는 걸까?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비슷하거나 똑같은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 편안함에서 나오는 안전감 속에 우리는 이미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우리는 자라면서부터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시간에 출근하고, 비슷한 말투와 감정을 익히는 것이 '적응'이라고 배워왔다. 다름보다 같음을 선택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편리하다고 익히도록 훈련받은 것이다. 그렇기에 비슷해 보이는 것을 잘하면, '적응을 잘하는 사람', '무난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다름이나 차이는 '위험'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개인의 취향은 '판단'의 근거가 되어갔다.


누군가의 취향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신념, 그리고 세계관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취향은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다름이 우리의 정체성에 위협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나와 또는 우리 집단과 너무 다른 걸 좋아하거나 지지하면, 그 사람이 틀렸다기보다는, 혹시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우리 안에 조용히 파고든다. 이 순간이 바로 '익숙함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나는 이게 맞다고 믿고 살아왔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살아도 행복해 보이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당황스러워진다. 그래서 나의 신념이 흔들릴까 봐,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과 결정들이 잘못된 걸까 봐, 그래서 우리는 다름을 틀림으로 만들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다름을 설명받기보다는 그냥 무시하거나, 배제하거나, 또는 혐오하는 쪽을 선택해 버리게 된다.


그러한 선택은 아주 편하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나를 돌아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가 반복될수록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지워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름을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감정이 혐오로 전환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감정을 분해하고 조절할 여유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는 기억해내야 한다. 다름은 본래 위험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어떻게 그 다름을 인식하고 반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 모두가 질문 자체를 바꿔보기를 바란다. "왜 저런 걸 좋아하지?"에서 "나는 왜 저런 걸 불편해하는 거지?"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네?"에서 "저 사람은 그럴 수도 있지"로 말이다.


그러한 노력은 감정의 방향을 밖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 즉 안으로 향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러한 질문을 자주 하는 사회가 비로소 '진짜 다양성'을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사회는 우리 모두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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