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괜찮습니다 3화

3.오늘, 지금은 세상 단 한 번

by sim



3.오늘, 지금은 세상 단 한 번


지구에서 나는 하나다. 그 하나인 ‘나’들이 가득 들어찬 것이 지구이기도 하다. 생각하면 숨이 쫓기듯 소중하고, 그러나 먼지로만 느껴진다. 점, 어디 점 이기만 하겠나. 점 옆에 더 작게 그거 그래 그게 나 같기만 하다. 때론 내 존재가 버겁고, 어떤 때는 모래알 같이 사소하게 느껴지는 나. 그 중심에서 중간을 찾는 길은 영 힘들기만 하다.


숲을 걷자. 그 곳에는 수 많은 같은 종의 나무들과 또 다른 종들의 나무가 얼기설기 섞여 있을 것이다. 요즘은 발길 없는 숲길은 위험하고 험해서 대부분은 예쁘게 사람 다니는 길이 나 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왼쪽도 보고 오른쪽도 보고, 기세가 무섭게 뻗어 있는 여름의 숲길을 걷자 하면 내가 물인지 물이 나인지 모르겠다 싶게 습기가 가득하다. 여름은 진녹색이다. 조금씩은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여름은 본격적이고 맹렬하다. 우리 눈에 그들은 ‘그들’이다. ‘그 나무’인 나무는 흔치 않다. 어쩌면 우리가 점이나 모래알이 아니라 나무 일까?


나무는 하늘을 향해 자란다. 하늘을 보고 자라고, 하늘에 의해서 자란다. 해를 더 받기 위해 위로 뻗는 데에 혈안이 된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높이도, 빨리도 자라지 못하는 나무들은 내실을 다진다. 보통 천천히 자라는 나무들은 조금이라도 더 굵고 튼튼하다. 우리는 나무이겠지만, 각자 내가 어떤 나무이길 바라는 바는 각자 다를 수 있다. 치렁치렁 버드나무, 넓은 자리를 차지하는 반얀나무, 115미터라는 말도 안되는 높이의 세쿼이아.


주로 물가에 자리잡는 버드나무는 바람이 일 때 마다 땅으로 떨어뜨린 가지가 휘휘 날아다닌다. 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모습이 정말 멋있다. 반얀나무는 여기저기 뿌리를 뻗고 그 곳에서 솟아올라 자라게 한다. 어쩌면 텐트같은 그 모습은 때로는 무리를 지을 만큼 넓게 자라는데, 요정 내지는 산신령이라도 살 것 같은 근사한 모습이다. 세쿼이아는 열심히 올려봐도 계속 나무 목대만 보인다. 햇빛을 간신히 구분하게 되면 저 끝에 나무 끝이 보인다. 아주 강하고 튼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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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종류는 수 없이 많다. 내가, 네가 이 세상에 그러한 것 처럼. 우리는 같은 종의 나무라도 각자의 여정이 다르다. 생체기가 나서 나무 진액이 나오듯이, 그것을 다시 이겨내려 바로 옆에서 새로운 가지가 자라듯 말이다. 우리가 나무 무리를 ‘숲’이라고 말하듯이. 우리는 다양한 카테고리 속에 분류되어 있지만, 대체할 수 없는 하나의 나무 이다. 스스로가 그런 내가 싫어도, 이번 생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대체 불가이고, 나를 일으킬 마지막 카드도 나 자신이다. 생각지도 못했지만,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주는 나무처럼, 의도치 않았지만 홍수도, 산사태도 막는 나무처럼 우리는 스스로는 발견하지 못했던 능력과 영향과 의도치 않던 힘이 있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은 세상 살면서 딱 한 번 뿐이다. 1초, 2초, 3초 시간이 종종거리며 지나가지만 서두를 것 없다. 당신이 지금 침대에서 일어난다면 그 순간은 아주 특별한 세상 한 번 뿐인 시간이 된다. 당신이 세수를 하고 간단히 요깃거리를 챙긴다면 그 또한 매우 특별한 순간이 된다. 생일보다, 성인들의 탄신일보다, 우리에게는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 아는, 그런 빛나는 순간이 있다.


바람이 부드러워 지고 있다. 한 여름 찜질방 같아 엄두도 못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을을, 선선한 낮을 기다려 보자. 시간도 날씨도 흐르고 변한다. 당신이라고 아닐리가 없다. 가을에 크고 작은 숲을 기대해보자.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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