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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백설기 Dec 26. 2022

안경잡이의 꿈

나를 살리는 추억에세이 쓰기. #3

내 시력은 초등학교 4학년 시력검사에서 확 떨어졌다.


0.8 아래로 글자가 흐릿하게 보였다. 그럴수록 내 마음은 서서히 부풀었다. 드디어 양호선생님의 “너 안경 써야겠다.” 한 마디에 나는 픽 웃고 말았는데 내 작은 꿈 때문이었다.     


안경 쓴 아이들이 부러웠다. 촌티 나는 옷에도 안경을 쓰면 귀티가 났고 무엇보다도 도시 아이 같은 세련미가 풍겼다. 선생님들은 곧잘 안경 쓴 아이들에게 “야. 안경잡이”라고 불렀는데 그것도 부러웠다. 그 소리를 듣는 아이는 왠지 공부 잘하는 아이로 보였다.


급작스럽게 시력이 나빠진 나를 가족들은 크게 채근하지 않았다. 마치 예상했다는 투였다. 모두 그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3학년 가을이 지나가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자 아침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안방 문이 열려있었지만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방안의 장롱이며 옷장, TV에는 뻘건 딱지가 각도를 맞추지 않고 멋대로 붙어있었는데  붙이다 만 것처럼 무성의하기 짝이 없었다.


저녁이 돼서야 정체를 알았다. 세금을 내지 못하는 우리 집에 면사무소 사람들이 와서 압류 딱지를 붙여놓고 간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집에는 반갑지 않은 엽서가 줄줄이 날아들었다. 압류 예고장이었다. 맨 밑줄은 꼭 빨간 색이었다. “00월 00일까지 금 00,000원을 납부하지 않으면(이하생략).”


엽서 첫 줄에는 “안녕하십니까. 가내 평안을 기원합니다”가 써있었는데 그게 웃기고도 쓰렸다. 개코같은 안부 인사라니. 그 감정을 나중에 더듬어보니 난생 처음 느낀 이중감정, 가증스러움이었다.      


얼마 후 집달리라 불리는 무뚝뚝한 아저씨 몇 명이 트럭을 대놓고 살림들을 번쩍번쩍 들고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집 자랑인 여닫이문 달린 금성TV가 가장 먼저 실려 나갔고, 장롱과 옷장까지 줄줄이 차에 실렸다. 다급한 순간에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나무에 함석을 덧댄 부엌문이 유난히 굳게 닫혀있었다. 설마 엄마가 부엌에? 문을 열자 쏟아져 들어간 빛으로 부엌 안은 칠흑같이 깜깜했다. 곧 아궁이며 찬장이며 솥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누군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벽시계를 끌어안은 엄마였다.       


엄마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더 고개를 숙였고 그것이 문을 닫으라는 신호인 줄은 나도 알았다. 품에 감출 수 있는 유일한 살림이 벽시계였고, 숨을 수 있는 곳은 부엌뿐이라는 것도 나는 알았다.


이 날 어둠 속에 웅크린 엄마의 모습은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내가 인생에서 엄마를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는 장면의 하나가 됐음을 오랜 후에 알았다.      


우리 집은 하루아침에 조용해졌다. 저녁이 돼도 사람소리 외에는 날 게 없었다. 안방이 그렇게 컸던가. 낮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걱정스런 눈길로 찾아봐줬지만 밤에는 괴괴한 적막만 흘렀다. 그렇게 두어 주가 흘렀을까.      


학교에서 돌아오니 웬 커다란 박스가 보였다. 살림을 살 형편이 전혀 아닌데 엄만 무얼 샀단 말인가. 황당하게도, 책이었다. 국민서관의 한국위인전시리즈 50권. 그림도 글씨도 흑백인 어른 책이었다. 딱딱한 그림책만 보다가 처음 만지는 날종이책이었다.     


엄마는 황토색 테이프로 책 앞뒤 표지의 모서리 삼각변을 모두 감았다. 50권이니까 100개 표지, 모서리로 치면 300곳이었다. 쩍쩍 테이프 떼는 소리로 모처럼 집안이 시끄러웠다. 다음날 책상에는 단군부터 이승만까지 대한민국의 위인들이 순서대로 놓였다.      


마침내 내 인생의 찬란한 독서시대가 열린 것이다.      


강감찬, 을지문덕, 이순신, 임경업 같은 장군들의 이야기가 특히 재밌었다. 그 분들의 어머니는 하나같이 고을에 눈부신 무지개가 뜨거나 강물이 넘쳐 바다가 되는 꿈을 꾸고 그들을 낳으셨다.


그리고 반드시 나타나는 분이 있었으니 득도한 후 홀로 탁발을 다니는 이름 없는 스님이다.      


하나같이 아침결에 목탁을 두드리며 대문 앞에 나타나고 행랑아범은 그대로 쫓아내려 하고, 장군의 어머니는 꼭 바랑이 넘치게 쌀을 시주하고, 스님은 꼭 돌아서면서 한마디를 한다. “내 부인의 덕이 고마워 한 말씀 드리겠소, 이 집에서 곧 귀한 인물이 태어날 터이니 부디 몸가짐을 ….”     


그러면 반드시 며칠 후 부인에게 태기가 보인다. 태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부인이 보름달 밑이나 연못 같은 데서 목욕을 하면 생기는 줄 알았다. 친절한 작가가 쓰는 책에는 태기가 생기기 전에 대감마님이 사랑방 앞에서 “어험, 어험” 헛기침을 하는 서비스 신을 넣어주기도 했다.        


문관들은 그들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예화를 잔뜩 넣어놨는데 세 살 때 천자문과 명심보감, 동몽선습 등을 다 떼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다섯 살에 풍수지리에 능통해 조상님 묏자리를 정한 분도 있었다.


밥을 먹지 않고 오로지 책만 읽어 모친은 몸 상할라 걱정을 하고, 부친은 늦은 밤 주인공이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허허”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겨울이 되자 TV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희미한 한 줄짜리 형광등에 의지해 책 읽는 재미에 밤이 다 갔다. 엄마가 테이프로 감아놓은 표지는 읽다가 엎어놔도 빠닥빠닥 살아있었다. 눈이 뻑뻑해 손으로 비비는 일이 잦아졌다.


긴 겨울이 가고 새 봄이 왔다. 오빠와 난 개학을 했고 어느 햇살 좋은 날 살림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TV가 다시 온 날 오빠와 그리웠던 가요 프로그램을 제일 먼저 틀었는데 꾀꼬리 같은 목소리의 남자가 노래를 불렀다.


“서울 사람 인가봐. 세련됐다.” 오빠도 끄덕였다. 윤형주 였다. 안경잡이.    

   

개학 후 시력검사에서 시력이 확 떨어졌다는 소리는 내가 겨우내 책을 열심히 읽었다는 증거가 됐다. 가족들에게 자랑스러웠다. 드디어 5학년 올라가는 겨울 고대하던 안경잡이가 됐다.


뽀얗게 수증기가 서린 서독안경원 창에 비친 뿔테안경의 나는 이전과는 분명 달랐다. 이를테면 생전 처음 맡아본 문향(文香) 이랄까. 위인전 표지를 감싼 황토색 테이프 같은.


그 겨울의 독서는 내게 많은 선물을 주고 갔다. 날이 서고 피가 나고 쓰린 감정들을 차분히 거두어, 풍성하고 환하고 잔잔한 것들로 새롭게 채워주었다.      


이제 그 엽서에 대답할 수 있겠다.


“안녕하십니까. 가내 평안을 기원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평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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