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가족 여행기 in 파리 (2022.10.01~02)
지금까지의 여행기
오늘은 잠시 쉬어가는 날이다. 오전에는 빨래를 돌리면서 쉬기로 했는데, 중간에 카드를 잃어버린 줄 알고 한참 찾는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 세탁기에서 발견되긴 했지만, 여행 초반부터 상황이 꼬이는 줄 알고 한참을 스트레스받았다. 긴장 끈을 바짝 조여야지. 마침 셀프 빨래방이 1층에 있어서, 크게 어려움 없이 빨래와 건조까지 마칠 수 있었다. 그동안 재원이는 그림일기를 썼다. 참고로 나와 재원이는 매일 일기를 쓰기로 서로에게 약속을 했기 때문에 재원이는 매일 아침에, 나는 매일 밤마다 일기를 쓰고 있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글이다.)
오늘은 일정이 여유로웠기 때문에 쁘렝땅 백화점으로 천천히 향했다. 바쁜 도시인으로서 파리지앵의 하루를(?) 한번 경험해보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백화점도 구경하고, 길거리를 걷고,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했다. 파리 사람들은 아무리 봐도 멋쟁이가 많은 것 같더라. 솔직히 패션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보니 자극도 되었고, 집에 잠들어있는 머플러를 꺼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ㅎㅎ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암튼, 전반적으로 여유 있고 멋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점심은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 며칠 내내 빵이나 피자, 샌드위치 같은 것들을 먹다 보니 정말 힘들더라. 특히 재원이는 한식 파라 그런지 제대로 빵을 먹지도 않았는데, 쌀국수를 비롯해서 볶음밥을 폭식하는 걸 볼 수 있었다. 한국 사람은 역시 밥이 들어가야 한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참고로 예전에 백종원 선생님이 파리에 쌀국수 집이 맛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예전에 식민지를 통치했었던 적이 있어서 그랬다고 들었다. 그렇게 듣고 보니 더 맛있는 것 같다. 이후 라파예르 백화점으로 가서 트러플 소금과 과자를 구입하고, 개선문으로 향했다. 날씨가 정말 좋았는데, 샹젤리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더욱 가벼워 보였다. 명품 매장은 분명히 존재했고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혹시라도 아내가 관심을 보였다가는 제때 집에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어제 라발레 빌리지를 들렸기 때문에 큰 일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이후 에펠탑으로 향해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여기 다 모여있구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하늘이 너무나 새파랐다. 아무렇게나 에펠탑을 찍어도 작품이 되더라. 이틀간 디즈니랜드만 있다가, 오늘 개선문과 에펠탑을 연속으로 보다 보니 파리에 온 것이 더욱 실감이 나는 하루였다. 그리고 에펠탑 뒤편에서 야바위를 통해 관광객 뒤통수를 치는 무리들도 다수 발견했다. 미리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빠르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관심을 보이는 관광객들도 생각보다 많아서 좀 걱정되었다.
마지막 코스로 저녁 먹을거리를 사러 한인 마트로 향했다. 한국인도 있지만, 외국인들도 생각보다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불닭볶음면을 사는 분들을 여럿 봤는데, 이상하게 국뽕(?)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한국 물가의 몇 배지만, 그럼에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햇반과 라면을 비롯한 몇 개의 물품을 구입했다. 저녁은 오랜만에 한국에서 공수한 떡볶이를 먹었는데, 이렇게 맛있는 떡볶이가 있을까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론 이렇게 멀리 나온 김에 다양한 먹을거리를 경험해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재원이가 생각보다 더 한식을 찾아서 걱정이긴 하다. 앞으로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할지 고민이 된다.
월요일, 오늘의 콘셉트는 '박물관 투어'다. 프랑스 하면 예술, 그리고 박물관의 나라 아닌가. 특히 모나리자를 많이 떠올리는데 오늘 하루만큼은 예술 작품들과 멋진 그림들을 실컷 구경해보기로 했다. 뮤지엄 패스 2일권을 미리 구입했었기 때문에 오늘부터 시작해서 내일까지는 뮤지엄 패스 중심으로 달리는 걸로. 아침은 늘 비슷하다. 재원이는 어제 있었던 일을 그림일기로 남기고, 우리는 나갈 준비를 한다. 석회수 때문인지, 감고 나서 머리가 푸석푸석한 느낌을 받았는데 며칠 지나니까 이것 역시 익숙해진 것 같다. 어제 근처 마트에서 구입했던 귤을 까먹었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제주도 귤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먹어보니 프랑스 귤이 최고다. 태양이 강해서 그런가 토마토도 맛있고, 복숭아도 맛있고, 다 맛있었다. 과일을 먹으며,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가는 길, 72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국인 청년이 옆에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짧게 인사를 나누고 간단히 대화를 시작했다. 30대 초반의 유학생이었는데, 특이하게도 프랑스 현대사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앞으로 6년 정도 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프랑스 생활과 관련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혼자 사는 방의 월세가 190만 원 정도 한다거나 (아주 저렴하면 120만 원 정도) 파리 북역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거나, 최근에 그나마 소매치기 관련해서 이슈가 되다 보니 프랑스도 방비를 강화하고, 배달 관련한 일자리들이 늘어나면서 소매치기도 많이 줄었다는 사실도 재미있었다. 결국 외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먹고 살 일이 없을 때, 무법지대로 빠지게 되고 계속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는데 그걸 극복하는 것은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일자리 하나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아주 복잡한 이슈지만 말이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꽤 재미있는 대화였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투어를 시작했다. 모네의 수련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방문한 곳인데 미술관도 아담히 예쁘고, 작품들도 퀄리티 있어서 개인적으론 꽤나 만족스러웠다. 특히 수련은 총 2개의 방에 걸쳐서 8자 모양으로 동그랗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무한한 물과 시간의 흐름을 담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은 잘 모르지만, 특정한 그림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기분을 나아지게 만들 수 있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이어서 다른 작품들도 구경했는데, 한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길래 작가가 누구인가 봤더니 피카소가 아닌가! 유리로 보관해 놓지도 않고, 원작 그대로 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대가들의 작품을 본다는 사실이 그저 황홀했다. 덕분에 섬세한 붓터치를 하나하나 관찰할 수 있었다.
뒤이어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 좀 좋아한다는 사람은 루브르보다 오르세를 더 높이 평가한다던데, 미술을 아주 좋아하진 않는 나도 그랬다. 우선, 박물관 자체가 예전에 역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인데, 그 자체가 거대한 미술 작품 같았다. 공간감도 압도적이고 그 유명한 시계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화려했다.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 줍는 여인으로 시작해서 관람을 시작했는데, 미리 준비한 앱인 '마이 퍼스트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더 재미있었다. (실제로 곁에서 알려주는 가이드가 아니라, 각각 작품별로 미리 녹화된 안내를 들을 수 있는 서비스인데,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구스타브 쿠르베를 비롯한 작가들을 관람하던 중, 뭉크의 특별전도 참가할 수 있었다. 원래는 뭉크 작품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운이 좋게도 볼 수 있었다. 뭉크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절규'는 스케치 버전으로밖에 볼 수 없었지만, 자화상이라든지 몇몇 유명한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후 5층에 올라가서 시계탑을 뒤로해서 재원이 사진도 한 장 찍어주고,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모네, 마네, 세잔, 고흐 등의 작품들도 만났다.
개인적으로 르네상스부터 근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인간'을 다루기 시작하고, 다양한 미술 사조가 등장하고, 사람들의 바라보는 시각을 바뀌어나가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보니 오르세가 더 좋았던 게 아닐까 싶다. 루브르는 아무래도 그 이전 시대를 다루다 보니 말이다. 또한 미술책에서 많이 봤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도 좋았지만, 미술관을 관람한다는 것이 즐거운 것이구나.라는 새로운 인식을 얻을 수 있었다. 몇몇 작품 앞에서 멍하게 쳐다보기도 했었는데, 그런 작품들의 공통점을 찾는 것도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았다.
이후, 재원이가 기대했던 프랑스의 명물, 에스까르고(달팽이)를 먹으러 갔다. 개인적으론 그렇게 맛있나? 싶은 맛이었는데 재원이는 정말 온몸으로 맛있다고 표현하더라. 6개 중에서 본인이 3개를 먹더니, 더 먹고 싶다고 졸라서 하나 더 시켰다. 결국 9개를 먹고 다음에 한국에서 또 먹으러 가자고.. 프랑스에서 먹은 음식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고 한다. 평소에 한식 파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놀랄 일이다.
카페에서 잠시 쉬고 기념품도 샀다가 대망의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오전에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해서 시간차로 방문한 것인데, 실제로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작전 성공이다. 앞선 박물관과는 다르게, 여긴 너무 넓기 때문에 작전이 필요했다. 일단 꼭 봐야 할 작품들 중심으로 보고 나머지 시간은 그냥 운에 맡겼다. 결과적으로 모나리자를 비롯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든 작품을 감상했고, 니케의 조각상, 피라미드에서 추출된 이집트의 유적들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물론, 좋았지만 미술관을 방문했다는 느낌보단, 관광지를 왔다는 인상이 강했다. 지나치게 큰 규모에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너무 많은 작품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을 전시하기보다는 선택을 적절하게 통제해야, 고객 입장에선 더 나은 경험을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엄청난 박물관임은 분명했고, 그 규모와 퀄리티에 압도당한 것도 맞다. 루브르 피라미드에서 (원근감을 활용해) 손을 올려 사진을 찍으며 오늘 박물관 투어를 마쳤다. 많이 걸었지만, 배운 것도 많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