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위로가 되지 않던 말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너 때문이 아니야.”
“조금만 버텨.”
말들은 분명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그 순간의 나는
그 어떤 말도 들을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너무 멀었고, 너무 추상적이었고, 내 마음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 채 겉을 맴도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전혀 뜻밖의 순간에 그 말들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는 닿지 않던 말들이 이제야, 마음에 조용히 내려앉는 순간.
그제야 알게 된다.
말이 늦게 도착한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이제야 열렸다는 것을.
그날의 나는 상처를 덮느라 바빴고, 버티느라 귀를 닫고 있었고
누군가의 따뜻함을 받아들일 여유조차 없었다.
어쩌면 위로는 늘 ‘시간을 건너’ 온다.
즉시 위로되는 말보다 세월을 통과해 이해되는 말이 더 깊고, 더 오래 남는다.
어쩌면 위로의 조건은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위로가 늦게 도착해도 괜찮다.
그 순간은, 내가 나를 조금 더 깊이 안아줄 수 있게 된 때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건너온 위로를 맞이하는 세 가지 연습
1. 위로가 바로 되지 않는 나를 탓하지 않는 연습
그때의 나는 상처를 설명할 힘도, 따뜻함을 받아들일 여유도 없었을 뿐이다. 위로를 밀어낸 게 아니라
살아내느라 잠시 미뤄둔 것이다. 그러니 위로가 늦게 도착해도 “왜 이제야 이해가 되지?”라고 묻기보다
“이제야 들을 수 있는 내가 되었구나”라고 조용히 말해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위로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각자의 시간표가 있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먼저 허락하는 것. 그것이 가장 첫 번째 연습이다.
2. 과거의 말들을 지금의 나로 다시 들어보는 연습
같은 말이라도 아픈 시절의 나에게는 상처였고, 조금 단단해진 지금의 나에게는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건 말이 바뀐 게 아니라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의 말을 그때의 기준으로만 평가하지 말고, 지금의 마음으로 한 번 더 천천히 들어본다.