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내 두 손에 식물이 시즌2 32화

32화 제주와 동백

by sim

제주 사람을 제외한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러하듯 제주도는 한국에서 특수한 지역으로 쳐진다. 육지陸地 land에서 보기에는 꽤 커다란 섬이고, 말투도 꽤나 낯설다. 내륙 여행의 기반이 거의 마련되지 않던 시대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여행=제주’와 같은 생각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제주를 찾은 여행객들에게, 제주 본토 사람들이 보이는 첫인상은 영 거칠다. 여행자의 들뜸과 상대방의 태도의 온도차가 불러오는 차이가 정을 붙이기엔 어렵기만 하다. 반대로 제주에서 보기엔 육지 사람들이 낯설다. 제주는 섬 모든 곳이 관광지이기 때문에,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꼴도 별로다. 자꾸 개인적인 영역을 침해하는 것도 마뜩잖다. 이들은 즐기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여기저기에 버리고 간 염치과 바꾼 쓰레기들은 억울하게도 도민들이 치워야 다시 살아갈 수 있다.


동백冬柏은 겨울이다. 이름 그대로 11월부터 이듬해 봄이 올 때까지 핀다. 겨우내 두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사업으로 확장시켜 동백 군락지를 만들어 관광지로 활용하는 사업가도 있다. 첫 방문 때는 나무가 작고 꽃망울도 작아서, 꽤나 아기자기했다. 요즘처럼 피켓이나 리본 등으로 장식되어 있지도 않아서 따로 포토스팟Photo spot이랄게 없었다. 반쯤은 허무함으로 구경했던 곳이 해가 갈수록 나무들은 성장하고, 동백 꽃망울이 커져가는 게 내 눈에도 확연히 보였다. 나무들이 성장하면서 얼기설기 높은 담처럼 긴 길을 감싸고돈다. 꽤나 오랜 기간 그곳 동백나무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 같아, 꽤나 비싼 입장료를 감수하고 종종 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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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언젠가의 제주 방문 때 밥을 잘 먹고, 일행에게 소화도 할 겸 근처 어딘가를 구경하자고 꼬드겼다. 그때 순간 골목길 안의 흰 강아지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강아지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와 일행은 홀린 듯이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흰 강아지의 정체는 진돗개로 추측되는 새끼 강아지였고, 어떤 이유에서 인지 집 근처에 묶여 있었다. 안쓰러움을 뒤로한 채 고개를 들어보니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그 겨울 찾아간 제주는, 작은 골목에서도 동백나무를 볼 수 있었다. 가만히 둘러보니 집마다 담장을 넘는 동백나무를 하나씩 키우고 있었다. 우습게도 제주도민들에게 ‘너희 집에 귤나무 있지?’할게 아니었다.(물론 그들은 주변 어디에서라도 귤 나무를 키우고 있지만) ‘너희 집에 동백나무 있어?’하고 물을 일이었다.


특별한 마음으로 나도 동백 한 그루를 들였다가 금세 보내고 말았다. 꽃 몇 망울도 보지 못하고 말이다. 아쉬웠지만, ‘아직 식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먼 훗날을 기약하기로 한다. 예상컨대 완전한 노지에서 키워야 하는 식물일 것이다. 나만의 동백을 갖게 되는 그날, 난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내가 정말 아끼는 숲 하나는, 찾는 이들의 주차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숲 일부분을 평지로 만들기 위해 나무를 제거해야 했다. 무엇이 먼저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럼에도 제주는 그래왔듯이 언제까지나 그곳에 있을 테고, 나는 한적해질 때를 다시 기다리면 된다. 내가 겨울에 냉면집을 찾아다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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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수많은 휴식과 위로를 보내주던 제주의 숲과 오름처럼,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자니, 10초도 버티지 못하게 머리칼을 완전히 엉키게 하는 바람의 바닷가까지. 제주는 온전한 휴식이자, 기쁨이고, 추억이다. 수많은 약이 나를 온전히 살게 만들어줘도, 본바탕인 나의 정신이 온전한 바탕이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울고 싶으면 울면 된다. 울음을 참으면 안 된다. 영 곤란한 곳을 제외하고는 편안한 공간에서 울고, 쉬길 바란다. 나에게 에너지를 주던 공간을 떠올려보자. 남들은 매일 지나치지만 눈치채지 못하는 곳도 있을 수 있고, 찾아가기 힘든 공간일 수도 있다. 그 공간에서의 오롯한 나 자신을 기억하자. 아주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언젠가는 제주에서 살아가는 날을 꿈꾸며, 아직 도시를 맴도는 도시 토박이인 나를 위로한다. 또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내게 평온을 주는 공간이 아주 멀리 있지 않음에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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